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양승호 감독은 그동안 고독한 싸움을 해왔다. 눈부신 투혼을 발휘했지만 외풍이 강했고, 구단은 칭찬에도 인색했다. 22일 문학에서 열린 PO 5차전에서 투수 교체를 위해 마운드로 오르는 그의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워 보인다. 문학|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KS진출 실패뒤 지인들과 심야 술자리
“내가 책임지겠다” 사퇴 의사 안 굽혀
23일 배재후 단장과 1시간 이상 회동
“코치 인사권 주겠다”약속…극적 컴백
롯데 양승호 감독은 23일 오후 부산에서 배재후 단장과 회동했다. SK와의 플레이오프(PO) 5차전에서 패해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된 직후 양 감독이 자진사퇴 의사를 전격 표명한 터라 이날의 만남은 촉각을 곤두서게 했다.
배 단장은 “양 감독과 얘기를 나눠보니 사퇴 발언은 와전된 것 같더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배 단장은 “아시아시리즈 준비, NC에 줄 보호선수 엔트리 같은 사안을 두고 의논했다. 현재로선 양 감독의 거취에 대해 구단은 아무 생각이 없다. 구단은 최선을 다해 감독을 모셨고, 바깥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자, 그럼 모든 것은 하룻밤의 와전이고, 해프닝일까.
○양 감독의 확고했던 사퇴 결심
결론부터 말한다. 스포츠동아 취재 결과, 복수의 핵심 인사는 22일 밤 양승호 감독의 사퇴의사를 증언했다.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양 감독은 22일 PO 5차전이 끝난 뒤 서울시내 모처에서 지인들을 만나 새벽까지 통음하며 “책임지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다. 이 자리에서 양 감독은 ‘사퇴 이후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까지 고민했다. 그만큼 사퇴의사는 확고했다.
그런데 롯데는 사태를 없었던 일처럼 만들려 애쓰며, 한편으로는 양 감독에게 ‘재신임’ 시그널을 보냈다. 롯데 사정에 정통한 인사는 “23일 회동은 롯데가 양 감독의 사퇴를 만류하는 자리일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배재후 단장은 “사퇴 얘기가 없었어도 원래 만나기로 했던 약속”이라 했지만, 감독이 쓸 수 있는 가장 비장한 카드를 꺼내든 마당에 롯데의 선택은 ‘양 감독의 사퇴를 받느냐, 아니면 만류하느냐’밖에 없었다. 또 양 감독이 “팀 미팅에서의 얘기가 의도와 다르게 알려졌다”고 말한 것은 롯데 구단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무엇이 양 감독의 마음을 돌려놨을까?
양승호 감독과 배재후 단장의 회동은 1시간 이상 진행됐다. 통상적 얘기만 나누고 끝낼 시간이 아니다. 회동의 핵심 중 핵심은 ‘코치 인사권’이었다. 양 감독은 취임 2년간 롯데를 PO에 올려놓았지만, 놀랍게도 코치 인사권은 구단이 쥐고 있었다. 롯데 구단은 이 자리에서 이것을 감독에게 주기로 약속했다. 이 말은 롯데가 양 감독을 다음달 아시아시리즈를 넘어 2013시즌까지 신임하겠다는 무언의 보증이나 다름없다.
롯데 장병수 사장이 24일 양 감독과 만나기로 했다. 양 감독에게 과거 2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폭적 지지를 해준 뒤, 2013년 성적으로 책임을 묻겠다는 방향으로 롯데가 극적 전환을 하고 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tsri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