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너무 빨리 찾아온 55세, 베이비부머 맏형들이 산업현장을 떠나고 있다

입력 2010-04-14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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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으로 달려온 30년, 환란도 이겼는데 나이 앞에선…
‘시아버지 스펙’도 보는 세상
가진 건 집 한채뿐…
문득 고개 드니, 왜 이리 허전할까

내가 나가면, 신입 3명 뽑을수 있다고…

30년 가까이 몸담은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새 출발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27년간 은행원으로 일한 조모 씨도 그랬다. 그는 지난달 30일 우리은행을 그만두고 수도권의 한 중소기업으로 출근하고 있다. 지점장 시절 1억 원이 넘는 연봉을 받았지만 지금 수입은 ‘딱 생활비 정도’로 줄었다.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하나. 올해 만 55세가 됐기 때문이다. 은행 정년은 서류상으로는 60세지만 현실에서는 55세다. 이런저런 경로로 회사를 떠날 것을 강요받는다.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인생 후반기의 설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든든한 울타리로 여겼던 정든 직장을 떠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번민 끝에 택한 차선책은 임금피크제. 올해 초 은행 내부 통제를 담당하는 후선 업무로 물러났다. 활발히 영업 현장을 뛰었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가한 일이어서 몸과 마음이 느슨해져만 갔다. 권한이 줄어든 데다 업무영역도 축소되다 보니 답답하기까지 했다.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른 마지막 세대,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경쟁’이 몸에 밴 그는 따분함과 무기력증에서 벗어날 탈출구가 절실했다.

임금피크제를 포기하고 재취업을 하겠다고 결심하기까지는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선택을 바꾸기까지는 또 다시 많은 밤을 뒤척여야 했다. 아내를 설득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아내는 “임금피크제를 신청하면 봉급은 깎여도 앞으로 5년간 은행에 더 다닐 수 있는데 왜 중소기업에 뛰어드느냐”며 만류했다. 이때 미혼인 두 딸의 격려는 큰 힘이 됐다. “아빠! 저희들 걱정하지 말고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결혼할 때 상대방 부모의 직장과 직종을 따지는 요즘 세태를 모를 리 없는 딸들의 응원을 접하고 왈칵 눈물이 솟았다.

“대학살이라고 부르던 외환위기의 구조조정에서도 살아남았고,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도 용케 견뎌냈다고 생각했는데 55세라는 나이만큼은 피해갈 수가 없네요.”

1955년생 양띠인 그는 인구가 팽창하던 1955∼1963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 격이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됐던 1962년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중학교와 고교에 진학할 때마다 동년배들과 치열한 ‘입시전쟁’을 치러야 했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고 1983년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에 입사했다. 당시는 베이비붐 세대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됐던 무렵. 은행들도 정부의 고용장려대책에 맞춰 채용 규모를 크게 늘렸다. 깨끗한 근무환경에 넥타이를 매고 일할 수 있는 직장이 많지 않았던 시절, 은행은 선망의 일자리였다.


은행권, 희망퇴직이냐 임금피크제냐

“제가 퇴직함으로써 신입사원을 3명 이상 뽑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떠나게 돼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정든 직장을 떠나야 하는 아쉬움과 새 출발에 대한 두려움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은행권에서 55세는 ‘데드라인(deadline)’이다. 이 나이를 기점으로 인생의 행로가 바뀐다. ‘하늘의 별따기’라는 임원 승진의 꿈을 이루는 이는 극소수다. 대다수는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 같은 방식으로 회사를 나가거나 임금피크제를 신청한 뒤 고객 민원 처리, 채권 추심, 내부 통제 같은 이른바 ‘비주류’ 업무로 물러난다. “저는 3년 남았어요”라고 말하는 은행원은 나이를 52세로 어림잡으면 틀리지 않는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 기업은행 등 시중은행 5곳의 1955년생들은 올 들어 절반 정도가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아 후선 업무로 물러났고, 비슷한 수가 회사를 떠났다.

“처음 은행에 들어왔을 때는 50대 중반에 그만두더라도 여한이 없을 줄 알았어요. 지금 평균수명이 80세가 넘는다는데 이 나이에 그만두면 남은 세월을 어떻게 보내라고….”

한 시중은행에서 부장대우로 일하는 장모 씨. 그는 지방의 명문 상고를 졸업한 뒤 18세에 은행원 생활을 시작했다. 37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그에게도 어김없이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솔직히 말해 회사를 나가서 무슨 일을 잘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어떤 것도 자신이 없었어요. 아내도 ‘회사에서 잘릴 때까지 버티라’고 하고요.”


“축구를, 주전 빼고 신인만으론 못해”


그는 경기 지역의 한 지점장을 끝으로 지난해 말 임금피크제를 신청한 뒤 ‘악성’ 고객 민원을 처리하는 자리로 물러났다. 수시로 전화를 걸어 “은행장을 바꾸라”며 막무가내 식 민원을 제기하는 고객을 상대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올해 연봉은 작년의 70%로 깎였고 4년 뒤에는 30%까지 줄어든다. 이렇게 연봉이 깎이느니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바로 접었다. “창업하겠다며 퇴직금을 받아 나간 선배들 중에서 잘된 사례는 열에서 하나 찾기도 힘들더군요.”

