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단독 인터뷰] KC 로얄스 브루스 첸 “LG 유니폼 입으려 했다”

입력 2012-04-13 11: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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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 로얄스의 1선발 브루스 첸이 한국 언론과는 처음으로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동아닷컴 이상희 객원기자

[동아닷컴]

●서재응, 봉중근과 친분…”두 선수 보고 싶다“
●2009년 LG와 계약 직전 결렬
●11개 팀에서 뛴 저니맨, 시련 딛고 화려한 부활


메이저리그에서 베테랑 선수가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부진해도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는 냉정한 곳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베테랑 투수가 있다. 주인공은 KC 로얄스의 좌완 에이스 브루스 첸.

1977년 생인 첸은 다른 투수들과 달리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투구내용이 좋아지고 있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이 아닌 30대 중반에 접어든 요즘이 전성기다. 이번 시즌에는 당당히 KC의 1선발을 차지하며 개막전에 출격하는 감격을 맛봤다.

첸은 중국계 파나마인으로 약 20년 전인 지난 1993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하고 미국에 진출했다. 당시 그의 나이 16세. 어린 나이에 프로팀에 입단했을 만큼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첸은 이때만 해도 자신이 장차 ‘저니맨’이 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저니맨’은 방출이나 트레이드 등을 통해 팀을 자주 옮겨 다닌 선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첸은 1998년 브레이브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후 필라델피아 필리스, 뉴욕 메츠, 워싱턴 내셔널스의 전신인 몬트리올 엑스포스, 신시내티 레즈, 휴스턴 애스트로스, 보스턴 레드삭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텍사스 레인저스, 그리고 로열스까지 유니폼을 11번이나 갈아 입은 메이저리그의 대표 ‘저니맨’이다.

계속된 트레이드, 방출, 성적 부진, 잦은 부상과 힘든 재활과정 등 보통 선수 같았으면 진작에 포기했을 만도 한데 첸은 야구를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매번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보란듯이 자신의 11번째 팀인 로열스에서 데뷔 후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시즌 1선발의 중책을 맡은 첸은 2경기에 선발 등판해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1.64를 기록 중이다. 특히 개막전에서는 강타자 푸홀스가 포진한 에인절스 타선을 6이닝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이번 시즌도 변함 없는 활약을 예고했다.

메이저리그에서 14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첸은 통산 60승 58패 평균자책점 4.49를 기록하고 있다.

뜨거운 열정과 굳은 의지로 젊은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는 첸을 미국 현지에서 동아닷컴이 만났다. 한국인이라고 하자 추신수, 서재응, 봉중근, 최희섭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LG 트윈스에 입단할 뻔 했던 이야기까지 털어놨다.

지금부터 은퇴 직전의 저니맨에서 에이스로 우뚝 선 그의 드라마틱한 야구인생을 들어보자.

<다음은 브루스 첸과의 일문일답>

-국적이 파나마다.

: 그렇다. 파나마 이민 1세대인 조부모를 제외하고 나와 부모님 모두 파나마에서 태어나고 자란 중국계 파나마인이다.

-스페인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잘한다. 중국어도 할 줄 아나.
: 할머니 때문에 광동어(캔토니언)는 조금 할 줄 안다. 하지만, 북경어(만다린)는 전혀 모른다.

-당신의 이름이 브루스다. 혹시 쿵푸스타인 브루스 리(이소룡)에서 따온 것인가.

: (놀라며) 그렇다. 어떻게 알았나? 우리 아버님이 이소룡의 열렬한 팬이다. 그래서 내 이름이 브루스가 됐다.

-야구는 언제 처음 시작했고,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됐는가.

: 어렸을 적 주말마다 사회인 소프트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다니다 인근에 있는 유소년 야구 팀을 발견하고 다섯 살 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 청소년 팀에서 뛰던 16살 때 스카우트 눈에 띄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하고 미국에 왔다.

-현 소속팀 로열스가 무려 11번째 팀이다. 팀을 자주 옮겨 다녔는데.

: 처음 트레이드를 당할 때는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도 안 좋았다. 하지만 ‘우리 삶에는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일이 발생할 수 있고, 그 일이 발생한 데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트레이드가 반복될수록 부족했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고, 그로 인해 다수의 코치와 함께 노력하다 보니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후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나.

