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만에 맞붙은 사령탑
한국 파울에 마라도나 양팔 벌리자 허정무 벤치 앉으라는듯 손짓 응수
허감독, 이청용 골에 어퍼컷 날려
그라운드 안에서 선수들이 싸우는 사이 벤치에서는 허정무 감독과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의 신경전이 뜨겁게 펼쳤다. 두 감독은 약 10여m 거리를 두고 서서 서로에게 손짓을 할 정도로 뜨겁게 펼쳐졌다. 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경기를 치르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두 감독은 90분 내내 벤치에 앉지 않았다. 허정무 감독은 벤치에서 앞뒤로 움직이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마라도나 감독은 테크니컬 에어리어를 볼의 위치에 따라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적극적으로 선수들을 독려했다.
침묵을 지키던 두 감독이 처음으로 맞붙은 것은 전반 13분.
한국 선수의 파울이 나오자 마라도나 감독이 대기심 쪽으로 다가서며 경고를 주지 않는다고 하소연 했다. 이 모습을 본 허 감독은 마라도나 감독을 향해 경고가 아니라고 팔을 가로 저으며 신경전에 불씨를 당겼다.
두 감독은 10분 뒤 제대로 붙었다.
마라도나 감독은 허 감독의 제스처에 화가 났는지 10분 뒤 다시 한국선수의 파울이 나오자 이번에는 직접 허 감독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는 양팔을 벌리며 ‘파울을 그만하라’는 듯 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허 감독이 마라도나 감독을 향해 벤치로 들어가서 앉으라는 듯 손짓을 했다.
두 감독이 약 20여 초간 계속해서 신경전을 펼치자 대기심이 직접 나서서 모두 뒤로 물러날 것을 요청했다.
두 감독은 이후 신경전을 멈추고 그라운드에 시선을 모았다. 경기를 앞서가는 마라도나 감독은 여유를 찾은 듯 계속해서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리드를 잡고 있는 탓인지 선수들에게 지시를 많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선수에게 경고가 나오거나 파울 휘슬이 울리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양 팔을 들며 큰 제스처를 취했다.
전반 후반 0-2로 뒤진 상황에서도 허 감독은 냉정하게 선수들에게 계속해서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코칭스태프와 상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수비가 많이 흔들리자 수비형 미드필더 기성용을 따로 불러 역할을 전달하는 모습이었다. 전반 종료 직전 이청용이 만회골을 터트리자 두 감독의 표정은 바뀌었다. 마라도나 감독은 수비수의 실수로 골을 내준 탓인지 분풀이 하듯 땅을 발로 찼다.
반면 허 감독은 특유의 양손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며 기세를 높였다. 이후 전반전이 종료되자 허 감독은 라커룸으로 들어오는 이청용에게 다가가 안아주며 어려운 상황에서 골을 터트려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후반전 1골 차로 양 팀이 치열한 공방을 벌인 탓인지 두 감독은 신경전을 자제하고 경기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1골 차로 뒤진 허 감독이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허 감독은 수시로 벤치의 코치들과 대화하며 작전을 상의했고 동점골을 뽑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놓칠 때면 강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반면 마라도나 감독은 양복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넣거나 팔짱을 끼는 등 전반전보다는 조용하게 경기장을 바라봤다.
전반전 벤치의 기(氣) 싸움에서 진 탓인지 액션이 줄었다.
요하네스버그(남아공) |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