고졸 입행 동기 26명 중 외환위기 당시의 금융권 구조조정 과정에서 살아남은 10여 명도 대부분 임금피크제를 선택했다. 자녀의 대학 졸업, 구직, 결혼과 직결된 시기라 ‘아버지의 간판’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요즘 신붓감들은 ‘시아버지 스펙’부터 따진다더라”는 한 입행 동기의 넋두리가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기업은행 지점장인 정모 씨는 그래도 행복한 축에 낀다. 1954년생으로 지난해 6월 그만뒀어야 했지만 근무평점이 높은 덕분에 1년째 현업 연장 혜택을 보고 있다. 다만 6개월 단위로 실적을 평가해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탓에 근무 긴장도는 매우 높다.

“작년 6월만 해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착잡했죠. 아내가 처음에는 ‘그만큼 고생했으면 됐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조금만 더 일하면 안 될까’로 바뀌는데 어쩔 도리가 있어야죠. 농사라도 지어야 한다는 생각에 귀농(歸農) 관련 서적도 여러 권을 사서 봤죠. 일단 ‘해피엔딩’이 됐지만 장래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준비 안 된 퇴장… 더 살아야 할 ‘30년’

“축구 경기도 주전을 다 빼고 신인만 가지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인사 담당자의 격려가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다.

37년간 다니던 은행을 지난달 말 그만두고 12일부터 폐자원 재활용업체에 출근한 이모 씨에게도 노후 준비는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역시 돈이 문제다. 쓸 데는 점점 많아지는 나이에 수입이 크게 줄었다. 연봉 수준을 밝히기 어렵다는 그에게 “한 달에 200만∼300만 원 수준이냐”고 재차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맏딸이야 든든한 제약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자기가 벌어서 시집을 갈 텐데 이제 대학 2학년인 아들이 걱정이에요. 1년 등록금만 900만 원인데 회사에서 지원도 안 나오고…. 장가갈 때 집을 사주진 못하더라도 전세금 정도는 해줘야 하는데 말이죠. 매달 어머니께 드리던 용돈도 걱정이고요. 나부터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어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형 은행의 보호막에서 떨어져 나온 데 대한 두려움도 크다. 은행에선 직원이 1만 명 훨씬 넘었는데도 각자의 업무가 명확하고 내부 시스템도 잘 구축돼 있었지만 사무실 직원이 고작 6명인 중소기업에서는 이런 걸 기대하기가 힘들다. 실제로 은행 지점장 때는 겪지 않아도 됐을 삶의 변화들을 체감하고 있다.

“고객을 유치하려고 토요일마다 ‘골프 접대’를 했던 처지에서는 해방됐어요. 그땐 가족들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그런데 이곳에서는 토요일에도 일을 하네요. 점심요? 지점장 땐 근사한 식당에서 법인카드를 긁으며 고객 사장님들과 비싼 밥도 많이 먹었죠. 이제는 근처 밥집에 배달시켜서 직원들과 같이 먹습니다. 물론 은행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가족 같은 분위기도 있지만….”

그는 제2의 인생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최근 한 사이버대학에 등록해 사회복지학 공부를 시작했다. 은퇴 후 씀씀이를 줄이더라도 봉사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오래전부터 품고 있다.

“정든 직장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아내와의 사별(死別) 다음으로 스트레스가 심하다고들 하죠. 아쉬움이 크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의 고참으로서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됐잖아요. 앞으로 후배들이 줄지어 회사를 나올 텐데 ‘나름대로 잘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렸으면 좋겠어요.”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 기업선 승진 못하면 떠나… 정년퇴직 희귀 ▼

많은 기업이 정년제를 운용하고 있지만 은행처럼 베이비붐 세대가 한꺼번에 퇴직 압력을 받는 현상은 생기지 않는다. 민간 기업에서는 승진하지 못하면 도중에라도 회사를 나가야 하고, 공기업의 정년은 대체로 60세여서 정년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계열사의 정년은 대부분 55세다. 삼성 관계자는 “임원으로 승진하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정년까지 남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며 “몇 년 전 한 계열사 홍보부장이 부장으로 정년퇴직한 게 그룹 내에서 화제가 됐을 정도”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정년은 59세이며 임금피크제도 운용하고 있다. 정년대로라면 1955년생들이 상당수 남아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대차 관계자는 “생산직은 좀 남아있지만 사무직이라면 임원이 아닌 이상 직원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했다. 대기업일수록 생존경쟁이 치열한 까닭에 베이비붐 세대의 이직, 재취업, 창업이 55세 이전부터 산발적으로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베이비붐 세대 공무원들의 퇴장은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반직·기능직·외무 공무원 정년은 60세, 교원은 62세, 검사와 판사는 63세 등으로 민간 기업보다 여유가 있는 편이다. 경찰·소방 공무원과 군인의 정년은 각각 60세와 63세지만 계급별 정년이 별도로 적용되는 탓에 고위직을 제외하면 1955년생들은 많지 않다는 설명이다.

중앙부처 산하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101개 공공기관 중 26.7%인 27곳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민간 기업(5.7%)을 웃돌았으며 평균 55.84세의 직원을 대상으로 3.3년간 적용하고 있었다.

다만 산업 전반으로는 1, 2년 안에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가 지난해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 231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197곳(94.75%)이 정년제를 운용하고 있으며 평균 정년은 57.14세로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도매·소매업(56.34세) 숙박·음식점(56.46세) 건설업(56.62세) 운수업(58.91세) 광업(58.33세) 부동산·임대업(59.36세) 등이었다. 내년 이후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인 1955년생이 이들 업종에서도 정년을 맞게 된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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