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차범근 “두리야 비싼거 그만사고 공부좀해”

입력 2012-03-22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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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SBS해설위원은 유럽에서 뛰고 있는 후배들의 질문에 자신의 인생경험을 담은 조언을 해줬다. 스포츠동아DB

차범근 “깝깝한 미래? 두리야 밖은 더 춥다, 각오해!”
유럽파 8인, 차붐 차범근에게 길을 묻다

유럽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 힘든 시즌을 보내고 있다. 붙박이 주전선수가 별로 없다. 축구선수 입장에서 그라운드를 밟지 못하고 벤치를 지키는 일만큼 고역은 없을 것이다. 주전 경쟁 말고도 어려운 점은 많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한국 축구선수 가운데 가장 먼저 유럽 무대를 밟았고, 가장 성공적으로 선수생활을 마친 이는 차범근(59) SBS해설위원이다. 그가 분데스리가에 남긴 발자취는 하나하나 거론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차 위원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달해줄 수는 없을까. 스포츠동아가 창간 4주년 기획으로 <유럽파 8인, ‘차붐’에게 길을 묻다>를 마련했다. 유럽에서 뛰고 있는 8명의 선수가 궁금한 점과 고민거리를 툭 털어놓았다. 차 위원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생생한 답변을 정이 듬뿍 담긴 말투로 보내왔다.

Q. 제 나이 서른둘…미래가…
A. 망가진 아빠 친구들 봤지?
비싼 거 그만 사고 공부해


○스코틀랜드 셀틱 차두리(32)

-아버지가 제 나이 때는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이런 것도 있었나요.

“이제 슬슬 걱정이 될 때지. 꿈도 희망도 걱정도 많아질 시기다. 그러나 너희들처럼 축구를 한 선수들이라면 인생 최고의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선수생활도 쉽지 않지만 그걸 벗고 나오면 바깥세상은 더 춥고 냉혹하다. 두리 너는 아빠 친구들이 분데스리가 스타로서 폼 나게 살던 모습도 보았지만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비교해 보고 있으니까 내가 긴 말을 안 해도 잘 알거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비싼 것 사들이지 말고 아끼고 공부 많이 해라!!!!”

Q. UEFA컵 우승 기분은?
A. 88년 그 컵 들고 은퇴 결심
꽤 무거워서 머리에 올렸어


○스코틀랜드 셀틱 기성용(23)

-UEFA컵에서 두 번이나 우승을 차지하셨는데 그라운드에서 UEFA 우승컵을 들어올릴 때는 어떤 기분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UEFA컵? 그거 꽤 무거워. 하하하. 나 그거 들고 운동장 도는데 장난이 아니더라. 그래서 머리위에 올렸다. 1980년에는 사실 잘 몰랐어.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그때는 4강에 독일 팀이 모두 올랐으니까. 그때 준결승에서 바이에른을 꺾고 결승에 갔었지. 근데 유럽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나니까 그게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 1988년에는 정말 벼르고 기다렸다. 저걸 내가 꼭 들어볼 거라고. 그거 들어보고 바로 결심했다 이제 은퇴해도 되겠다고. 그래서 그 다음해에 지도자 자격 공부해서 은퇴했지.”

Q. 독일어 공부 고민입니다
A. 독일어는 내 아킬레스건!
골 소식 정말 기분 좋았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구자철(23)

-독일에 있다보니 관계자들이나 팬들로부터 감독님 선수시절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가시기 전에 힘들었던 점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저희 같은 어린 후배들이 감독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어떤 것에 중점을 둬야할지 감독님의 노하우와 생각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전에 볼프스부르크 방문하셨을 때 여전히 독일어를 잘 구사하시던데 언어 공부를 어떻게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독일어? 그거 나의 아킬레스건이다.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왜 독일말을 그렇게 잘 못하는지. 잘해 보이는 것은 너의 감독이랑 리트바흐스키랑 모두 친구들이니까 그냥 알아서 들으라고 막 하는 거야. 아마도 반은 알아듣고 나머지 반은 짐작했을 거다. 하하. 너는 벌써 그 정도면 독일 말을 꽤 잘하는 거야. 성격도 해외에서 지내기에 아주 이상적이야. 밝고 자신감 있고 적극적이고. 지난 주말 네가 골을 넣어서 나 너무 좋았다. 축하한다.”

Q. 팀 훈련량이 너무 적어요…
A. 같은 훈련도 강도 높여봐
남은 힘 실전에서 쏟으라고


○독일 함부르크 손흥민(20)

-독일에서는 훈련 량이 너무 적다 싶을 정도로 많지 않습니다. 전 개인 훈련을 열심히 하는 편인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독일에 처음 진출했을 때 막막한 느낌도 있었는데 감독님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기나 훈련에 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훈련이 적다고? 하하하. 적다고 느껴지면 훈련시간에 같은 훈련이라도 강도는 더 높여봐. 같은 100을 한국에서 두 시간에 했다면 한 시간에 해보라고. 그러면 짧은 시간에 풀로 쏟아 부을 수 있는 훈련이 되어서 경기장에 나가면 90분 동안 경기 내용이 더 찐하지. 물론 두 시간을 안 하면 몸이 근질근질해. 하다 만 것 같고. 그래서 나도 항상 남아서 혼자 더 하다가 감독한테 끌려 들어오곤 했어. 그 힘 아꼈다가 운동장에서 쏟으라고. 2년 지나니까 그게 몸에 익더라. 노력하고 기다려. 안 그러면 후기리그에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지고 나중에는 결국 부상이 온다.”

정리|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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