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 감독 “편애한다는 말 나올까 눈길 한번 제대로 못줬지”

입력 2012-08-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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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금 송대남-정훈 감독, 두 남자의 ‘동서지간’ ‘사제지간’ 스토리

정 감독, 딸 같은 막내 처제 선뜻 수제자에 소개
“첫 만남부터 눈에 불꽃”…석달 만에 결혼 골인
괜한 오해 살까 쉬쉬…올림픽서 금메치기 대견

송대남 아내 김정은 씨 “아직도 안믿겨” 감격


동서지간이기도 한 사제(師弟)는 금메달을 메친 뒤 맞절을 올렸다. 뜨겁게 부둥켜안은 정훈(43·용인대 교수) 감독과 송대남(33·남양주시청)은 눈물을 토해내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날렸다. 송대남(세계랭킹 15위)이 2일(한국시간) 엑셀노스아레나에서 열린 2012런던올림픽 유도 남자 90kg급 결승에서 연장 접전 끝에 아슬레이 곤살레스(쿠바·세계랭킹 4위)를 안뒤축걸기 절반으로 꺾었다. 감독의 퇴장악재를 딛고 일군 ‘골든 스코어’ 승리였다. 송대남은 “생애 마지막 올림픽에서 한을 풀었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 종료 직후에는 그간 비밀에 부쳐졌던 정 감독과 송대남의 관계가 알려져 금메달보다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은퇴 직전의 송대남을 일으킨 정훈 감독

송대남은 비운의 선수였다. 양쪽 업어치기를 모두 구사하는 등 81kg급에서 기술유도의 대명사였지만, 올림픽 무대와는 번번이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04년 아테네대회 때는 권영우, 2008년 베이징대회 때는 김재범(이상 한국마사회)에게 밀렸다. 베이징올림픽 선발전 탈락 직후였다. 송대남은 다음 올림픽을 기약하지 못하고 방황했다. 우리 나이로 서른. 유도선수로서는 환갑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퇴 직전의 그를 잡아준 사람은 정훈 감독이었다. “넌 아직 충분히 실력이 된다. 태릉에 들어와서 딱 한번만 더해보자.” 송대남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 감독은 “딱 1년간 지켜봤다”고 했다. 1년 동안 휴식일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 연애란 단어도 머릿속에서 지운지 오래였다. 성실한 송대남의 모습에 정 감독도 인간적인 호감을 느꼈다.


○애지중지하던 처제와 수제자의 만남

“너 우리 처제 한번 만나볼래?” 정훈 감독이 한마디를 던졌다. 처음에는 송대남도 그냥 웃어넘겼다. 정 감독의 부인 김지은 씨는 2남3녀 중 장녀. 막내 김정은 씨는 맏언니와 14세 차이가 났다. 정 감독이 결혼할 당시 막내 처제는 초등학생이었다. 정 감독에게 막내 처제는 딸 같은 존재였다. 애지중지하는 처제와 수제자가 좋은 인연이 될 것임을 정 감독은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감독님 밥 한끼 사주세요.” “감독님 댁 근처”라며 송대남이 전화를 걸었다. 마침 집에는 막내 처제가 와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었다. “당장 우리 집으로 와라.” 네 살 터울의 송대남과 김정은 씨 사이에는 첫 만남부터 눈에 불꽃이 튀었다.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겠다”던 둘은 석 달 뒤(2009년 11월) 결혼에 골인했다. 송대남-김정은 부부는 현재 자신들이 처음 만났던 곳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정 감독이 이사를 가면서, 그 집으로 들어온 것이다. 정 감독은 “둘 다 얼마나 검소한지, 특별한 혼수나 패물도 없었다. 가진 것을 아끼고, 아껴서 집을 구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동서지간과 사제지간

정훈 감독과 송대남의 관계를 이미 유도계에선 알고 있었지만, 밖으로는 쉬쉬할 수밖에 없었다. 둘 다 괜한 구설수에 오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애정을 쏟아도 “편애한다”는 말이 나올까봐, 둘은 아예 대화도 잘 하지 않았다. 정 감독은 “어차피 대표선발은 실력으로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나는 눈길 한번 제대로 준 적이 없다. 그런데도 한판승으로 대표선발전을 통과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송대남은 2010년 11월 무릎 수술을 받고 단 한 달 만에 훈련을 재개하는 투혼으로 정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81kg급에서 90kg급으로 체급을 올리는 승부수도 들어맞았다. 정 감독은 “이제 100일이 갓 지난 송대남의 아들(송제하)이 복덩이인 것 같다. 이제야 마음 편히 동서지간임을 밝힐 수 있어 기쁘다”며 웃었다. 송대남의 아내 김정은 씨는 “경기 장면을 계속 돌려봐도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유도 송대남은?

▲생년월일=1979년 4월 5일
▲키·몸무게=177cm·81kg
▲출신교=금오초∼경민중∼경민고∼청주대
▲소속팀=남양주시청
▲주특기=업어치기
▲수상경력=2007가노컵 81kg급 금, 2009몽골월드컵 81kg급 금, 2011KRA코리아월드컵 90kg급 금, 2012런던올림픽 90kg급 금


런던|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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