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눈물보다 아픈 웃음” 연극 ‘청춘 18대1’

입력 2011-08-12 19:3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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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보다 더 아픈 웃음을 보여주는 연극이다. 1945년의 도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보고나면 ‘우리는 1945년 이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 했구나’싶은 생각이 들어 아련한 가슴으로 지하철을 타게 된다.

광복을 두 달여 앞둔 도쿄의 한 댄스홀.
징병을 피해 일본으로 도망쳐 온 조선의 젊은이 윤철, 기철 형제. 이들의 친구 강대웅. 한국인 유학생 김건우의 연인 나츠카, 한국인이지만 일본인에 의해 입양돼 일본인으로 살고 있는 이토에(윤하민)는 우여곡절 끝에 도쿄시장을 암살하기 위한 댄스홀 폭파 사건에 연루되고, 결국 죽음을 맞는다.

주동자 중 한 명이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토에는 일본 취조관 앞에서 당시의 일을 회상한다. 단출한 구성이지만 담고 있는 무게감은 절대 가볍지 않다.

객석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 온 관객으로 가득 들어찼다. 무대 위의 배우는 웃고 있지만, 관객은 눈물을 훔친다.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는 소음이 아닌, 마치 정교하게 계산된 음향효과처럼 들렸다.

내내 마음을 움켜쥐고 있던 기자도, 죽은 김건우의 아이를 밴 나츠카가 폭탄테러 하루 전 웃으며 “이것 봐요. 아이가 움직여요”할 때, 그만 손을 놓고 말았다.
안경을 닦고 있었지만, 사실은 눈물을 닦고 있었다.



● 무대 … 빈 듯, 비어있지 않은

전면에 뚫린 두 개의 출입구, 양쪽에 각각 화장실과 창고로 출입하는 문. 오른쪽 객석 가까이 타이프라이터가 놓인 책상(취조실이다). 무대 가운데 오래된 축음기 한 대. 이것이 무대의 전부.

하지만 아이디어가 넘친다. 원래 있는 극장의 기둥은 스크린이 된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배우들은 일본어와 한국어를 혼용한다. 일본어 대사를 할 때에는 흰 기둥에 한글 자막이 비친다.

조금 과장하자면 극이 진행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암전이 없다. 잦은 암전은 극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끊는다. ‘청춘 18대1’은 그런 점에서 단 한 번도 단절없이 스토리가 흐른다. 관객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몰입하게 된다.

무대 ★★★


● 음악… 타이프라이터 소리조차 음악이 된다

피아노, 하모니카, 밴죠, 만돌린 등을 활용한 음악은 1940년대의 애절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취조관이 이토에 앞에서 신경질적으로 두드려대는 타자기 소리도 계산된 효과를 낸다. 다급하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맞춘 취조관의 타자기 소리는 미묘하게 맞물린다.
기철이 부는 서툰 하모니카 소리는 담배연기처럼 느리게 무대 위를 떠돈다.

음악 ★★★


● 안무… 몸치가 순식간에 댄서로 변신

댄스홀이 무대인만큼 당연히 춤이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한 달 후에 열리는 댄스파티에 참가할 수 있을 정도로 춤을 익히는 것.
댄스교사 이토에의 호된 지도를 받으며 인물들은 왈츠, 룸바, 차차차, 퀵스텝을 익혀 나간다.

이토에의 질책에 고개를 푹 숙인 엉성한 테러 가담자들. 그러나 짧은 암전이 지나가면 고개를 바짝 들고 멋진 춤을 보여준다.
이들이 몸치에서 댄서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극히 짧은 암전으로 슥슥 처리해버린 서재형의 연출 솜씨는 상당하다.

안무 ★★★★


● 연기… ‘18대1’의 싸움같은 연기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란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만든 작품. 배우들의 땀 냄새 물씬 나는 연기를 보고 있으면, 딱딱한 객석의자조차 호사로 느껴진다.

유일하게 멀티맨으로 등장하는 취조관(오찬우), 진짜 댄서가 아닐까(물론 아니다) 의심스러울 정도로 춤을 멋들어지게 추었던 댄스교사 이토에(김은실)의 연기력은 상당한 것이었다.

폭파 속에서 유일하게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살고 싶었다”라고 절규하는 이토에의 마지막 모습은 좀처럼 잊기 어렵다.

진짜 일본인이 한국말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나츠카(김나미)도 대단했다. 기존 작품에서 본 배우가 아니었다면, 기자조차 일본사람으로 깜빡 속을 뻔했을 정도.

“당신은 일본인이잖아”하며 거사에 끼워주지 않으려는 일행을 향해 “뱃속의 아이가 태어나면 조선인일까요, 일본인일까요”하고 몇 번이고 묻는 나츠에.
취조관은 단호히 “조센징!”이라고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와 어머니의 운명을 결정지어 버린다.

연기 ★★★★★

양형모 기자 (트위터 @ranbi361)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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