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그들을 말한다] 김태형 “95년 OB 우승때 안방마님이 바로 나”

입력 2012-03-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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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사진 제공|SK 와이번스

입단당시 OB 포수는 김경문·조범현 선배
어깨 너머로 동작 하나하나 배워

눈썰미 좋고 영리해 ‘투수리드의 달인’
95년 마스크 쓰고 KS 우승 ‘생애 최고’


찰스 존슨은 1990년대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수비형 포수로 꼽혔다. 1996년 그의 시즌 타율은 불과 0.218. 하지만 그는 당당히 플로리다 말린스의 주전 안방마님으로 활약했다. 9명의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투수와 반대 방향을 응시하는 포지션. 하지만 포수의 마음은 결국 투수와 같은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 이렇게 투수를 끌어가는 능력은 포수의 덕목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1990년대 OB의 안방을 지켰던 김태형(45·SK 배터리코치)은 투수리드의 귀재로 꼽힌다.


○1995년 OB 우승의 순간을 지킨 안방마님

1995년 롯데와 OB의 한국시리즈. OB 김인식 감독(현 KBO 기술위원장)은 1차전에서 거포유망주 이도형을 선발포수로 내세웠다. 하지만 1차전 패배 이후 마스크를 김태형에게 넘겼다. 김 위원장은 “아무래도 큰 경기이기 때문에 투수들을 잘 리드할 포수가 필요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7차전 우승의 순간에도 김태형은 안방을 지켰다. 페넌트레이스에서 팀 도루 220개를 기록하며 기동력 야구로 돌풍을 일으킨 롯데를 상대로 한 승리였다.

“특히 3차전 2-1로 박빙의 리드를 지키던 7회말 1사 1·3루서 피치드아웃으로 1루주자의 도루를 저지한 것은 여전히 잊지 못하는 장면입니다.” 당시 볼카운트는 2-2. 누가 봐도 타자와 승부를 하는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벤치의 배짱과 김태형의 정확한 작전수행은 작품을 빗어냈다. 김태형은 2차전 0-1로 뒤진 5회말 동점타를 기록하는 등 20타수 5안타(0.250)로 타석에서도 제 몫을 했다. 신일고∼단국대를 거치며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한 아쉬움을 날린 시리즈였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포수를 배우다

아마추어 시절까지만 해도 그는 타격에도 재능을 보인 선수였다. 단국대에선 3번타자로 활약했고, 1988서울올림픽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1990년 프로에 데뷔했지만 당시 OB에는 김경문(현 NC 감독)-조범현(전 KIA 감독)이라는 큰 산이 버티고 있었다. “좋은 선배 밑에서 운동을 한 게 행운이었어요. 그 때만 해도 포수에 대해 백지상태나 다름없었어요. 곁눈질로 선배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배웠지요. 특히 김경문 감독님께서 조용조용히 저를 가르쳐 주시던 기억이 나네요.” ‘이리 뒹굴고, 또 저리 뒹굴고’를 반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마침내 포구와 블로킹에 대한 자신감이 싹텄다. 1990년 4월 9일 잠실 LG전에 교체 출전한 김태형은 프로 첫 타석에서 정삼흠(당시 LG)을 상대로 좌전안타를 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박철순, 윤석환처럼 하늘같은 선배들이 마운드에 서면, 사인을 한번 내기도 버거워서 부들부들 떨었지요. 그 때 고개 안 흔들고 제 사인대로 던져줬던 선배들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 고마워요.”


○곰의 탈을 쓴 여우

1990년대 OB의 에이스였던 SK 김상진 2군 투수코치는 “당시 OB 투수들이 공격적 피칭을 할 수 있었던 데는 (김)태형이 형의 리드가 큰 몫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물론 당시 OB에는 김상진, 권명철 등 수준급 투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김상진 코치는 “아무리 좋은 공을 갖고 있는 투수라도 해도, 포수의 성향은 투구내용에 큰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김태형은 투수들이 자기 공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이끄는 포수였다.

OB 시절 동료인 안경현 해설위원 역시 “(김)태형이 형은 상당히 영리하고 눈썰미가 좋았다. 그 날 투수의 공과 타자의 컨디션을 즉각적으로 체크해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더듬었다. 곰 같은 외모와는 달리 속에는 여우의 꾀를 감추고 있었던 셈이다.

SK 이만수 감독은 “포수는 투수와의 호흡뿐만 아니라, 팀 전체를 리드하는 면모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태형은 OB 시절 팀워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후배들과 잘 어울리는 선배였지만,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후배에게는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다. 덕분에 OB 선수단 내부에는 기강이 바로 서 있었다. 그런 리더십을 인정받아 2000년 주장과 2001년 플레잉코치를 역임했고, 결국 2001년 2번째 우승을 차지한 뒤 현역에서 물러났다.


○습관성 어깨탈구 이겨낸 악바리

최고의 수비형 포수로 꼽혔지만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바로 송구 문제였다. 사실 여기에는 사연이 숨어있다. “1991년쯤이었나? 송구를 하다가 어깨가 쑥 빠졌어요. 습관성 어깨탈구가 됐죠. 아…. 내가 포수인데 ‘이래서 야구하겠나’ 싶더라고요. 솔직히 그 전에도 강한 어깨는 아니었지만 더 힘들어졌죠.” 포수에게는 치명적인 부상. 살 방도를 찾아야 했다. 결론은 ‘빠른 풋워크와 송구의 정확성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3~4번쯤 어깨가 빠지고 나니까, 좀 요령도 생기더라고요.” 그는 습관성 어깨탈구를 근성으로 이겨내며 이후 무려 10년간 선수생활을 더 했다.

“프로선수 11년과 배터리코치 10년을 돌이켜볼 때, 투수리드란 무엇인가?”라는 마지막 질문…. 김태형 코치는 “투수를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어야 진짜 포수”라며 웃었다. 결국 그는 공이 아니라 투수의 마음을 받은 것이었다.


SK 김태형 코치는?

▲생년월일=1967년 9월 12일
▲출신교=화계초∼신일중∼신일고∼단국대
▲키·몸무게=173cm·76kg(우투우타)
▲프로선수 경력=1990년 OB∼1999년 두산(2001시즌 후 은퇴)
▲통산 성적=12시즌 827경기, 통산타율 0.235, 9홈런, 157타점, 432안타
▲코치 경력=2002년 두산∼2012년 SK
▲2012년 연봉=8700만원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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