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피플] ‘전설의 해커’ 노정석, 벤처의 전설이 되다

입력 2012-06-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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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해커’에서 벤처 업계의 롤모델이 된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 그는 성공적인 벤처 기업을 만들기 위해선 “언젠가 찾아올 운을 기다릴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아블라컴퍼니

‘전설의 해커’에서 벤처 업계의 롤모델이 된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 그는 성공적인 벤처 기업을 만들기 위해선 “언젠가 찾아올 운을 기다릴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아블라컴퍼니

■ 아블라컴퍼니 대표 노정석

해킹에 빠져 학사경고도 여러번 받아
성공과 실패…국내 첫 구글 파트너로
취미로 한 레이싱, 프로레이서 활동도
“벤처, 운이 찾아올때 버틸 줄 알아야”


오늘부터 매주 목요일 IT계를 비롯한 사회 각 분야의 화제의 인물을 만나는 인터뷰를 게재합니다. IT, 게임업계의 화제 인물을 만나는 ‘IT피플’과 레저,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대상으로 한 ‘it! 피플’이 매주 목요일마다 번갈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세 번의 창업에서 두 번의 성공과 한 번의 실패, 하지만 또 도전.”

요즘 IT계는 ‘제2의 벤처 창업’ 붐이 일고 있다. 이런 열기 속에 다른 사람은 한 번도 힘들다는 창업을 네 번째 하는 벤처 사업가가 있다. 노정석(36) 아블라컴퍼니 대표. 벤처업계에서 노정석 대표는 후배들이 닮고 싶은 롤모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최근 후배 벤처 사업가를 위해 엔젤 투자자로 나섰다. 또한 한국적인 문화를 세계화 하는 새로운 형태의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 ‘픽쏘’(가제)도 개발 중이다.

노정석 대표는 또한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삶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카이스트 재학 시절에는 ‘전설의 해커’로 명성(?)을 떨쳤고, 한때는 자동차 경주에 심취해 아예 프로 레이서 자격증까지 땄다. 또한 SK텔레콤 시절에는 윤송이 박사와 함께 ‘1mm 서비스’를 개발했고, 국내에서 구글의 첫 기업 인수합병(M&A)를 성사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 카이스트 시절, 포항공대 ‘해킹 사건’으로 유명


- 이번에 또 벤처에 도전했다. 요즘 어떻게 보내나.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후배들을 만나 벤처 사업에 대한 조언도 하고 투자도 조금씩 하고 있다.“


- 벌써 네 번째 창업이다.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체질인가.

“어릴 때부터 한 가지에 빠지면 1등을 할 때까지 만사 제쳐두고 열심히 했다. 그리고 1등을 하면 다른 일을 찾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안정된 것을 바꾸는데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 첫 창업이 대학생 때다. 그것도 1등을 위한 도전이었나.

“첫 회사는 내가 나서 창업한 것은 아니었다. 카이스트 3학년 가을 학기에 선배의 제안으로 해킹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 보안 업체(인젠) 창업에 동참했다. 오리엔테이션 때 학교 선배인 휴먼컴퓨터 정철 사장의 동영상을 보면서 ‘회사란 것이 본래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고 누군가 만들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창업에 관심을 가졌던 터라 군말 없이 선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해킹 기술이라면 혹시 재학시절 겪은 ‘그 사건’을 말하는 것인가.

(노정석 대표를 포함한 카이스트 해킹동아리 학생 일부가 포항공대 전기전자공학과와 물리학과의 전산시스템을 마비시킨 사건. 90년대 카이스트 해킹 동아리 ‘쿠스’와 포항공대의 해킹 동아리 ‘플러스’ 사이에 벌어졌던 일명 ‘사과전쟁’의 정점을 찍은 사건으로 회자된다.)

“맞다. 그 사건이 있은 뒤에 선배의 제안을 받은 것이다.”


- 원래 해킹에 관심이 있었나.

“사건이 있던 1996년에만 해도 ‘해킹’이란 단어 자체가 낯설던 때다. 인터넷도 몇몇 얼리 어답터들 사이에서 조금씩 주목받고 있었다. 프로그래밍과 해킹은 선배를 통해 알게 됐다.

서점에 가서 관련 서적을 사고 1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2학년까지 컴퓨터에 푹 빠져 살았다. 공부를 게을리 해 학사경고도 여러 번 받았다. 전주에 계시던 어머니가 컴퓨터실에 있던 나를 잡으러 학교에 오신적도 있다.

해킹을 할 때 아무 생각 없던 스무살이었다. 권력 우위가 생기는 해킹에 재미를 느꼈을 뿐이다. 말 그대로 문제아였다.”


- 그 사건으로 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기분이 어땠나.

“구치소에서 정치범부터 경제사범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여러 인간 군상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전형적으로 공부해서 학점을 따는 엘리트코스가 아닌 세상에 대한 좀 더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계기였다.”


● 첫 창업의 성공과 두 번째 창업의 아픈 실패


- 첫 창업인 인젠은 코스닥 상장도 하고 꽤 잘나갔다. 왜 나왔나.

“상장을 하고 곧바로 회사를 떠났다. 계속해서 엔지니어링 관련 사업을 하고 싶었고 회사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래서 젠터스라는 인터넷 보안 회사를 만들었다. 벤처 붐이 일던 때였고 직전 회사도 잘나갔기 때문에 직접 해보자는 마음이 컸다.”


- 두 번째 회사는 시작은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였다. 무엇이 문제였다고 보나.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인젠에서 나는 억세게 운이 좋았던 것이다. 내 능력이 아닌 주변의 도움으로 성공을 맛봤다. 기술만 아는 ‘헛똑똑이’였을 뿐, 회사를 경영하고 키운 것은 모두 선배의 몫이었다.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겸손해졌다.”


