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국 사커에세이] ‘수백억 오일머니 뿌리친 박주영’ 병역 이행 약속에 믿음가는 이유

입력 2012-04-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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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스포츠동아DB

박주영의 병역연기를 둘러싼 논란을 접하면서 2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하나는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박주영을 합류시키는 문제로 마크 켈레르 당시 AS모나코 단장이 ‘도대체 병역의무가 뭐냐’며 전화를 걸어왔던 일이고, 또 하나는 작년 여름 박주영의 중동이적을 놓고 벌였던 숨바꼭질이다.

모나코가 박주영의 병역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광저우아시안게임 대표 발탁을 전후한 시점일 것이다. 당시 박주영은 잘 나갔고, 한창 리그가 진행 중일 때 A대표팀도 아닌 올림픽팀에 가기 위해선 병역문제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시안게임을 우승하면 병역면제가 된다는 사실도. 모처럼 특출난 아시아선수를 만나 기대에 부풀었던 모나코로선 당황했고, 부랴부랴 필자에게도 이것저것 상세히 물어왔다. 당시 필자는 “병역문제에 관한 한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던 기억이 난다. 모나코가 박주영의 장기체류비자를 준비하기 시작한 시점도 이때가 아닐까 싶다. 모나코에 박주영의 병역문제는 엄청난 이적료 차이를 가져오는 뜨거운 감자였다.

이미 지나간 중동이적을 떠올리는 건 박주영이 지금 안타까운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만일 어렵게 발을 들여놓은 아스널에서 훨훨 날았다면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일이었지만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을 보면서 ‘차라리 돈이라도 듬뿍 챙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명예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프로라면 상대적으로 수입이 적은 유럽리거보다는 짧은 기간 거액을 벌 수 있는 중동클럽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박주영은 중동에서 ‘백지수표’로 통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클럽에선 구단주인 왕자가 박주영을 영입해 달라며 필자에게 4년 연봉으로 1000만 유로(당시 환율 160억원)를 제시했다. 박주영이 원했던 연봉보다 오히려 많았지만 이후 박주영은 어쩐 일인지 한 달 넘게 접촉이 되지 않았다. 생각이 바뀌었다면 본인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면 그만이었지만 그는 침묵했다. 더구나 병역문제도 이미 양해가 된 터였다. 이후 아랍에미리트의 한 명문클럽에선 3년 계약에 총 2100만 달러(당시 환율 약 250억원)를 제시해왔지만 필자는 곧바로 ‘영입 불가능’을 통보했었다.

직업이 선수대리인인 필자는 박주영이 병역연기를 한 것에 대해 옳고 그름을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 그러나 박주영이 과연 병역을 이행할 의지가 있느냐 하고 누가 물어온다면 ‘그렇다’고 본다. 어찌됐건 박주영은 중동의 엄청난 오일머니를 뿌리치고 명예를 택했다. 그만큼 자존심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이기에 후폭풍을 감수하면서까지 병역을 기피할 것이라곤 믿기 어렵다. 현역병으로 입대하겠다는 것도 진심일 것이다. 다만, ‘합법적인 병역연기’에 이처럼 비난이 쏟아질 줄은 그 자신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만일 필자가 박주영의 대리인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박주영에게 과연 병역연기를 포기하라고 할 수 있었을까. 분명 유혹을 떨쳐버리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주)지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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