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 기자의 호기심 천국] 선동열은 ‘선사인 볼트’…류현진은?

입력 2011-09-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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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의 주력(走力)은 구속과 관계가 있다’는 의견에 대한 야구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고(故) 최동원, 삼성 오승환, SK 김광현 등이 ‘발도 빠르고 공도 빠른’ 투수의 대명사라면 한화 류현진(사진)은 반대 사례의 대표적인 예다. 스포츠동아DB

■ 강속구 투수는 발도 빠를까?

YES! “강속구 투수들은 모두 번개”

선동열 최동원 오승환 등 팀내 단거리스타
역학적으로 땅 박차는 운동량이 구속 연결

NO! “강속구 투수중 느림보도 많아”

류현진 윤석민 150km 뿌리지만 발 느려
주력보다 순발력·신체 컨트롤 능력 중요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투수들에게 러닝을 강조한다. “러닝은 몸의 전반적인 밸런스를 잡고, 컨디셔닝에 도움이 된다”는 간접적인 이유부터, “뛰는 동작 자체가 투구의 메커니즘과 비슷하다”는 직접적인 이유까지…. 전문가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아예 “투수의 달리는 능력이 공의 스피드와 연관이 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과연 주력(走力)과 구속은 관계가 있을까.

● 빠른 팔 스윙은 하체가 리드

김성근 전 SK 감독은 ‘주력과 구속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의 신봉자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빠른 공을 던지려면 팔 스윙이 빨라야 한다. 팔 스윙은 어디에서 나오겠나. 사람은 머리부터 걸을 수 없다. 하체가 상체를 리드한다. 특히 하체의 내전근이 중요하다. 중남미 선수들이야 상체로도 빠른 공을 던지지만, (신체적인 조건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동양선수들은 특히 하체의 순발력이 중요하다.” ‘파이어볼러’ 김광현(SK) 역시 “공이 빠르다고 꼭 발이 빠르지는 않지만, 발이 빠른 선수가 공이 빠를 가능성은 높다. 투구가 몸의 순간적인 파워를 내는 동작이기 때문이다. 달리기와 투구는 중심이동 등 메커니즘도 비슷하다”고 했다.

● 선동열·고 최동원·오승환·김광현…강속구 투수는 번개?

여러 실증적인 사례들은 ‘주력과 구속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힘을 싣는다. 일례로 김광현은 SK 투수들 가운데 주력이 최상위권이다. 한화 하나마쓰 컨디셔닝 코치도 삼성시절을 떠올리며 “오승환이 현재 삼성 투수들 중에 가장 잘 달린다. 임창용(야쿠르트)도 정말 빠른 투수였다”면서 “신주영도 한화 투수 가운데 주력이 가장 좋은데, 사이드암으로서는 빠른 공을 던진다”고 덧붙였다. 스포츠동아 양상문 해설위원은 “고 최동원, 선동열 등 내로라하는 강속구 투수들도 다 발이 빨랐다”고 회상했다. 이강철 KIA 투수코치는 이를 더 상세히 설명했다. “선 감독님은 그 덩치에도 마음먹고 뛰면 투수 가운데 항상 최상위권이었다. 번트수비 할 때 상당히 민첩했다.” ‘준족’ 장기영(넥센)도 “2008시즌 마무리훈련 때 (황)두성이 형은 그 체격(187cm·96kg)에도 나보다 빨랐다”는 사례를 언급했다. 황두성은 당시 150km의 강속구를 구사했다.

● 잘 달리면, 더 큰 ‘지면반력’을 내는데 유리

체육과학연구원(KISS) 문영진 실장(운동역학전공)은 이에 대해 ‘지면반력(지면을 박차는 힘)’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설명한다. “빠른 공은 역학적으로 투수가 지면을 박차는 운동량과 관계가 깊다. 이 운동량이 결국 구속으로 전이된다. 달릴 때는 상·하체 근육이 모두 쓰이지만, 특히 대퇴근(허벅지)과 비복근(종아리), 대둔근(엉덩이) 등이 많이 사용된다. 그런데 이 근육들은 지면반력을 내는데도 관여한다. 따라서 기술적인 요소들을 제외한다고 가정하면, 잘 뛰는 선수들이 빠른 공을 던질 가능성이 높다.” 지면반력이 중요한 또 하나의 종목은 역도다. 역도대표팀은 50m단거리만 놓고 보면, 태릉선수촌 내에서도 1·2등을 다툰다. 남자역도대표팀 이형근 감독은 “역도에서도 체급과 기술 등 다른 조건이 엇비슷하다면, 단거리를 잘 뛰는 선수들이 더 많은 중량을 드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 류현진? 윤석민? 주력과 구속은 큰 관련 없다!


하지만 ‘주력과 구속의 깊은 연관’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류현진(한화)과 윤석민(KIA)이 잘 뛰느냐?”고 반문한다. 넥센 정민태 투수코치는 “달리기와 가장 관련이 없는 종목이 야구”라고 했다. 그는 현역시절 150km의 강속구를 던졌지만, 달리기는 빠르지 않았다. 이어 “투구는 ‘순간적으로’ 공을 때리는 동작이기 때문에, 달리는 것 자체보다 ‘스타트반응속도’와 연관이 깊다”고 밝혔다. 정 코치는 요미우리 시절 스타트반응 체크에서는 줄곧 상위권이었다. 한화 정민철 투수코치 역시 “주력을 구속의 직접적인 잣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 오히려 자신의 몸(체중)을 어떻게 컨트롤 하는 지가 구속과 연관이 깊다. 투수판을 밟은 상태에서 한 발을 들어 버텨 균형을 잡고, 스트라이드를 해서 송구하는 동작이 순간적으로 기민해야 빠른 공을 던진다”고 설명했다. 류현진 역시 “우사인 볼트(자메이카)가 야구 했으면 170km 던지는 것이냐? (체중이 불기 전에도) 난 빠르지 않았다.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현재 한국프로야구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리즈(LG)는 LG 투수 가운데 가장 잘 달리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내가 아는 강속구 투수들은 다 빠른 편이 아니었다. 큰 관련은 없는 것 같다. 나의 경우는 그냥 우연일 뿐”이라고 밝혔다.

● ‘주력’보다 ‘반응속도’와 ‘협응’이 구속과 더 큰 연관?

체육과학연구원(KISS) 송주호(운동역학전공) 박사의 설명은 정민태 코치와 정민철 코치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한다. “구속에 영향을 주는 운동량은 질량(선수의 체중)×속도(몸의 스피드)로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구속과 투수의 순발력은 분명 연관이 있다. 하지만 달리기가 빠르지 않더라도 순간적으로 힘을 내는 능력은 뛰어날 수 있다. 어차피 투구는 100m 달리기가 아니기 때문에, ‘반응속도’로도 (투구에 필요한) 단시간의 민첩성은 측정 가능하다.” 이어 송 박사는 “운동량 공식만으로 투구의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운동량을 전이(공에 전달)시켜 구속을 내려면, 신체의 협응(協應·코디네이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협응’의 개념은 정민철 코치가 강조한 ‘자신의 몸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과 유사하다. 아무리 근력·순발력이 좋아도 협응이 이뤄지지 않으면, 공에 전달되는 운동량에 큰 손실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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