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류현진-SK 김광현. [스포츠동아 DB]
비가 만들었다 비가 앗아간 세기의 대결. 한화 류현진(23)과 SK 김광현(22)이 또다시 나란히 등판한 25일, 대전구장과 대구구장은 이틀 전 무산된 빅매치의 여운이 여전히 남아 있는 듯했다. 경기가 끝난 후의 느낌은 사뭇 달랐지만 말이다.
○대전구장…괴력의 류현진
보통 홈경기 선발투수가 야구장에 ‘출근’하는 시간은 오후 4시쯤. 하지만 류현진은 늘 그랬듯 야수들과 비슷한 시간에 모습을 나타냈다.
23일에는 손가락으로 입에 지퍼 모양을 그리며 ‘말을 아끼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던 류현진이지만 이날은 주변 사람들과 살갑게 대화를 나누며 한결 긴장이 풀린 모습을 보였다.
김민재 코치가 “3점이면 되겠냐”고 농담하자 “기왕 뽑는 거 5점은 내주세요”라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앞으로 닥칠 김광현과의 맞대결 가능성이 신경 쓰이기는 했던 모양. “다음번 SK전이 언제냐. 내가 일요일에 또 나가면 광현이랑 안 붙는 거냐”며 관심을 보이더니 “이렇게 빨리 다시 성사되면 오히려 흥행에 지장 있을 수도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쨌든 경기 전의 활발한 모습은 컨디션이 좋다는 증거다. 9이닝 3안타 1볼넷 9삼진 무실점. 류현진은 넥센전에서 ‘괴물’다운 투구로 자신의 시즌 첫 완봉승에 성공했다.
6회초까지 투구수가 99개였지만, 6회말 타자들이 2점을 뽑아 주자 괴력을 뽐냈다. 7회부터 9회까지 공 27개로 가볍게 마무리.
류현진은 밝은 표정으로 “1점대 방어율이 돼서 좋다”는 소감을 밝힌 후 취재진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광현이는 오늘 어떻게 됐어요?”
○대구구장…긴장 풀린 김광현
김광현은 삼성전을 앞두고 “사흘 연속 선발 준비를 했더니 힘들다”고 짤막하게 밝혔다. 처음 우천 취소된 토요일(22일) 경기부터 이날까지 내리 3경기에 선발로 예고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정은 한결 편해 보였다. 다만 막상 경기에 들어가니 역시 집중력이 흔들리는 모습.
1회 2사 1루서 최형우에게 한복판 슬라이더를 통타당해 2점을 내주더니, 2회 1사 2루서는 박한이 타석 때 원바운드 폭투로 3점째를 헌납했다. 5회 2사 만루에서 최형우에게 내준 밀어내기 볼넷은 2008년 7월 15일 잠실 두산전 이후 22개월 여만이다. 긴장이 풀린 탓이었을까.
한편 졸지에 김광현을 상대한 삼성 타자들은 마뜩찮은 분위기.
경기 전 삼삼오오 모여있던 타자들 가운데 오정복이 “김광현 볼은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 거지”라고 묻자 곁에 있던 박석민은 “나도 모른다”며 입맛을 다셨다. 산전수전 다 겪은 양준혁마저 후배들에게 “타자 앞에서 급격하게 떨어지는 김광현의 슬라이더는 치기 힘들다”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선동열 감독은 “재미있을 뻔했는데”라며 빅뱅의 무산을 안타까워했다. 이어 “(실제로 붙었다면) 틀림없이 둘 다 부담스러웠을 것”, “(어느 팀이든)2∼3점을 내면 승부가 났을 것”이라고 나름 예상평을 곁들였다.
대구 |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대전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