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만 빠르면 뭐해? 컨트롤이 돼야지!

입력 2012-06-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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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윤석민(왼쪽)은 8가지 구종을 소화하면서 특급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최근 젊은 투수들의 구종 다변화가 제구력 저하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현역 시절 면도날 같은 제구력을 자랑했던 빙그레 이상군(오른쪽)은 심판들이 스트라이크존을 
조정할 때 도움을 줬던 투수로 알려져 있다. 스포츠동아DB

KIA 윤석민(왼쪽)은 8가지 구종을 소화하면서 특급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최근 젊은 투수들의 구종 다변화가 제구력 저하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현역 시절 면도날 같은 제구력을 자랑했던 빙그레 이상군(오른쪽)은 심판들이 스트라이크존을 조정할 때 도움을 줬던 투수로 알려져 있다. 스포츠동아DB

한국야구 ‘구속 경쟁’의 허와 실

역사상 최고의 컨트롤 투수는 누구일까. 각자 생각이 다르겠지만 빙그레 이상군을 빼놓을 수 없다. 이상군의 놀라운 컨트롤에 얽힌 일화는 많다. 이규석 대한야구협회 기술이사가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으로 활동할 때의 일. 그도 선수처럼 가끔 슬럼프를 겪었다. 정확했던 스트라이크존이 흔들린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이때 이규석 심판은 빙그레에 연락해 이상군의 피칭 스케줄을 체크했다. 아무도 몰래 훈련장을 찾아가 이상군의 피칭을 지켜보면서 흔들린 스트라이크존을 조정했다. “상군아, 스트라이크에서 공 하나만 바깥으로 빼봐.” “이번에는 공 반개만 안쪽으로 넣어봐.” 이규석 심판의 요구대로 이상군은 정확히 공을 던졌다.


요즘 투수들 145km 이상 우스워
윤석민 ‘8종 세트’ 등 구종도 다양
제구력 불안·주무기 실종 아쉬워

이상군 임호균 ‘면도날 투구’ 아련
9회말 2사 만루 ‘머니 피치’ 상황
강속구냐 컨트롤이냐 답은 나와



○공은 빨라진 우리 투수들

21세기 한국 투수들의 공은 빨라졌다. 어지간한 투수도 시속 145km 이상을 쉽게 던진다. 20세기 선배 투수들은 생각도 못한 스피드다.

예전에 비해 체격이 커졌고, 구속이 빨라야 스카우트의 눈에 띌 수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구속에 집착한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우리 고교선수들을 평가할 때 기준이 스피드다. 우리 스카우트들도 우선은 스피드다. 연봉이 3000만원을 넘지 않는 저비용의 젊은 투수들로 선전을 펼치는 넥센 정민태 투수코치의 지론. 스피드다. “스카우트팀에게 스피드가 빠른 선수를 우선 뽑아달라고 했다. 엄청난 계약금을 주고 데려올 능력이 없다면 스피드가 좋은 유망주를 데려와서 잘 가다듬으면 된다.”

흔히 컨트롤은 후천적이고 스피드는 타고 난다고 한다.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해도 타고난 스피드는 쉽게 늘어나지 않지만, 컨트롤은 반복훈련을 통해 가다듬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상군과 함께 컨트롤이 좋았던 투수로 기억되는 태평양 임호균. 고교시절부터 자신의 체력적 한계를 알고 컨트롤에 매달렸다. “같은 코스에 반복적으로 공을 던지며 몸이 완벽한 컨트롤을 기억하도록 했다. 눈을 감고 던져도 그 코스에 공이 들어갈 정도까지 했다.”

컨트롤이 흔들리면 벤치가 불안해진다. 지금 한화 바티스타를 보면 안다. 공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나무랄 데 없지만 볼을 남발해 퇴출 위기다.

운명의 9회말 2사 만루. 이럴 때 감독은 어떤 투수를 낼까. 시속 160km의 강속구 투수? 그저 그런 스피드의 컨트롤이 완벽한 투수?

컨트롤 좋은 투수로 유명했던 태평양 임호균. 사진은 롯데 시절 그의 투구 모습. 스포츠동아DB

컨트롤 좋은 투수로 유명했던 태평양 임호균. 사진은 롯데 시절 그의 투구 모습. 스포츠동아DB



○공은 다양해졌으나 주무기는 없다?

요즘 투수들의 또 하나 특징. 다양한 공을 던진다. 직구 커브 슬라이더의 기본 구종 외에 포크볼 스플리터 체인지업 커터 등 엄청 다양해졌다. 외국인투수가 오면서 이들을 통해 배운 것이 첫 번째 원인이다. 어릴 때부터 메이저리그를 자주 접하면서 어린 선수들이 새로운 변화구를 빨리 받아들인다. 정보의 확산속도가 빨라졌다. 프로 출신 인스트럭터가 아마 선수들에게 새로운 흐름을 빨리 전파시킨 이유도 있다.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텍사스 레인저스 다르빗슈 유도 모든 공을 다 던진다고 한다. 문제는 완성도. 놀란 라이언의 커브, 랜디 존슨의 슬라이더 같이 내세울 뭔가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우리 투수들도 마찬가지다. 예전 슬라이더 하면 선동열, 커브 하면 최동원이었다. 투수들마다 뭔가 내세울 수 있는 대표적인 공이 있어야 성공한다.

투수가 던질 공이 많다보니 그만큼 컨트롤을 가다듬을 시간도 모자란다. 이효봉 스포츠동아 해설위원의 말. “KIA 윤석민은 8가지 구종을 던진다. 이 모든 공을 코스별로 완벽하게 던지기 위해선 몇 개를 던져야 하는지 계산이 나온다. 몸쪽, 바깥쪽으로 구종당 10개만 던져도 160개를 던져야 한다.”

예전 투수들은 구종이 단순했기에 반복훈련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많은 구종으로는 컨트롤을 가다듬을 시간이 부족하다. 이것이 야구의 발전인지, 퇴보인지는 선수들의 입장과 완성도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위기에서 타자를 요리하는 공은 단 하나의 확실한 자기만의 무기다. 2B-2S서 반드시 던져야 하는 주무기. 메이저리그는 ‘머니 피치’라고도 부른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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