- 그후 SK텔레콤에 입사했는데 창업 포기 선언을 한 것인가.

“아니다.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쉬면서 다음 일을 생각하기는 아직 젊었다. 인터넷 보안과 같은 기술 연관 사업이 아닌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업무에 욕심이 났다. 결과적으로 좋은 경험이 됐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사업에 대해 많이 듣고 배울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읽은 것도 다음 창업에 큰 도움이 됐다.”


- 태터앤컴퍼니가 그 결실인가.

“책을 읽으면서 IT 산업의 큰 흐름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태터앤컴퍼니는 오픈소스 기반의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업체였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안된다’고 했다. ‘사업 센스가 없다’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개인의 힘이 커지고 있어 이들을 대변해주는 접점을 만들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고 믿었다.”


- 태터앤컴퍼니는 국내 벤처 중 처음으로 구글에 인수됐다. 어떤 경위였는가.

“다음에 제공한 티스토리 서비스는 코리안 클릭 기준으로 10위 안에 들었다. 최근 5년 동안 가장 성공한 웹 서비스라는 찬사도 들었다. 구글은 그 때 국내 시장에 막 진출했다. 네이버가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구글은 검색 기술은 뛰어나지만 콘텐츠가 부족했다. 우리 서비스는 국내 포털의 바깥에서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었다. 구글도 탐이 났을 것이다.”


- ‘먹튀’라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그런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 태터앤컴퍼니에서 함께 하던 사람들은 2008년 회사가 매각된 뒤 6개의 회사를 창업했다. 구글에 매각한 이유는 무엇보다 2008년 구글이 가진 위상 때문이었다. 지금의 페이스북 보다 컸다. 구글코리아 조원규 사장이 정말 좋은 회사고 배울 게 많다고 조언해 준 것도 계기가 됐다.”


- 구글에선 정말 배울게 많았나.

“정말 많았다. 생각의 크기가 다르고 스케일도 다르더라. 글로벌에 대한 압축된 경험도 했다. 2년 가까이 다녔는데 10년 같은 경험을 했다. 꿈에 그리던 실리콘 밸리도 직접 가봤다. 우주의 중심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성공에 대한 크기까지 달라지더라.”


● 프로 레이서로도 활동, 새로운 도전은 나의 활력소


- 그런데 그렇게 좋다고 평가했던 구글에서도 나왔다. 왜인가.

“구글은 최고의 직장이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에 가보니 한 번 더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더 들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도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 그러면 창업은 이번이 마지막인가.

“밑바닥부터 도전하는 것은 아블라컴퍼니가 마지막이 될 것이다. 나이 때문이다. 최근에 대학생 인턴들과 함께 시간을 가졌는데 생각의 차이가 이미 크더라. 다시는 이런 화려한 프로필을 가진 능력 있는 엔지니어를 모으지 못한다는 것도 이번 벤처가 마지막인 이유다.”


- 그렇고 보니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 같다. 레이싱을 즐기는 이유도 마찬가지인가.

“딱히 그렇진 않다. 학교 다닐 때부터 그냥 차를 좋아했다. 카이스트의 ‘한마음 운전자 동호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카이스트에서 차 좀 탄다는 친구들은 모두 모인 곳이었다.

2002년에 용인에서 경기를 보다가 직접 레이싱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우연찮게 대전에서 레이싱카 엔진 프로그램을 하던 사람을 알아 자연스럽게 선수로 뛰게 됐다.

아마추어 시절 다섯 번 출전해 네 번 우승했다. 그리고 프로로 전향했는데 결혼을 하면서 장모님의 만류도 있고 아이도 생겨 자연스레 그만두게 됐다. 지금은 레이싱카가 아닌 그냥 잘 달리는 차(?)만 가지고 있다.”


● “벤처, 운이 찾아올 때까지 버틸 신념이 중요”


- 본인이 마지막 벤처라고 말하는 아블라컴퍼니는 어떤 서비스를 하는가.

“우리 회사는 ‘기술을 통해 오프라인을 혁신한다’,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 한다’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전국 2만7000개의 레스토랑을 스마트폰으로 예약하는 ‘포잉’과 한국적인 문화를 세계화 한 새로운 형태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픽쏘’가 바로 그러한 서비스다.”


- 후배들을 위한 엔젤 투자에도 나섰는데.

“전문 투자자로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과 함께 자리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초기 투자를 하기도 했다. 현재 약 10개 정도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 패스트트랙 아시아에도 참여 중이다.”


- 마지막으로 벤처에 도전하려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매우 힘든 과정이다. ‘안된다’는 말을 듣는 것이 가장 괴롭다. 흔들리지 않는 명확한 신념의 방향성과 무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구글에 있을 때 사수이자 멘토였던 정기현 안드로이드 프로덕트 매니저(PM)이 ‘성공의 요소는 자본이나 운이 아니다. 운은 누구에게나 오는데 그 운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줬다.

나도 회사 구성원들에게 “우리의 운이 올 때까지 신념이라는 구간에 있어야 한다”고 항상 얘기한다.”

■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는?

1976년 전북 전주 출생
1992 ~ 1994 전북 과학고
1994 ~ 2004 KAIST 경영공학과 졸업
1997.07 ~ 2002.09 인젠 창업, CTO
2002 젠터스 창업, CEO
2004.09 ~ 2005.09 SK텔레콤 CI 사업본부 ¤ 윤송이 박사팀에서 1mm 서비스 개발
2005.09 ~ 2008.08 태터앤컴퍼니 창업, CEO
2008.09 ~ 2010.08 구글코리아 PM(프로덕트 매니저 )
2010.09 ~ 현재 아블라컴퍼니 대표이사

김명근 기자 dionys@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yke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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