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브렌리 전 감독 “김병현, 계속 마무리로 뛰었다면 최고 투수 됐을 것”

입력 2012-07-04 14: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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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브렌리 전 애리조나 감독. 스포츠동아DB

[동아닷컴]

메이저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다 한국프로야구에 진출한 김병현(33·넥센). 전성기 때의 모습은 아니지만 점차 국내무대에 적응하며 4일 현재 2승2패 평균자책 4.73을 기록 중이다.

성균관대 재학 시절이던 1999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한 김병현은 수 많은 유망주들이 몇 년씩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치는 것과 달리 미국 진출 후 단 두 달 만에 메이저리그로 직행, 주위를 놀라게 했다.

김병현은 같은 해 5월 30일 뉴욕 메츠와의 원정경기에서 팀이 8-7로 앞선 9회말에 등판, 강타자 마이크 피아자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자신의 메이저리그 첫 등판에서 세이브를 챙기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김병현의 나이는 고작 스무 살.

이후 김병현은 애리조나의 뒷문을 책임지며 2000년 14세이브, 2001년 19세이브, 2002년 36세이브를 기록하며 승승장구 했다. 자신의 영문 이름 이니셜과 유사한 ‘BK(Born to K)’라는 애칭으로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존재감을 알렸다.

김병현은 2001년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 4, 5차전에서 잇달아 홈런을 내주며 성장통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애리조나가 최종 7차전에서 극적인 역전승,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김병현은 한국인 최초로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갖게 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김병현의 활약은 미미했다. 애리조나 시절부터 선발 투수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그는 2004년부터 선발로 활약했으나 2007년 단 한 차례 두 자리수 승수(10승)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김병현의 메이저리그 통산(9년) 성적은 54승60패 86세이브 평균자책 4.42.

마무리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김병현이었기에 보직 문제 등으로 다소 일찍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떠나게 된 것은 아쉬운 부분. 만약 김병현이 선발 대신 계속 마무리 투수로 뛰었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이었을까?

동아닷컴은 김병현의 애리조나 시절 사령탑이었던 밥 브렌리(58) 전 감독을 최근 미국 현지에서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밥 브렌리 전 애리조나 감독. 스포츠동아DB


다음은 브렌리 전 감독과의 일문일답.

-얼굴이 좋아 보인다. 최근 근황을 말해달라.

“지도자 생활에서 물러나 현재 시카고 컵스 전속 해설자로 활동하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해설자 업무는 어떤가? 만족하는가?

“물론이다. 홈경기는 물론 원정경기까지 시카고 컵스의 모든 경기를 동행하다 보니 일년에 반 이상은 집을 떠나 있지만 재미있고 할 만하다.”

-올 시즌 시카고 컵스의 성적이 좋지 않다.

“그렇다. 컵스 팬들이 원하는 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해 아쉽다. 그러나 팀을 재정비하려다 보니 피해갈 수 없는 일종의 시련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는 만큼 곧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다고 본다.

-다시 지도자로 현장에 복귀할 생각은 없나?

“매년 은퇴하는 선수 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지도자가 되려는 마이너리그 코치들이 즐비하다. 나는 현재 하고 있는 해설자 일에 만족한다. 팬들과 함께 야구를 즐길 수 있고 경기가 끝나면 부담 없이 집에 갈 수 있어 좋다. 지도자였을 때는 성적에 대한 부담과 각종 스트레스 때문에 지금의 이런 여유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지도자에 대한 미련은 완전히 접은 것인가?

“(웃으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나를 원하는 팀이 있고 모든 조건이 충족된다면 다시 해 볼 생각은 있다. 하지만 지도자가 되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애리조나 감독 시절 김병현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김병현과 관련해 가장 어려웠던 점은 그 누구도 김병현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보통 김병현이 4일 등판하면 5일째 되는 날 그에게 쉬라고 했지만 그는 불펜이나 실내연습장에 가서 쉬지 않고 공을 던졌다. (웃으며) 김병현은 매일 공을 던지고 싶어했다. 도무지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김병현은 당대 최고의 언터처블 투수였다.

-애리조나 감독 시절 당신과 김병현의 마찰음이 구단 밖으로 새어 나오기도 했다.

“김병현은 항상 선발 투수를 원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 팀에는 랜디 존슨, 커트 실링 등 선발자원이 풍족한 반면 확실한 마무리 투수가 없었다. 김병현이 그 역할에 제격이었고 또한 그 임무를 잘 수행해 줬다. 그래서 김병현에게 적당한 시기가 되면 선발 기회를 주는 대신 2001년에는 마무리 보직을 맡기로 합의가 됐었다.”

-김병현을 떠올릴 때 2001년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 4, 5차전에서 허용한 홈런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감독으로서 심정이 어땠나?

“(웃으며) 당시에는 암담했다. 김병현도 많이 힘들어했다. 어린 선수가 극성스런 양키스 팬이 운집한 곳에서 그 큰 함성을 들으며 투구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비록 홈런을 허용해 패전 투수가 됐지만 우리 팀 전력이 양키스보다 좋았고 애리조나로 돌아가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의 손에 끼고 있는 우승반지를 보여주며) 그리고 결국 우리가 해냈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김병현이 선발을 고집한 것이 예상보다 일찍 메이저리그를 떠나게 된 원인이 된 듯 하다. 만약 김병현이 선발 대신 계속 마무리 투수로 뛰었다면 어땠을까?

“(단호하게) 그랬다면 김병현은 아직도 메이저리그에 있었을 것이다. 김병현은 훌륭한 투수이기도 했지만 체력도 매우 뛰어났다. 보통 마무리 투수가 2~3일 등판 후 하루 쉬는 것과 달리 김병현은 5~6일을 이어 던져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김병현이 계속 마무리 투수로 뛰었다면 지금쯤 메이저리그 최고의 클로저 중 한 명으로 군림하고 있었을 텐데… 아쉽다.”

-김병현이 메이저리그를 떠나 일본을 거쳐 올 시즌 한국무대에 데뷔했다.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병현처럼 훌륭한 투수와 함께 야구를 할 수 있었던 건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하지만 김병현이 나에 대해 큰 오해를 했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 김병현이 한국에서 잘 던졌으면 좋겠고 그에게 늘 행운이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김병현은 뛰어난 투수였고 나는 지금도 그를 사랑한다.”

로스앤젤레스=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sanglee@indian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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