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약자의 먹이사슬… 한국 교실에도 고스란히”

입력 2011-11-0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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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다룬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연상호 감독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둥근 얼굴에 짙은 눈썹, 알 듯 모를 듯한 몽롱한 눈빛까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홍익대 앞 카페에서 만난 연상호 감독(33·사진)은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3일 개봉) 캐릭터를 닮았다. “만화가들은 자기 얼굴을 거울로 보며 캐릭터를 그리죠. 그러다 보니 캐릭터와 얼굴이 닮게 돼요.”

약간은 어수룩해 보이는 연 감독이지만 작품에는 날이 서 있다.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그의 작품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잔혹 스릴러다. 애니메이션은 주로 가족과 아이들이 보는 장르라는 선입견을 깬다. 등급도 ‘청소년 관람 불가’다. 영화는 9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영화진흥기구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 CGV무비꼴라쥬상 등 3관왕에 올랐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 이어 올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또 다른 수확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영화는 중학교 1학년 교실을 배경으로 먹는 자와 먹히는 자의 처절한 먹이사슬을 그렸다. 가난하고 힘없는 경민(목소리 연기 박희본)과 공부는 잘해도 싸움은 젬병인 종석(김꽃비)은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는 반 아이들의 먹잇감이다. 싸움 잘하는 친구 철이(김혜나)가 이들을 돕지만 먹이사슬은 깨지지 않는다. 구조화한 폭력이 이들을 옭아매고 있기 때문이다.

교실을 너무 잔인하게 그렸다고 했더니 “학교에서의 폭력과 차별의 정도는 (영화보다) 더하다”고 반박했다. “부산에서 관객과 대화를 해보니 자기 학교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망치로 때리고, 온 교실을 혀로 핥게 하는 일도 있다고 들었어요.”

KT&G 상상마당 제공

KT&G 상상마당 제공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하기 위해 캐릭터들을 우스꽝스럽고 기괴하게 표현했다. 시종일관 어둡기만 한 분위기가 감돈다. “학교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계층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밑바닥 사람들의 절망감을 모릅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마치 귀신의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이들의 절망감을 체험하도록 하고 싶었죠.”

영화 제목의 돼지는 ‘하위계층’을 뜻한다. 연 감독은 돼지가 머리가 좋은데도 개보다 대접을 못 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영화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은 ‘상위계층’인 개로 묘사된다.

국내 다른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그렇듯 그도 어렵게 영화를 만들었다. 1억5000만 원의 제작비를 씨앗으로 KT&G 상상마당에서 1억여 원을,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2000여만 원을 지원받았다. “그래도 행복합니다. 중학교 때부터 꿈꾸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감독의 꿈을 이뤘으니까요. 애니메이션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어요. 매일 조금씩 그리면 됩니다.” 그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조금씩 그리면) 언젠가는 끝난다’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고 전했다.

차기작은 사이비 종교에 관한 스릴러로 제목은 ‘사이비’다. “악인인데 진실을 말하는 캐릭터와 선한데 거짓을 말하는 인물이 정당성을 두고 다투는 내용입니다. 조금씩 그리면 2014년쯤 나올 겁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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