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직설’ 안방 웃음코드 바꾸다
#상황 1 부하직원 결혼식장에 가족을 데리고 온 과장신랑: 오셨어요? 부조 얼마 하셨어요?
직장상사: 5만 원 했어.
신랑: 5만 원? 여기 뷔페가 4만5000원인데 사모님에다가 애를 둘씩이나 데리고 오신 거예요?
직장상사: 가족들 외식도 시키고 뽕도 뺄 겸 줄줄이 데리고 왔지.
신랑: 그래도 10만 원은 하셨어야죠. 해도 해도 너무하셨다.
직장상사: 10만 원 낼 거면 여긴 왜 왔겠어. 싼 맛에 가족 외식하려고 왔는데.
#상황 2 직장 회식 자리
과장: 자, 메뉴 골라 봐.
여직원: 어머, 됐어요. 어차피 과장님 먹고 싶은 것 드실 거잖아요.
과장: 그래도 회식인데 너희가 고르는 척이라도 해봐.
일동: 꽃등심 먹을까? 꽃등심이요!
과장: 여기 삼겹살 주세요!
케이블 채널 tvN ‘롤러코스터’의 새 코너 ‘만약에 극장’에 나온 에피소드다. ‘모두가 사실만을 얘기하는 곳’을 표방한 이 코너는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상황에서 위선이나 예의바름을 벗고 속말 그대로 내뱉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웃음을 유발한다. 친구 결혼식에 하객으로 가서 “어머, 너 드레스 너무 조잡하다”라고 인사말을 건네고, 신부는 친구에게 “그래, 너도 시집가야지. 나보다 좋은 데로는 가지 마” 한다. 올해 신년 특집으로 방송됐다가 시청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정규 코너로 편성됐다.
한동안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진들이 ‘누가 더 독한가’ 내기라도 하듯 서로 헐뜯고 상처 주는 말을 주고받는 독설화법이 유행했다. 이에 비해 최근 예능 프로나 드라마에서는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속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시청자들의 공감과 웃음을 끌어내는 직설화법이 인기다.
‘롤러코스터’는 두 사람 사이의 싸움을 게임 중계하듯 보여주는 ‘속타 그래 붙어’도 신설했다. 명품 가방을 놓고 다투는 자매, 짝사랑하는 선배를 놓고 다투는 대학 동기 등이 등장한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남녀탐구생활’처럼 일상생활 속 사람들의 속마음을 소재로 하는 코너이다.
KBS 2TV ‘개그콘서트’의 ‘두 분 토론’에서 남하당 대표 박영진은 ‘알파걸’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여권이 신장된 현실이 내심 못마땅한, ‘보수 세력’을 대변하는 직설로 웃음을 유발한다. “우리 때 여자가 외출할 수 있었던 것은 쫓겨날 때밖에 없었어” “(뒤늦게 제사 지내러 온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뭐하기는! 다 해야지!” 하는 식이다. “여자들 말이야, 귀에다 대고 한다는 소리가 뭐? 이건 비밀인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그럼 너도 말하지 마! 비밀이라면서 다 떠들고 있어!” 하거나 “여자들 말이야, 온라인 쇼핑몰 사진을 자연스럽게 찍겠다고 뭐? 파파라치 컷? 이게 어디 몰래 찍힌 거야, 연기한 거 다 티나!” 하는 대목에선 여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SBS 드라마 ‘시크릿가든’ 종영 후에도 다른 예능 프로나 CF에서 되풀이 ‘인용’되는 대목 중 하나도 주인공인 백화점 사장 김주원(현빈)의 직설적인 대사들이다. “사회 지도층의 윤리란 이런 거야. 나 가정교육 이렇게 받았어” “내 목소리 기억 안 나요? 기억 안 날 목소리가 아닌데?” 등이다.
독설과 달리 듣는 이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화제를 모을 수 있다는 점도 직설의 장점이다. SBS ‘강심장’에서 연기자 박한별이 “평소 트림을 못해 방귀를 두 배로 뀐다”고 털어놓거나 ‘신화’의 김동완이 “이수만 사장님에게 코를 ‘선물’로 받았다”고 밝혔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롤러코스터의 김경훈 PD는 “요즘 예능 프로들을 보면 혼자 꾹 참고 있던 얘기를 방송에서 화끈하게 보여줌으로써 ‘나만 그런가’ 하고 가렵게 생각했던 부분을 확실하게 긁어주는 경우가 자주 눈에 띈다.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직설 콘셉트를 계속 유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예의를 차리는 대신 속마음 을 그대로 내뱉는 tvN 롤러 코스터의 ‘만약에 극장’(위) 과 KBS 2TV 개그콘서트 ‘두분토론’에 등장하는 남 하당 대표 박영진(왼쪽). 둘의 공통점은 ‘직설화법 으로 웃음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tvN·K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