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 김기동이 제2의 인생을 준비한다. 연습생에서 출발해 구단 레전드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김기동은 영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을 계획이다. 스포츠동아DB
688개의 파울과 605개의 슛
그리고 35번의 경고와 2번의 퇴장.
포항 스틸러스 ‘레전드’ 김기동(39)이
K리그 21시즌을 뛰며 남긴 기록들이다.
그는 이 발자취를 뒤로 하고
선수 생활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다.
영국 지도자 연수를 준비 중인 김기동과
14일 전화인터뷰를 했다.
K리그 21시즌 501경기 39골 40도움…
포항 2군→방출→금의환향 연습생 신화
타구단 현역 영입 제안 있었지만 거절
포항의 전설로 남고 싶어 지도자 준비
롤모델은 맏형 리더십 니폼니시 감독
● 은퇴 비하인드 스토리
은퇴 결심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사실 김기동은 올 시즌 후 구단에 “1년 더 플레잉코치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부상도 없고 1년 더 뛸 자신이 있었다. 40(골)-40(도움) 클럽 가입에도 딱 1골 남겨 놓고 있었다. 그러나 포항은 난색을 표했다. 이 때 다른 팀에서 플레잉코치 제의가 들어왔다. 김기동은 2007년과 작년에도 몇몇 팀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었다. 그 때는 포항에서 선수로 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 거절했지만 이번 상황은 좀 달랐다. 많은 고민 끝에 포항 레전드로 남기로 했다.
“포항 선수라는 자부심이 가장 컸다. 내가 입단할 때 포항은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모두 거쳐 가는 명문 팀이었다. 여기서 마무리하는 게 맞다. 시원섭섭하지만 며칠 지나고 나니 잘 결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 연습생이 레전드로
그는 연습생 출신이다. 1991년 포항 2군에 입단했다. 대표팀 수석코치 박태하가 입단 동기다. 김기동은 신평고 3학년 때 한 번도 전국대회 준결승에 들지 못했다. 당시에는 4강 제도가 있어 4강에 들지 못한 학교에는 딱 1명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쿼터가 주어졌다. 1순위는 김기동이었지만 감독이 양보를 권했다. 알고 보니 포항 2군에서 김기동과 동기생 1명을 연습생으로 받아줄 용의가 있다고 했다. 김기동이 포항을 선택하면 또 다른 동기 1명이 대학을 갈 수 있어 3명이 선수생활을 더 할 수 있었고, 김기동이 대학을 고집하면 자신 1명만 살 수 있었다.
포항으로 갔다. 2년 동안 1군 경기를 아예 못 뛰고 쫓겨나다시피 부천으로 갔다. 그곳에서 김기동은 다시 태어났다. 절실함이 그를 살렸다. “내가 한 게 축구 밖에 없는데 다른 새로운 걸 시작할 엄두가 안 났다. 나는 축구가 아니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절실함이 있었다.”
니폼니시 감독과의 만남은 행운이었다. 기본기와 패스를 중시하는 니포 축구 아래서 김기동의 기량은 만개했다. 2003년 친정팀 포항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포항에서 강력하게 김기동을 원했다. 10년 전 방출되다시피 짐을 싼 선수가 금의환향했다.
● 롱런의 비결은 절제
롱런의 비결. 그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대답은 한결같다. “자기 절제만 잘 하면 된다.” 술도 포함된다. 김기동도 소싯적에는 술 좀 마셨다. 프로 초년병 시절 선배들과 어울리기 위해 배웠다. 주량도 셌다. 한 번도 취한 적이 없었다. 선배들 데려다주고 뒤치다꺼리하는 건 늘 그의 몫이었다. 1997년 무릎 부상을 당해 4개월 쉬며 달라졌다. 선수생활을 하루라도 오래 하려면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다. 철저하게 금주했다. 밤 10시면 자는 습관도 이때부터 길렀다.
이제는 주변 사람들이 먼저 챙긴다. 술도 안 권할뿐더러 밤 10시가 넘으면 왜 안 들어 가냐고 채근한다. 김기동은 “10시에 잔다는 게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바람에 밤에 사람들 눈 무서워 밖에 다니지도 못한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후배들에게 꼭 당부하고픈 말이 있다. 김기동도 최근 몇 년간 붙박이 주전이 아니었다. 한 달에 1번꼴로 뛸 때도 많았다. 선수들은 이 때 나태해지기 쉽다. 그러나 2군 설움을 겪어봤던 그는 경기에 못 나갈 때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안다. “감독님이 한 달 만에 기회를 줬는데 몸이 엉망이면? 그 기회 다시는 안 온다. 경기 안 뛸 때는 뛰는 선수들보다 3배는 노력해야 한다.”
● 맏형 리더십 꿈꿔
지도자 롤 모델은 니폼니시 감독이다. 부천 시절 니폼니시 감독은 특정 선수를 공개적으로 타박하거나 꾸짖는 일이 없었다. 며칠 지켜보다가 조용히 불러 면담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했다. 당시 한국축구 문화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는 “강압적인 건 싫다. 요즘 신태용 감독의 맏형 리더십이 화제인데 나도 그렇게 선수들 눈높이에서 가르치고 호흡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 김기동은?
● 생년월일 : 1972년 1월12일
● 신장/체중 : 171cm/68kg
● 포지션 : 미드필더
● 학력 : 신평중-신평고
● 프로경력
- 포항(1991∼1992)
- 유공(1993∼2002)
- 포항(2003∼2011)
- 프로통산 501경기 출전(K리그 필드플레이어 최초로 500경기 돌파)
● 대표경력 : 1998프랑스월드컵 예선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