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 아담 우드워드(왼쪽)-유선영.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1타차 앞서던 김인경 18번홀 퍼트 놓쳐
극적인 연장 기회…첫 홀 버디로 마침표
치명적 발바닥 통증 이겨낸 투혼 감격도
LPGA 입성 7년만에 생애 두번째 우승
극적이었다. 72홀 경기가 끝날 때까지 호수에 빠질 주인공은 가려지지 않았다.
2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란초 미라지의 미션힐스 골프장(파72)에서 열린 미 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 대회 그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총상금 200만 달러)의 우승 경쟁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었다. 경기 중반 분위기는 서희경(26·하이트)이 주도했다. 한때 2타 차 선두로 나서며 우승을 눈앞에 뒀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서희경의 페이스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메이저대회라는 부담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마지막 18번홀에 도착했을 때는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이어 김인경(24·하나금융)이 선두를 꿰찼다. 마지막 18번홀 30cm 파 퍼트를 남겨 둔 순간까지도 우승은 그의 차지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반전이 펼쳐졌다. 눈 감고도 넣을 수 있었던 그 짧은 퍼트를 놓쳤다.
그린을 빠져나가던 유선영(26·정관장)은 다시 코스로 돌아왔다. 1타 차 2위로 먼저 경기를 끝낸 유선영에겐 행운이었다. 졌다고 생각했는데 연장 기회를 얻었다. 나란히 9언더파 279타를 쳐 연장전에 들어갔다. 분위기는 급속히 유선영 쪽으로 기울었다. 연장 첫 홀. 유선영이 티샷한 공은 페어웨이에 잘 떨어졌다. 반면 김인경의 공은 왼쪽 러프로 갔다. 승부는 그린에서 결정됐다. 김인경의 버디 퍼트가 홀에 미치지 못하고 멈췄다. 이어 유선영의 버디 퍼트는 그대로 홀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으로 승부가 끝났다.
○부상투혼
우승도 극적이었지만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는 가슴을 찡하게 했다. 유선영은 몇 년 전부터 발바닥 통증에 시달렸다. 오래 걷거나 몸이 피곤하면 통증이 더 심해진다.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을 만큼 통증은 심하다. 5시간씩 걸어야 하고, 하체에 힘을 실어놓고 스윙해야 하는 골프선수에겐 치명적인 부상이다. 부상은 성적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유선영은 미 LPGA 투어 시즌 최종전 CME그룹 타이틀 홀더스 대회에서 꼴찌를 했다. 나흘 내내 언더파 한번 기록하지 못한 채 21오버파를 쳤다. 경기 후 귀국해서 병원을 찾았다. 왼쪽 엄지발가락과 발바닥을 연결하는 부위의 뼈에 금이 갔다는 진단을 받았다.
겨우내 치료를 받느라 훈련은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치료를 하기 위해선 쉬어야 하지만 시즌이 코앞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응급처방으로 자신의 피를 뽑아 부상 부위에 주입하는 자가혈 시술까지 받았다. 완쾌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다시 필드에 섰다. 당연히 성적은 떨어졌다. 2월 첫 출전한 혼다 타일랜드에서 공동 49위를 했고, 이어진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 공동 13위, RR 도넬리 파운더스컵에서 공동 58위를 기록했다. 평범한 성적이다.
회복 기미를 보인 건 3월말 기아클래식 때부터다. 유선영은 이 대회에서 준우승하며 예전의 감각을 되찾았다. 그리고 일주일 뒤, 시즌 5번째 출전한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극적인 우승을 만들었다. 부상을 참아가면서 만들어낸 값진 승리이다.
○실내 연습장에서 시작해 메이저 제패
11살 때 골프를 시작했다. 아버지 유대림 씨가 다니던 집 앞 상가의 실내연습장에서 골프를 처음 배웠다. 우연한 계기에 초등학생 골프대회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경험 삼아 한번 나가보자는 생각에 출전을 결심했다. 첫 대회 성적은 95타로 입상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 날 골프장에서 우연히 들은 얘기는 유선영의 인생을 바꿔 놨다. 아버지 유 씨는 “엄마가 데리고 대회에 나갔는데 옆에서 다른 선수의 부모와 코치가 ‘저 애는 누군데 상당히 공격적이고 공을 때리는 능력이 좋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 기분이 좋아진 엄마가 집에 와서 나에게 말을 전했고 다시 그 코치를 찾아가 골프를 가르쳐도 될 만큼 소질이 있는 지 물었다. ‘한번 시켜봐라’는 말만 믿고 골프를 가르치게 됐다”고 회상했다. 유 씨의 교육은 남달랐다. 일반적인 골프대디와는 거리가 멀다. 그 흔한 캐디 한번 해보지 않았다. 다른 아버지들처럼 골프장을 따라다니며 성적에 일희일비하지도 않았다.
“선수라고 잘 못 치고 싶어서 못 치지 않았을 것이다. 못 쳤다고 꾸짖어봐야 좋을 게 없다”는 게 유 씨의 설명이다.
서희경, 홍란 등과 동기인 유선영은 고교시절 국가대표(2002∼2004년)로 활동할 정도로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미국으로 건너가 2부 격인 퓨처스 투어에 도전했고, 상금랭킹 5위에 오르면서 LPGA 티켓을 잡았다. 2006년 LPGA에 입성했다. 2010년 사이베이스 매치플레이에서 첫 승을 기록했고, 이번이 생애 두 번째 우승이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na18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