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정치색 배제? 버젓이 나부낀 ‘욱일승천기’

입력 2012-08-3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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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문제로 한일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30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양 국 간의 U-20 여자월드컵 8강전에 일본 제국주의 상징인 ‘욱일승천기’가 등장했다. 경찰들도 이를 지켜보기만 할 뿐 전혀 제지를 하지 않았다. 도쿄(일본)|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scoopjyh@donga.com

우려했던 일은 현실이 됐다.

한국과 일본의 국제축구연맹(FIFA) U-20 여자월드컵 8강전이 열린 일본 도쿄국립경기장. 앞서 열린 나이지리아와 멕시코의 8강전이 끝나자 일본 관중들이 물밀듯이 입장했다. 이따금 관중들의 손에는 일장기와 욱일승천기가 들려 있었다. 일본 서포터들이 자리 잡은 본부석 왼편과 경기장 곳곳에서 욱일승천기가 나부꼈다.

경기장으로 들어오는 출입구는 모두 4곳. 정치적으로 민감한 한일 관계를 반영하듯 경찰들이 대거 포진했다. 관중들의 소지품을 일일이 검사했다. 대형 플래카드와 걸개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 증거를 남겼다. 일부 걸개는 정치와 상업적인 이유를 문제 삼았다. 테이프로 관련된 문구를 가리도록 지시했다. 간혹 빼앗긴 플랜카드와 걸개도 있었다. 모든 것이 철저해 보였다. 그러나 욱일승천기 만큼은 예외였다.

일본축구협회(JFA)는 U-20 여자월드컵에서 욱일승천기의 반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일부 축구팬들의 거센 항의 끝에 금지 결정을 1주일 만에 철회했다.

JFA 오구라 준지 명예회장도 “욱일승천기는 일본에서 금지되지 않았다. 반입을 막지 않겠다”고 밝혔다.

욱일승천기는 일본 ‘군국주의’와 ‘전체주의’를 상징한다. 일본은 1930∼40년대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 욱일승천기를 앞세워 식민지 전쟁에 나섰다. 욱일승천기는 나치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갈고리 모양의 십자가)’와 다를 바 없다. 나치즘은 600만∼100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기록된 홀로코스트와 전쟁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철저하게 배척된다. 일본은 유독 국제법상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욱일승천기를 정치적인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동북아시아를 비롯해 동남아시아는 식민지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욱일승천기를 극명하게 반대하는 이유다.

FIFA의 데보라 도우 안전담당관은 29일 열린 한일전 사전 미팅에서 “양국의 민감한 상황과 관련해 양 팀의 팬들이 정치적인 응원문구나 배너 플래카드 등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욱일승천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부꼈다.

도쿄(일본)|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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