“상대가 먼저 유혹했다며 뻔한사실도 잡아떼 중형”
법무법인 정인 박성철 변호사(53·사법시험 22회·사진)는 1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부산 여중생 살해 사건 피의자 김길태 씨(33)와 관련해 9년 전 자신이 재판했던 일을 이내 떠올렸다. 박 변호사는 2001년 부산지법 부장판사로 있을 때 30대 주부를 납치 감금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 씨 사건의 1심 재판장이었다.
김 씨는 1997년 7월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서 아홉 살 최모 양을 납치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쳐 3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지 한 달여 만인 2001년 5월 30일 새벽 사상구 덕포시장 주택가 골목길에서 또다시 30대 주부 A 씨를 납치·감금·성폭행한 혐의로 붙잡혔다. 박 변호사는 “당시 재판에서 김 씨는 ‘A 씨가 먼저 유혹해서 9일 동안 동거생활을 했다’고 딱 잡아뗐다”며 “A 씨가 합의금을 노리고 자신을 성폭행범으로 누명을 덮어씌우고 있다고 당당하게 진술했다”고 밝혔다. 또 “당시 A 씨의 손발을 묶어놓고 문을 밖에서 잠가 놓았으면서도, 김 씨는 ‘A 씨가 충분히 도망갈 수 있는 순간이 있었는데도 자신의 뜻에 따라 가지 않았다’고 조목조목 주장하는 등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었다”고 회상했다.
박 변호사는 “결국 사건 당시 맨발로 도주해 경찰에 신고했던 피해자 A 씨가 증인으로 나왔는데, A 씨는 분해 죽겠다며 법정에서 울면서 증언을 했다”고 재판 상황을 전했다. 그는 “김 씨가 워낙 확실하게 부인을 해 A 씨를 감금했던 김 씨의 집 옥탑방에 현장검증까지 나갔지만 아무리 봐도 진실은 명확했다”면서 “당시에는 성폭행범에게 기껏해야 징역 7, 8년을 선고했는데 김 씨는 개전의 정이 없어서 당시로서는 굉장한 중형이었던 징역 12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항소심에서도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한 것 말고는 신체에 위해를 당한 것은 없다”는 이유로 김 씨의 형량을 징역 12년에서 8년으로 낮췄다. 그리고 8년 후 만기 출소한 김 씨는 9개월 만에 이유리 양(13)을 납치 살해한 혐의로 붙잡혔다. 김 씨가 또다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는 소식에 박 변호사는 “충분히 그럴 만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씨는 8년간의 복역기간에 동료 수형자를 폭행하는 등 7차례 교도소 규율을 어겨 접견이나 운동이 금지되는 ‘금치’ 및 경고 등의 징계를 받았다고 법무부는 밝혔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