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못이겨 볼던진 정황들 포착
승패 무관 경기조작 죄의식 덜해
범죄가 성립되려면 기본적으로 발각됐을 때의 리스크보다 성공했을 시의 이득이 훨씬 커야만 동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프로야구 경기조작은 상식선에 볼 때, 아주 비합리적인 사건이다.
이미 고액연봉을 받고 있거나 앞길이 창창한 선수들이 몇 백 혹은 몇 천 만원에(그나마 돈을 받았는지도 불분명하다) 인생을 걸고, 조작에 임하는 것은 위험 대비 수익을 고려하면,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그들은 절대로 안 걸릴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일까? 그럼 좀 이상하다. 완전범죄는 없는데? 양심의 가책은 어떡하고?
이런 모순성에 답을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근거에 대해 한 야구인은 이렇게 말했다. “승부조작이 아니라 경기조작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된다.” 승부조작을 하자는 제의를 받았더라면 당연히 절대다수 야구선수들은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승패를 바꾸는 것은 누가 봐도 스포츠정신에 어긋나고, 팀을 배신하는 짓이다. 범죄이고, 양심의 가책에 위배된다는 것을 바로 자각하기에 어지간한 배짱이 아니고는 저지를 수가 없는 것이다. 선후배가 부탁을 하든 말든 밥그릇이 끊길 일이기에 못 들어준다.
그러나 지금에서야 ‘경기조작’이지 당시 시점에서는 ‘볼(최고로는 볼넷) 하나만 던져달라’는 부탁일 뿐이었다.
설령 볼 하나 던져주더라도 그 자체로 승패 자체가 뒤집어질 개연성은 협소하다. ‘경기를 조작한다’는 죄의식조차 갖기 힘든 야구만의 특수성이다.
실제 스포츠동아 취재 결과, 돈에 눈멀어서가 아니라 선후배의 부탁에 못 이겨 볼을 던져준 정황들이 포착됐다. 과거 특급투수가 상대팀에서 뛴 동문을 위해 경기 승패와 무관한 상황에서는 직구만 던져준 에피소드는 오히려 낭만적 미담으로 통했다. 이런 문화에서 ‘볼 하나만 던져달라’는 부탁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이것은 범죄’라는 의식이 있었을까.
그러다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경기조작’이라는 용어로 규정되니 연루된 선수들은 내색은 못해도 속으로 기겁할 수밖에 없을 상황이다.
“8개 구단 어디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괴담이 떠도는 것도 이런 개연성에 근거한다. 사안이 밝혀지더라도 대가성의 유무, 가담의 적극성에 따라 차별적으로 대처해야 된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tsri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