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정현욱, LG와 4년 28억 계약…그 막전막후

입력 2012-11-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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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아닌 정성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삼성 정현욱이 김기태 감독의 말 한 마디에 17년간 몸담았던 삼성을 떠나 LG로 이적했다. 정현욱이 공을 힘차게 던지고 있다. 스포츠동아DB

“형이랑 하자” 김기태감독 한마디가 정현욱을 움직였다

LG행 결정적 요인=계약기간 4년 보장
20대땐 야구보다 다른 일로 허송세월
17년 만에 FA…큰돈 앞서 부모님 생각
국민노예 마지막 불꽃 잠실벌서 활활


“정현욱 선수입니까?”

17일 새벽 2시 반. 정현욱(34)은 대구 황금동에서 지인을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심란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1996년 삼성에 입단해 푸른 유니폼을 입은 지도 17년. 삼성은 그의 인생 절반을 바쳐온 팀이었다. 그러나 17년 만에 처음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었지만 16일 원소속구단과의 우선협상 마감시한까지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국 시장으로 나왔다.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LG 트윈스 운영팀 차장 나도현입니다. 대구에 내려왔는데 어디 계십니까?

깜짝 놀랐다. 약속 장소로 나갔더니 나 차장은 삼성 시절 정현욱과 가깝게 지낸 김용일 트레이닝코치를 대동하고 대구로 내려와 있었다.

“우리는 정 선수의 기량뿐만 아니라, 야구계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는 리더십 등 정 선수의 모든 것이 필요합니다.” LG는 적극적이었다. 1시간 동안 이런 저런 얘기가 이어졌다. 마음이 움직였다. 협상에는 서툰 정현욱이 먼저 솔직하게 물었다.

“얼마입니까?”

“우리가 준비한 조건은 4년 총액 28억원입니다. 이거면 되겠습니까?” LG가 제시한 금액은 그가 삼성에 요구했던 금액보다 더 많았다. 게다가 삼성과 협상이 결렬됐던 결정적 요인이었던 계약기간도 4년을 보장해줬다. 17년간 정들었던 삼성을 떠나 줄무늬 유니폼을 입게 되는 순간이었다.


○날 낳아준 부모님, 날 기다려준 아내

정현욱은 서울에서 태어나 장안초∼건대부중∼동대문상고(현 청원고)를 거치며 줄곧 서울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살림은 넉넉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몇 차례 사업에 실패했고, 어머니는 지금도 일을 하러 다니신다.

“제가 운동을 시작하자 부모님은 저를 뒷바라지 하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어요. 3형제 중 제가 장남인데, 집안 모든 것이 제 위주로 돌아갔어요. 어릴 때 제가 몸이 많이 약했거든요. 없는 돈 털어서 저한테만 고기를 사 먹이시고…. 동생들한테 미안했죠.”

프로에 입단 후에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입단 초기에 키만 크고 몸무게는 70kg이 채 되지 않았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집을 불린 뒤 3년 만에 처음 1군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2000년 팔꿈치인대접합수술을 받았다. 재활훈련을 마치고 2003년과 2004년 자리를 잡는가했으나 이번엔 병역비리에 연루됐다. 교도소에 수감된 뒤 공익근무를 하면서 다시 3년을 쉬어야했다.

2007년 마운드에 복귀한 그는 2008년 53경기에 선발과 중간으로 등판해 생애 처음 10승 고지에 올랐다. 암울하던 그의 야구인생에 비로소 꽃이 피기 시작했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발탁돼 깜짝 호투를 펼치면서 ‘국노(국민노예)’라는 별명을 얻었다. 올 시즌까지 5년 연속 50경기 이상 등판하면서 한국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마당쇠’로 활약했다.

“20대에는 야구보다 다른 일로 세월을 보냈어요. 남들은 9년 만에, 요즘 대졸 선수는 8년 만에도 FA 자격을 얻는데, 전 17년 만에 처음 FA가 됐습니다. 28억원이라는 큰돈을 만지게 됐는데 그동안 고생하신 부모님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리고 아내가 생각났어요. 동갑내기 포항 아가씨로 무명 시절에 만났는데 수술에다, 병역비리에다, 몇 번이나 도망갈 일이 생겼지만 끝까지 저를 지켜줬죠. 벌어놓은 돈도 없이 공익근무할 때 결혼을 했는데 지금까지 고생해준 아내에게 늦게나마 보답을 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날 키워준 삼성, 날 선택해준 LG

‘불평불만을 갖지 말자.’ 그는 매년 다이어리 첫 머리에 이 말을 꼭 적어 놓는다. 그의 좌우명이다. 그래서인지 자신을 키워준 삼성에 고마워했다. 어릴 때 김상엽 투수에 반해 삼성에 입단하고 싶었던 그는 자신이 꿈꾸던 구단에 17년간 몸담아 행복해했다.

“구단은 최선을 다해 저를 평가했겠죠. 솔직히 올해는 제가 패전처리를 하는 등 마운드에서 중요한 몫을 못해냈잖아요. 삼성에서 마무리하지 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구단에 섭섭한 건 전혀 없어요.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FA)기회여서 떠나게 됐지만 삼성을 잊을 수는 없을 겁니다. 저를 응원해주신 삼성 팬들도요.”

정현욱은 진정으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LG 유니폼을 입었다. 김기태 감독도 전화를 통해 “형이랑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1999∼2001년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정현욱의 성실성과 마음가짐을 잘 알고 있었던 김 감독이었다.

“제가 나이가 있으니까 솔직히 내리막길로 볼 수도 있는데 LG는 저에게 ‘야구를 좀 더 오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감독님 말씀과 LG의 정성에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그는 LG 구단과 LG 팬들의 기대를 잘 알고 있었다. “솔직히 제가 삼성에 남아 못하면 삼성팬들은 이해해 주실지도 모르지만 LG 팬들은 거액을 받고 부진하면 이해해주시겠어요? 그동안 저는 살아남으려고 정말 치열하게 버텨왔습니다. LG에서도 잘 버텨낼 자신이 있습니다. 야구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워야죠. 다른 건 몰라도 공 많이 던지는 건 자신 있으니까요.” ‘국민노예’는 이제 ‘잠실벌의 노예’가 되겠단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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