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기가 패배로 끝난 뒤엔 여러 말들과 음모론이 나오기 마련이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1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조별리그 B조 대한민국-아르헨티나전에서 4-1로 대패한 뒤 주요 포털사이트 게시판과 디시인사이드 월드컵 갤러리에는 누리꾼들의 비판을 담은 글이 수천~수만 건씩 올라오고 있다.
대한민국-그리스전 이후 "16강이 보인다"며 허정무 감독과 선수들에게 극찬이 쏟아진 것과는 180도 다른 분위기다. 또 월드컵 이전에 가진 평가전에서 스페인 등 강팀을 맞아 패했지만 "잘 싸웠다"며 격려하던 분위기와도 전혀 다른 양상이다.
4-1의 스코어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5-0으로 굴욕을 당한 이후 한국으로선 12년 만에 최악의 월드컵 성적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뒤 2006년 독일 월드컵 16강 진출이 좌절됐지만 이처럼 큰 점수 차가 난 경기는 없었다.
이번 대회 우승 후보로 꼽히는 아르헨티나가 버거운 상대라는 사실은 국내 팬들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큰 점수 차로 인한 충격에 아르헨티나전에서 보여준 감독의 선수 기용 및 일부 선수들의 기량에 대한 불만까지 더해져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주로 비난의 타깃이 되는 선수는 오범석과 염기훈이다. 두 선수의 성(姓)을 합쳐 '오염' 라인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오범석은 이날 위험 지역에서 파울을 범해 상대팀에게 프리킥 기회를 줬고 이는 박주영의 자책골로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후반에 오범석이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제대로 막지 못해 추가골이 터졌다고 비난했다.
염기훈도 이청용이 골대 앞에서 연결한 패스를 오른발 대신 왼발로 차며 동점골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이 때문에 인터넷에는 "염기훈 오른발은 의족인가"라며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자책골을 범한 박주영은 '밥줘용'이라 불리며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은 패러디 사진까지 등장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허정무 감독을 '허접무'라고 비하하며 선수 기용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실력보다 허 감독의 인맥이나 대한축구협회의 압력에 연연해 선수들을 선발했다는 것이다.
A선수의 아버지가 대한축구협회 임원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형편없는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덕택에 끝까지 교체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B선수의 경우 축구협회 관계자들과 친분이 깊은 친지 덕분에 그리스전과 아르헨티나전 두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특히 허정무 감독이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통해 그리스전에서 활약한 차두리 대신 오범석을 투입한 이유를 밝힌 것이 누리꾼들을 더욱 자극했다. 허 감독이 "차두리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말한 것을 두고 '라이벌인 차범근 전 감독이 싫었기 때문'이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일부 외신은 허 감독이 선수 기용에 실패한 것이 완패를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스포츠 전문 매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허 감독이 오범석과 염기훈을 교체하지 않고 계속 뛰게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두 선수는 외신이 매기는 선수별 평점에서도 최하점을 받았다.
한국은 아르헨티나에 4-1의 수모를 당하며 오만한 마라도나의 콧대를 더욱 높여줬다. 하지만 16강의 불씨는 아직 남아 있다. 나이지리아전에서 아시아 최강팀의 자존심을 걸고 실력을 발휘해 승리를 거둔 뒤 16강 진출이 이뤄진다면 누리꾼들의 분노와 음모론도 다시 잠잠해질 것으로 보인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 다시보기 = “메시에 당했다” 한국 1대4 완패
한국-아르헨티나 경기 주요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