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맘고생 털고 오릭스전사로 새출발

입력 2011-02-23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오키나와가 요미우리 스프링캠프 유치를 위해 지어 올렸다는 최신형 구장 셀룰러스타디움. 하지만 개장 1호 홈런의 주인공은 요미우리가 내보낸 이승엽(오릭스)이었다.

■ 이승엽 홈런의 의미

하라 감독 앞에서 5년의 세월 작별
요미우리 상징 새 구장서 1호 홈런
이승엽이 22일 요미우리와의 연습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4회 2번째 타석에서 우월 3점홈런을 날렸고, 9회 4번째 타석에서 좌익선상 2루타를 터뜨렸다.

당겨쳐서 홈런, 밀어쳐서 2루타를 만들며 부활의 전주곡의 울렸다. 특히 이날의 홈런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한방이어서 주목됐다.


○요미우리 상대 2457일 만에 날린 홈런


이승엽은 일본 최고 명문팀인 요미우리에서 오랫동안 뛰었기 때문에 요미우리를 상대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2004년 지바롯데 유니폼을 입고 2005년까지 2년간 인터리그 때나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범경기를 포함해 1군 무대에서는 요미우리를 상대로 단 1개의 홈런도 기록하지 못했다. 일본 진출 첫해인 2004년 5월 11일 2군으로 내려간 뒤 6월 2일 요미우리와의 2군경기에서 현 요미우리 에이스인 우쓰미 데쓰야를 상대로 홈런을 날린 것이 유일한 요미우리전 홈런으로 남아있다.

이 홈런 덕분에 이승엽은 그날 바로 1군승격을 통보받았다. 결국 이승엽은 연습경기와 시범경기, 정규시즌, 포스트시즌을 통틀어 그날 이후 요미우리전만 따지면 무려 2457일(6년 8개월 20일)만에 홈런을 기록한 셈이다. 비록 연습경기지만 요미우리 1군을 상대로 홈런을 친 것은 일본진출 후 이날이 처음이다.


○오키나와 셀룰러스타디움 개장1호 홈런


이날 경기가 열린 구장은 ‘오키나와 셀룰러스타디움 나하(오노야마구장)’다. 일본 최고 인기팀 요미우리의 스프링캠프를 유치하기 위해 오키나와가 총 공사비 68억엔(918억원)을 쏟아부어 지난해 완공한 최신형 구장이다.

공사비 중 70% 정도는 방위성의 보조금에서 충당됐다. 관중석 규모만 3만명이다. 내야에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좌석이 있고, 잔디밭으로 만들어진 외야에도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오키나와에서 유일하게 야간경기까지 개최할 수 있는 구장이다.

오키나와현에 있는 대부분의 구장은 시골 변두리에 있지만 셀룰러스타디움은 번화가인 나하시에 있다. 그래서 요미우리도 올해부터 미야자키에서 1차로 스프링캠프를 하고, 2차 훈련지로 이곳을 선택했다. 그런데 요미우리 상징물이나 다름없는 셀룰러스타디움 개장 1호 홈런은 요미우리 선수가 아니라, 요미우리가 내보낸 이승엽이 주인공으로 남게 됐다.


○요미우리와 작별인사, 오릭스와 새출발 약속

이승엽에게 요미우리는 먼 훗날 돌아보더라도 야구인생의 큰 좌표로 남을 수밖에 없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유니폼을 입어 삼성(9년)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 뛴 팀이다. 2006년 41홈런을 기록하면서 일본에서도 특급 홈런타자로 인정받았고, 4년간(2007∼2010년) 무려 30억엔(400억원)의 거액에 계약했다.

한마디로 요미우리는 야구선수 이승엽에게 부와 명예를 동시에 안겨줬다. 그러나 2007년 30홈런을 친 뒤 이듬해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손가락 수술 후 내리막길을 걸었고, 하라 다쓰노리 감독은 그에 대한 신뢰를 거뒀다. 최근 3년간은 야구선수 이승엽에게 가장 치욕적이고도 잔인한 시간이었다. 결국 요미우리는 이승엽과 재계약을 포기하고 내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날 요미우리전은 그에게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는 “다른 팀과 똑같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할 것”이라고 했지만 인간인 이상 속마음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요미우리와 작별인사조차 못하고 나온 이승엽으로서는 이날 성적이 좋지 않았다면 마음속에 찜찜함과 말 못할 회한이 계속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날의 홈런은 하라 감독을 적으로 만나 기록한 첫 홈런이며, 오릭스 이적 후 오카다 감독에게 안긴 첫 홈런선물이기도 했다. 요미우리와 얽힌 영욕의 5년 세월과 비로소 작별인사를 하고 홀가분하게 오릭스맨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