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의 광저우 에세이] 개인전도 단체전도 출전못한 이창환 “바꿀수 없는 운명…난, 괜찮습니다”

입력 2010-11-24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기보배(22·광주광역시청)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울어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이창환(28·두산중공업)이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2008베이징올림픽금메달에 2009울산세계선수권 2관왕까지 거머쥔 이 선수는 20일 남자개인전 예선에서 4위를 차지했습니다.

그것으로 그의 아시안게임은 막을 내렸어요. 단체전에서는 엔트리에서 빠졌고, 개인전에서는 국가별로 2명의 선수만 참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 저는 이제 다 끝났네요. 단 하루에. 모두 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답니다. 자신은 “운명지향적”이라나요? 운동선수에게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말 같아서 다시 물었습니다.

이창환은 ‘하늘 호수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고 답을 대신합니다. 시인 류시화 씨가 인도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들을 쓴 책이래요. 그리고 그 책 속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합니다.

인도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대요. 갑자기 버스기사가 내리더니 친구와 차를 마시며 2시간 넘게 수다를 떨더랍니다. 하지만 어느 승객도 뭐라고 하지 않더래요. 그 이유를 한 승객에게 물었습니다.

대답이 걸작입니다. “버스는 떠날 시간이 되면 정확히 떠날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어떤 시도를 해도 신이 정해 놓은 순서를 뒤바꿀 순 없습니다. 여기 당신에게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고 마구 화를 내든지,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 해도 편하게 마음을 갖든지.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데, 왜 화를 내는 쪽을 택하겠습니까?”

남자대표팀의 에이스였던 임동현도 24일 개인전 토너먼트에는 초대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선 3위였거든요. “한국은 컨디션이 좋은 사람이 나가는 거예요”라며 웃어넘깁니다.

워낙 동료들이 잘 쏘니까, 한 번의 실수도 용납이 안 되는 거래요. 하지만 최선을 다했고 어차피 다른 한국 선수들이 또 잘 해줄 것을 믿으니까, 마냥 고개 숙일 수만은 없답니다.

스포츠에서 가정은 없다지만,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23일 여자개인전에서 은메달을 딴 청밍(중국)은, 개인전 토너먼트에 출전하지도 못한 주현정(28·현대모비스), 김문정(29·청원군청) 보다 나은 선수일까요?

이번에는 그녀들의 운이 딱 거기까지였나 봅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마음 편하지요. 어깨며 팔꿈치며 골병이 들어갈 정도로 활시위를 당긴 한국 선수들은 이렇게 자신의 할 일을 다한 뒤,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운명지향적”은 ‘진인사대천명’의 다른 말로 들렸습니다.

이창환에게 ‘하늘호수’란 “언젠가는 이룰 더 큰 꿈”이라고 하네요. 하늘 호수로 떠나는 그들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광저우(중국)|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