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걷는다 마는/정처없는 이 발길/지나온 자욱마다/눈물고였다/선창가/고동소리/넷님이 그리워도/나그네/흐를 길은/한이 없어라.’
노년에 접어든 이들이 술 한 잔 걸치고 흥얼거리는 곡조 속에서 낯익게 들려오는 노래. 바로 ‘나그네설움’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극에 달했던 1940년, ‘나그네설움’은 나라 잃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며 설움을 달래주었다. ‘낮익은 거리다 마는/이국보다 차워라/가야할 지평선에/태양도 없다/새벽별/찬서리가/뼈골에 스미는데/어디로/흘러가랴/흐러 갈소냐’로 끝나는 노래는 더욱 명징한 망국의 설움을 드러내는 듯하다.
1963년 오늘, ‘나그네설움’의 백년설(본명 이창민·사진)이 30년 가까운 가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식민의 아픔과 망국의 한을 달랬던 백년설은 은퇴 1년 전 세상을 떠난 ‘애수의 소야곡’의 남인수, 1950년대 말 먼저 은퇴한 ‘타향살이’의 고복수 등과 함께 한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가수였다.
1938년 ‘문학청년’ 백년설은 일본에 유학을 떠났다 친구이자 당시 태평레코드사 문예부장이던 박영호의 권유로 데뷔했다. 첫 히트곡 ‘유랑극단’을 비롯해 ‘나그네설움’과 ‘번지없는 주막’은 지금까지도 불리는 그의 대표곡이다.
은퇴 당시 음악 프로듀서로 전업한다고 밝힌 백년설은 서라벌 레코드사의 창업자이기도 하다. 은퇴 선언 뒤 그해 7월11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무대를 떠난 그는 1979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듬해 생을 마감했다.
윤여수 기자 (트위터 @tadada11)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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