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취객 치고 15분간 4.6km 매달고 다녔다

입력 2011-10-26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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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대 ‘엽기 교통사고’

부산에서 30대 남자가 승용차에 치인 뒤 차량 밑에 매달려 4.6km나 끌려다니다 결국 숨진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당시 대리운전사와 승용차 주인이 번갈아 차량을 몰았지만 두 사람 모두 차량 밑에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고 15분 이상 운전했다.

○ 어떻게 4.6km나 끌려다녔나

경찰에 따르면 숨진 오모 씨(32)는 광안리해수욕장 인근에서 회식을 마치고 22일 오전 2시 18분 집 근처인 해운대구 우동 해운대소방서 앞에서 택시에서 내렸다. 도로를 건너던 오 씨는 취기를 이기지 못해 왕복 6차로에 쓰러졌다. 이때 회사원 김모 씨(29) 소유의 아반떼 차량이 오 씨를 덮쳤다. 김 씨는 회식에서 술을 마신 상태여서 대리운전사 박모 씨(46)가 운전하고 있었다. 차량이 덜컹거리자 박 씨는 “사람을 친 것 같다”며 내려 차량 뒤쪽을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자 다시 차를 몰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이때부터 오 씨가 차량에 끌려다닌 것으로 보고 있다. 소방서 인근 교차로에 오 씨의 휴대전화가 떨어져 있고 신발 한 짝은 거기서 10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10분 뒤 중동 미포오거리 인근에서 김 씨는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친구를 내려준 뒤 대리기사를 보내고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김 씨는 오전 2시 35분경 해운대 신시가지 자신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후진주차 하던 중 바퀴에 뭔가 걸린 느낌을 받았다. 차에서 내려 확인해 보니 차량 밑에 오 씨가 깔려 있었다. 김 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깔려 있던 오 씨는 구조 순간까지 구조대원의 손을 잡는 등 살아 있었으나 해운대 백병원으로 옮겨 응급치료를 받다 오전 5시 45분경 숨졌다.

○ 수막현상으로 피해자 감지 못한 듯

시신 부검 결과 오 씨는 머리에 피를 많이 흘려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15분 이상 도로 표면에 긁힌 탓에 오 씨의 등과 팔목 등에는 찰과상이 발견됐다. 경찰은 오 씨가 4.6km나 차량 밑에서 끌려다녔음에도 운전자가 감지하지 못한 것은 견인 고리와 수막(水膜·미끌림)현상 때문으로 보고 있다. 승용차 앞부분에 있던 견인 고리에 오 씨의 허리띠가 고정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당시 부산에 비가 내리면서 발생한 ‘수막현상’으로 오 씨가 차량 밑에 있는데도 운전자가 감지하지 못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오 씨는 끌려다니면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 것으로 보인다. 운전석 쪽 승용차 아랫부분에 오 씨가 잡은 것으로 보이는 피 묻은 손자국이 발견됐다.

다만 경찰은 “박 씨는 사고 당시 김 씨에게 사람을 친 것 같다고 이야기하거나 차량을 세운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오 씨가 박 씨 운전 구역인 소방서 근처에서 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26일 박 씨를 상대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벌여 혐의가 확인되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 혐의로 형사처벌할 계획이다. 술을 마시고 오 씨를 매단 채 운전을 한 김 씨도 위험 운전치사상 혐의로 처벌하기로 했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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