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랭킹도 없던 만년후보…“완전 로또 맞았죠”

입력 2012-08-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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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싱 신데렐라 김지연 스토리

후려치는 게 재미있어 사브르 택한 그녀
선배들 그늘…3년 전까지 항상 벤치에
태극마크 2년차, 두시즌만에 세계 5위

4강서 세계 1위선수에 6점 지다 대반전
“늘 역전패 하던 내가 역전승…눈물 핑!”


런던 출국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펜싱여자사브르대표팀 김용율 감독은 아내에게 기분 좋은 귀띔을 받았다. “꿈에 당신이 큰 상을 타서 사람들에게 박수를 많이 받더라”는 내용이었다. 내심 귀가 솔깃했지만, 김 감독은 입을 꾹 다물었다. 괜히 여기저기 소문냈다가 길한 기운이 빠져나갈까봐 우려했기 때문이다.

애제자 김지연(24·익산시청)이 2일(한국시간) 런던 엑셀 사우스아레나에서 열린 2012런던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소피아 벨리카야(러시아)를 15-9로 꺾고 사상 첫 여자 펜싱 금메달을 확정한 순간, 김 감독은 비로소 제자에게 꿈의 봉인을 풀었다. 전해들은 김지연 역시 깜짝 놀라며 이렇게 외쳤다. “선생님! 사실 저도 이번에 좋은 꿈을 꾸고 왔어요!” 하늘이 점지해줘야 딸 수 있다는 올림픽 금메달. 대한민국 선수단에는 ‘깜짝 금메달’이었지만, 승리의 여신은 김지연의 우승을 일찌감치 준비해놓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지연은 어릴 때부터 발이 빠르고 운동을 잘했다. 스스로 “친구들이 ‘발바리’라고 불렀다”고 소개했을 정도. 처음에는 태권도에 재미를 붙였지만, “펜싱부 언니들과 노는 게 재미있어서” 부산 재송여중 1학년 때 플뢰레 선수가 됐다. 3년 후 사브르로 전환한 이유 역시 단순하다. “찌르기만 하는 것보다는 마구 ‘후려치는’ 것이 더 재미있어 보였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늘 선배들의 그늘에 가려 후보선수 노릇만 했다. 2009년까지 세계랭킹 포인트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국제무대에서 무명에 가까웠다. 파란은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됐다. 모스크바국제그랑프리에서 세계 10위권의 선수를 2번이나 꺾었다. 이어 오를레앙국제그랑프리와 안탈리아국제월드컵에서 각각 3위와 2위에 입상했다. 세계랭킹 역시 2시즌 만에 174위에서 11위로, 다시 5위로 뛰어올랐다.

‘흙 속의 진주’는 결국 런던올림픽에서 영롱한 빛을 뿜었다. 세계랭킹 1위 마리아 자구니스(미국)와 맞붙은 준결승은 백미. 6-12 열세를 15-13으로 뒤집는 대역전극을 펼쳤다. 김지연은 “대부분 내가 이기다 따라잡혀 역전당하곤 했는데, 반대가 되니 ‘미쳤구나’ 싶어 눈물이 핑 돌았다”며 웃었다. 대표팀에서 2번째로 나이가 어리고, 국가대표 경력도 1년을 갓 넘긴 김지연. “금메달을 따니 로또를 맞은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해맑다. “펜싱은 나의 전부”라고 단언할 만큼 애착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녀가 한국펜싱에 써내려갈 역사는 이제 겨우 첫 장을 열었을 뿐이다.


펜싱 김지연은?

▲생년월일=1988년 3월 12일
▲키·몸무게=165cm·57kg
▲출신교=재송초∼재송여중∼부산디자인고
▲소속팀=익산시청
▲수상경력=2011모스크바국제그랑프리 동, 2011아시아펜싱선수권 단체 금, 2012아시아펜싱선수권 단체 금, 2012오를레앙국제그랑프리 동, 2012안탈리아국제월드컵 은, 2012텐진국제그랑프리 동, 2012런던올림픽 금


런던|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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