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움은 능히 강함을 제압하는 법이다. 28일 전남 화순에서 열린 ‘이용대 올림픽 제패기념 전국초중고 배드민턴선수권’ 여고부 단식 결승에서 유지혜(성지여고)가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원리를 증명해 보였다.화순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단식 우승·복식 준우승 휩쓸어1934년 국제배드민턴연맹(IBF) 창립 이래 11명에게만 주어진 ‘배드민턴의 노벨상’ 허버트 스칠상을 받은 박주봉 현 일본국가대표팀 감독은 현역시절 강력한 스매싱이 주무기가 아니었다.
박주봉 감독은 강약조절과 현란한 네트플레이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두뇌 플레이로 상대의 혼을 쏙 빼놓는 걸로 유명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동남아시아에는 수비를 강조한 배드민턴이 유행했다.
아무리 강력한 스매싱을 날려도 척척 받아내 상대를 지치게 하는 전법이었다. 그러나 시속 300km가 넘는 서브도 무서워하지 않던 동남아시아 최고 선수들도 박주봉이 네트 앞에서 툭툭 건드려 힘없이 떨어지는 셔틀콕은 되받지 못했다.
‘이용대 올림픽 제패기념 전국초중고 배드민턴선수권대회’ 고등부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유지혜(18·성지여고)는 이번 대회에서 온 몸으로 ‘부드러움이 더 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163cm의 배드민턴선수로는 비교적 작은 키지만 네트를 살짝살짝 스치며 코트 구석구석을 공략하는 지능적인 플레이는 상대를 먼저 지치게 했다.
여고부 단식 준결승에서 만난 유봉여고 이누리는 강력한 체력과 빠른 스피드가 강점이었지만 코트 맨 뒤와 네트 바로 앞까지 모두 공격 포인트로 활용하는 유지혜의 강약조절 앞에 무너졌다. 28일 결승에서 유지혜를 만난 치악고 박혜진은 탄력 있는 공격으로 맞섰지만 유지혜의 영리한 플레이를 넘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 여고부 단식 우승과 복식 준우승을 차지해 고등부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 유지혜는 귀여운 외모에 빼어난 실력까지 갖춰 ‘여자 이용대’같은 스타가 될 수 있는 재목으로 떠올랐다. 이전까지 고등학교 진학 후 단 한 차례도 우승을 못했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경기운영을 선보였다.
유지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우승을 이뤄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 졸업 후 시흥시청에 입단하기로 진로를 정했다. 앞으로 단식에 주력해 더 좋은 모습을 선보이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중등부에서는 2관왕에 오른 최솔규(아현중)가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화순 |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