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브레이크|이숭용 은퇴] 황금장갑 하나 없지만 팀 먼저 챙긴 ‘숭캡’

입력 2011-09-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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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후배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던 이숭용이 18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후배들의 헹가래를 받고 있다. 스포츠코리아

현대시절부터 주장 중책 팀워크 중시
선수 룰 어기면 눈물 쏙 빼도록 질책
“PS 가고 싶었는데…팀 애착 가져라”

넥센 이숭용(40)의 선후배들은 한결같이 “그가 수치로 담을 수 없는 멋진 프로생활을 했다”고 평한다. 존경받는 선수이자, 뜨거웠던 남자. 태평양∼현대∼히어로즈 시절의 일화 한 토막씩을 통해 인간 이숭용을 조명했다.


○당당했지만 패배는 깨끗이 인정한 신인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신인 이숭용입니다. 1루수로 저와 좋은 경쟁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1994년 ‘태평양의 4번타자’ 김경기(현 SK 코치)의 방에 당돌한 후배 한명이 들어왔다. 순간 당황한 김경기는 “그래 한번 열심히 해보자”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프로무대는 녹록치 않았다. 이숭용은 84경기에서 0.229의 타율에 그쳤다. 시즌이 끝날 무렵 이숭용은 다시 한번 김경기의 방문을 두드렸다. “제가 졌습니다. 1루수로는 안되겠습니다.” 그렇게 둘은 절친한 사이가 됐고, 이숭용은 외야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되 패배에는 깨끗하게 승복할 줄 알았던 선수. 1998년 인천 연고 구단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 순간, 마지막 공은 ‘중견수’ 이숭용의 글러브 안에 있었다.


○자신을 다스려 후배의 마음을 얻었던 주장

본인 표현대로 “골든글러브 하나 받지 못한 선수”였지만 이숭용은 자존심 강한 스타군단 현대의 중심에 있었다. ‘자신을 먼저 다스려야 남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신조 덕이었다. 그가 현대 주장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당시 잘 나가던 후배가 훈련 도중 은행에 다녀온 사실을 알게 됐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좋게 한마디만을 건넸다. 이후 자신의 훈련규율부터 다잡았다. 얼마 뒤 그 후배는 또 한번 룰을 어겼다. 이번에는 캡틴의 눈빛부터 달랐다. 눈물 콧물을 다 쏟을 만큼 격하게 야단을 쳤다. “나를 비롯해 네 선배 중 누가 너처럼 하느냐?”는 말에 후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숭용은 지금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승리에 대한 열망 전달하고 싶었던 불혹의 고참

전반기의 일이다. 후배 한명이 개인기록 얘기를 하는 것을 우연히 들은 이숭용은 따끔하게 질책했다. “개인기록 놓고 야구하면 너 자신이 더 피곤해져. 난 나이 마흔 먹고 희생번트 2개 대는 날도 있다. 매번 나가서 열심히 하다보면 쌓이는 게 기록이야. 그런 마음가짐으로 했기 때문에 이 나이 먹도록 야구하는 거야.” 며칠 뒤 이숭용은 “팀이 계속 하위권에 있다 보면 승리의 소중함을 잊고, 개인만 챙기게 된다. 꼭 한번 플레이오프에 다시 나가고 싶어 그런 얘길 한 것 같다”고 했다. 선수시절의 마지막 해, 그는 “팀에 대한 애착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다. 이숭용이 마지막으로 나선 넥센 라커룸 안에는 ‘We are the one’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목동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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