: 저니맨으로 떠돌다 30세 되던 해부터 32세까지 무려 2년 동안이나 마이너리그에 있었다. 그러다 2009년 6월 로열스 유니폼을 입고 다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섰다. 그때가 가장 기뻤다. 같은 해 8월 6일 약 4년 만에 메이저리그 승리투수가 됐을 때도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그럼 반대로 가장 힘든 적은 언제였나.

: 2002년으로 기억한다. 신시내티 래즈에서 방출 당했을 때 가장 힘들고 괴로웠다. 처음 경험해본 방출이어서 충격이 매우 컸다.

-잦은 트레이드와 방출 그리고 마이너리그 계약까지 시련이 많았다. 혹시, 중간에 야구를 그만두고 싶지 않았나.
: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트레이드와 방출 당했을 땐 오히려 더 열심히 하자는 오기가 생겼다. 하지만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했을 땐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겁이 많이 났다.

-로열스로 이적한 후 지난 2년 연속 12승을 거두며 팀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부활한 비결은 무엇인가.
: 수술 후 투수코치와 부단히 연구한 끝에 투구 시 팔의 각도를 바꾼 게 큰 도움이 됐다. 아울러 싱커와 체인지업을 장착해 총 5가지로 구종의 다양화를 시도한 것도 도움이 됐다.

-선발투수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뒤 중간계투로 이동했다가 다시 선발로 돌아왔다. 어떤 보직이 가장 편하고 좋은가.

: 나는 선발이 가장 좋다. 일정한 스케쥴에 따라 몸 상태를 관리할 수 있고 상대팀 타자들을 충분히 연구하여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문 조지아 텍 공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걸로 안다. 머리가 좋다.
: (크게 웃으며) 절대 그렇지 않다. 운동과 병행하다 보니 아직 졸업을 하지 못했다. 꼭 학업을 마칠 생각이다.

-결혼은 했나?

: 그렇다. 하지만 지금은 돌싱이다. 전 처와의 사이에 딸이 둘 있는데 엄마와 함께 산다.

동료들과 몸을 풀고 있는 KC 로얄스의 브루스 첸. 동아닷컴 이상희 객원기자


-혹시 한국 야구선수들 중 아는 선수가 있는가.
: (기다렸다는 듯이) 물론이다. 인디언스의 추신수 뿐만 아니라 과거 팀 동료였던 봉중근(브레이브스), 서재응(매츠) 그리고 최희섭을 안다. 봉중근과 서재응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다.

-가정이지만 한국프로야구 팀에서 영입제의가 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 가능성은 늘 열어두고 있다. 사실 지난 2009년 LG 트윈스에서 영입제의가 있었고 계약 성사단계까지 갔었다. 사인을 하려다 한 번만 더 메이저리그에 도전해 보고 싶어 그만두게 됐다.

-메이저리거로 살아가며 힘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 누구든지 인생을 살며 저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는다. 야구선수라고 다를 건 없다. 메이저리그에 진입하기 위한 동료와의 경쟁이나 부상 등 크고 작은 어려움은 늘 있기 마련이다.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야 한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제이미 모이어가 49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섰다. 당신은 언제까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를 계획인가.
: 나도 모이어처럼 오랫동안 마운드에 오르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이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도전은 해보고 싶다.

-올 시즌 목표를 말해달라.
: 몇 승을 하고 싶다는 수치상의 목표는 없다. 부상 없이 시즌을 완주하고 싶다. 그리고 매번 등판할 때 마다 팀이 승리할 수 있도록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계획이다. 팀이 월드 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

-브루스 첸, 당신에게 야구란 어떤 의미인가.

: 야구는 내 가족과 종교만큼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야구는 내 인생을 지탱해주고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열정과도 같은 존재다.

-끝으로 한국에 있는 당신 팬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 먼저 한국 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부터 전하고 싶다. 비록 파나마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늘 아시아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산다. 한국 팬들도 나처럼 아시아의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뿌리에 자부심을 갖고 세계 속의 아시아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아시아 선수들이 더 노력해서 야구를 통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세계적인 롤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

애리조나 | 동아닷컴 이상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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