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성폭행 사건이 영화의 주요 소재로 다뤄져 관객을 찾는다. 사진은 ‘나쁜 피’의 여주인공 윤주와 ‘돈 크라이 마미’의 유선(왼쪽부터). 사진제공|키노크러시·데이지엔터테인먼트
딸에 ‘몹쓸짓’ 가해자 응징 모성 연기
‘나쁜피’ 불행한 탄생 비밀 알고 보복
“무능한 공권력 등 한국의 현실 반영”
영화는 결국 현실의 반영이다. 현실이 미처 해결하지 못하는 다양한 구조적 모순과 문제점을 영화가 온전한 한 편의 이야기로 그려 낼 때, 관객은 환호하고 몰입한다. 그래서 영화는 그 자체로 현실이면서 판타지가 된다.
성폭행 피해의 복수를 그린 영화들이 쏟아진다. 법과 사회적 시스템이 지켜 주지 못하는 성폭력 피해, 그로부터 정신적 고통에 빠지는 가족의 이야기가 관객을 찾는다. 잔혹한 현실의 단면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기고 상상력을 더해 복수극을 완성한 ‘돈 크라이 마미’, ‘공정사회’, ‘나쁜 피’. 그 주인공 유선, 장영남, 윤주는 성폭행 피해가 낳은 잔인한 상황을 처절한 연기로 표현해 이야기에 힘을 불어넣는다.
유선은 11월22일 개봉하는 ‘돈 크라이 마미’(감독 김용한)를 두고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부들부들 떨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돌이켰다. “현장에서 연기하는 기분으로 시나리오를 읽었다”고도 했다. 유선은 극중 성폭행을 당하고 자살한 딸을 위해 복수에 나서는 엄마. 딸이 목숨을 끊은 이유를 뒤늦게 알고 무너지는 엄마의 심리부터 가해자를 응징하는 복수극을 소화했다.
‘돈 크라이 마미’는 2004년 경남 밀양에서 일어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 이달 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뒤 현실과 흡사한 이야기로 관심을 모으며 개봉 후 적잖은 파장을 예고했다.
연말 개봉하는 ‘공정사회’(감독 이지승)도 성폭행당한 딸을 위해 복수에 나선 엄마의 이야기다. 경찰의 부실 수사, 사회의 편견에 부딪힌 엄마가 가해자를 직접 찾아내 응징하는 내용의 ‘공정사회’는 법이 보호하지 못하는 피해자의 울분을 담고 있다.
영화에 긴장을 불어넣는 건 주인공 장영남이다. 무능한 공권력을 고발하며 힘 있게 영화를 이끈다. 장영남은 이 영화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부문 여배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다시 인정받았다.
11월1일 개봉하는 ‘나쁜 피’(감독 강효진)는 딸의 복수극. 자신이 성폭행의 결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딸이 범인을 찾아가 벌이는 복수다. 신예 윤주는 영화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삶을 파괴하는 주인공으로 나서 신인답지 않은 과감한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성폭행 피해자들이 가해자에 대해 직접적 응징에 나선다는 이야기가 비현실적일 수는 있지만, 그 감성만으로도 관객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서 “잘못된 현실에 관한 목소리를 담은 영화가 잇따라 만들어지는 건 그만큼 지금의 현실이 힘겹다는 방증이다”고 말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