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 보는 월드컵 ㅣ 징크스] 펠레의 저주…찍히면 죽는다?

입력 2010-05-11 16: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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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크스(Jinx). 대개 불길한 징후, 선악을 불문하고 불길한 대상이 되는 사물 또는 현상,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일을 일컫는다.

이 징크스가 승부를 겨뤄야 하는 스포츠에서 자주 거론된다.

4년 마다 열리는 전 세계 최대 축제 월드컵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징크스로 인해 더욱 흥미진진했고, 이런저런 화제를 낳았다.

‘징크스는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란 말이 있지만 거짓말처럼 또 반복되는 상황이 나오며 팬들을 울고 웃긴다.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온 2010남아공월드컵. 징크스의 재현 여부를 지켜보는 것도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

●4강 징크스의 반복

이전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팀 중 한 팀은 반드시 차기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탈락한다는 얘기다. 1930우루과이월드컵부터 무려 11차례나 이 같은 징크스가 나타났다. 이 대회에서 4강에 올랐던 유고슬라비아는 4년 뒤 예선 탈락의 수모를 겪었고, 34년 대회 4위를 차지한 체코슬로바키아도 그랬다.



54년 대회에서 4강에 올랐던 프랑스도 62년 월드컵에서 예선에서 탈락했다. 62년 4강 우루과이는 66년, 66년 3위 포르투갈은 70년 대회 때 고배를 들었다. 80년대 들어 잠시 주춤했던 ‘4강 징크스’는 90년부터 다시 고개를 들었다. 86년 멕시코 대회 3위 프랑스는 90년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90년 대회 4위 잉글랜드도 94년 미국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98년 프랑스 대회에선 94대회 3위 스웨덴이 아픔을 겪었다. 2002한일월드컵에선 98년 한국을 울렸던 네덜란드가 출전하지 못했다. 2006년 독일 대회는 한국이 희생양이 될 뻔 했지만 다행히 본선에 오른 반면, 터키가 탈락했다.

올해 대회도 상황은 비슷했다. 결과적으로 2006년 4강(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이 모두 진입했지만 프랑스는 앙리가 만들어낸 ‘신의 손’ 사건이 없었다면 아일랜드에 하마터면 패퇴할 뻔 했다.

●개최 대륙 우승 & 개최국 2라운드 진입

개최 대륙에서 우승국이 나온다는 것은 정설이다.

유럽에서 개최하면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에선 남미가 득세했다. 두 대륙이 세계 축구의 세력을 양분해왔기 때문에 비롯된 현상이기도 하다. 18회 대회 중 무려 15회나 적중했다.

예외도 있긴 했다. 지독하리만치 계속돼 온 징크스를 깬 영예의 주인공은 브라질. 1958스웨덴월드컵에서 정상을 밟은 브라질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한 2002년 대회도 석권했다.

그렇다면 올해 대회는 어떨까.

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열리는 만큼 남아공, 코트디부아르, 나이지리아, 카메룬 등은 ‘다크호스’ 이상의 활약을 펼쳐내겠다는 각오지만 여전히 상대가 만만치 않다. 나이지리아와 한 조에 속한 한국은 ‘대륙 강세’의 희생양이 되질 않기를 바라야 한다.

이와 맞물려 홈 어드벤티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역대 월드컵에선 홈 팀들이 예외 없이 2라운드(16강 혹은 8강)에 진출했다. 한국과 일본도 나란히 16강 이상의 결과를 냈다. 남아공의 선전이 기대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전 대회 우승 팀의 첫 경기 고전

국제축구연맹(FIFA)은 1974서독월드컵부터 지난 대회 우승 팀을 다음 대회의 개막전 출전 팀으로 지목해왔다.

그러나 전 대회 우승팀은 항상 개막전에서 고전했다. 개최국이 개막전에 출전하기로 방식이 바뀐 2006년 독일대회까지 기록은 거의 적중했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 예외국가는 독일, 브라질 등 2개국에 불과했다.

70년 대회를 제패한 브라질은 4년 뒤 서독월드컵에서 유고슬라비아와 0-0으로 비겼고, 74년 대회 우승국 서독은 78아르헨티나대회에서 폴란드와 졸전 끝에 비겼다. 78년 대회를 석권한 아르헨티나는 82년 스페인 대회 때 벨기에에 0-1로 무너졌다. 82년 대회 우승팀 이탈리아는 86멕시코월드컵에서 불가리아와 1-1로 비겼다.

아르헨티나는 90이탈리아 대회에서 또 희생양이 됐다. 카메룬에 고전하다 종료 직전 결승골을 얻어맞고 0-1로 졌다. 90년 우승한 독일(당시 서독)은 94년 미국에서 볼리비아를 2-1로 꺾었고, 94년의 주인공 브라질이 98프랑스월드컵에서 스코틀랜드를 2-1로 눌러 ‘개막전 악몽’은 사라지는 듯 했으나 2002년 대회에서 전 대회 우승국 프랑스가 세네갈에 0-1로 패했다.

방식이 바뀌었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2002년을 평정한 브라질은 독일 대회에서 크로아티아에 고전하다 1-0으로 간신히 이겼다. 2006년 독일 대회에서 우승한 이탈리아의 행보는 이번 대회 초반의 관심사다. 이탈리아의 남아공 대회 첫 상대는 파라과이다.

●펠레의 ‘입방정’은 현실?

작년 말 조 추첨이 끝났을 때 전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은 이는 ‘축구 황제’ 펠레였다. 그의 예언은 항상 정 반대의 현실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펠레가 지목하는 우승 후보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나란히 탈락의 쓴 잔을 들어왔다. 현역 때부터 이어진 달갑지 않은 추억이다.

66년 잉글랜드 대회에 앞서 펠레는 “우리(브라질)가 꼭 우승 한다”며 큰소리를 쳤지만 조별예선 탈락이 최종 성적표였다. 이번에는 스페인이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됐다. 그러나 펠레는 자신의 예언에 좀 더 신중을 기하기 위해 여러 국가들을 한꺼번에 끼워 넣는 재치도 발휘했다.

“스페인이 가장 우승에 근접했지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도 만만치 않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행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큰 대회에서 번번이 좌절을 경험하며 올해 대회를 반전의 기회로 삼겠다는 스페인은 걱정이 태산일 수밖에 없다. 역대 월드컵 무대에서 스페인은 50년 대회 때 꼭 한 차례 4위에 오른 뒤 한 번도 8강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허정무호로서는 아르헨티나가 지목됐다는 점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 마라도나 감독이 이끌고, 메시가 버티는 아르헨티나가 예선에서 탈락한다면 한국과 16강에 오를 국가는 그리스일까, 나이지리아일까. ‘펠레의 저주’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복음’처럼 들릴 수 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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