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이후 21년 만에 무대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조재현과 배종옥. 두 사람은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서 깊은 ‘연기 내공’에 걸맞는 화려한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조재현 “중년에 이성 친구 솔직히 부러워”
“종옥 씨의 장점? 짱구라 머리가 좋아”
배종옥 “연극 무대만의 냄새가 그리웠죠”
“난 아직도 스무살…사랑도 마찬가지”
무려 21년 만에 같이 하는 무대다. 30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서 주인공 정민과 연옥 역을 맡은 두 배우, 조재현(47)과 배종옥(48).
연 말 대작 홍수 속에서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두 사람의 ‘명품 연기’에 힘입어 연일 관객석을 꽉 채우며 순항 중이다. 어느덧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여전히 무대에서 이십대 시절의 열정을 보여주는 두 사람을 12월의 ‘목요일’에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만났다.
◆ 연일 매진…조재현 “가족 표도 못 구해”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는 책상 하나와 의자 둘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다른 소품은 전혀 없다. 조재현과 배종옥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엄청난 양의 대사를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탁구의 격렬한 랠리처럼 빠르게 주고받는 대사 속에서 조재현은 능청스런 연기로 관객을 쥐락펴락했고, 배종옥은 이지적인 외면에 아픈 속내를 숨긴 싱글맘의 심리를 특유의 톡톡 튀는 ‘배종옥표’ 연기로 정교하게 그렸다.
- 요즘 두 사람의 작품이 공연계의 화제다. 티켓을 못구해 발을 구르는 관객도 많다.
조재현(이하 조): “그런가. 사실 나도 자리 구하기 쉽지 않다. 가족들한테 지금은 표가 없으니 나중에 보라고 했다.”
배종옥(이하 배):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기분이 좋다.”
- 이 작품의 주제는 50대의 ‘사랑과 우정’이다. 과연 50대의 사랑과 20대의 사랑은 다른가.
배종옥(이하 배): “‘다르지 않을까’란 생각이 오히려 이상하다. 내가 늘 나인 것처럼 사랑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내가 스무 살이라고 착각하며 산다.”
조재현(이하 조) “소중함의 차이가 달라지는 것 같다.”
- 극중 정민과 연옥은 한때 연인이었지만 지금은 친구사이다. 중년에 이런 이성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조: “이성친구라 … 솔직히 부럽지 않나. 양 기자는 안 그런가. (기자: 난 아니다) 솔직하게 말해라. 본인이 솔직하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솔직한 얘기를 끄집어내려 하면 되겠나(웃음).”
배: “왜, 기자를 괴롭혀…(웃음)”
◆ 그리움과 약속은 나를 무대에 서게 만드는 원동력
두 사람은 1991년 곽지균 감독의 영화 ‘젊은 날의 초상’에서 처음 만났다. 이후 묘하게도 21년 동안 한 번도 같이 작품을 한 적이 없다. 조재현에 따르면 ‘젊은 날의 초상’에서도 함께 등장한 장면이 없었다. 사실상 이번 작품이 두 사람의 첫 공동작업이다.
조: “‘젊은 날의 초상’ 때 신발에 깔창을 몰래 깔았던 기억이 난다. 감독이 ‘얼굴은 마음에 드는데 키가 좀 작다’고 해서. 그런데 옥상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찍다가 발목을 삐었다. 깔창을 빼고 뛰었어야 했는데, 남들이 볼까봐 못 빼고 뛴 거다.”
배: “중앙대였나 …. 데모를 하고, 사람이 막 떨어지고 하는 걸 찍은 기억이 난다.”
조: “그때 멀리서 종옥씨를 봤다. 가무잡잡하고 삐쩍 말랐는데, 예뻤다. 보면서 ‘배종옥이다’했지. (기자: 후광이 번쩍이지는 않던가) 그랬다. 그런데 까만빛이었다.”
- 한 길을 걷는 동료이자 배우로서 서로에 대한 매력을 말다면.
조: “닭살스럽게 진짜…. 처음으로 같이 하니까 좀 조심스럽기는 하다. 종옥씨는 굉장히 철저한 사람이다. 준비를 많이 한다. 난 그렇지 않다. 게으른 배우다.”
배: “본인은 아니라고 하는데, 굉장히 섬세하다. ‘괜히 조재현이 아니구나’ 싶다. 사실 무대라는 게 서로 실수도 많이 하고, 덮어주고 가야할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의지가 된다. 이번에 함께 일하며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조: “한 가지 더 있다. 종옥씨는 머리가 굉장히 좋다. 대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연출가의 의도를 정확히 잡아낸다. 짱구라서 그런가.(웃음)
- 평소 ‘마음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어떤 공부인가.
배: “7~8년 정도 지인들과 함께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 마음공부는 ‘지금 깨어있는 법’을 공부하는 것이다. 사실 무대에서 대사를 안 할 때 온갖 잡생각이 난다. 그럴 때 딱 호흡을 하며 ‘지금 무대에 있자’하고 마음을 잡는다.”
조: “난 산에서 마음을 닦는다. 하지만 배우가 산에 자주 가도 좋지 않다. 마음이 너무 편안해져서 모든 걸 용서하고 수용하려 한다. 배우는 쌈닭 기질도 있어야 한다.”
- 가족들도 공연장에 오는지.
배: “딸이 미국에서 공부 중이다. 올해 대학에 들어갔다. 연기에는 관심이 없다. 전공이 경영학이다.”
조: “우리 집은 어머니가 연극광이시다. 내가 출연한 작품은 물론이고 나오지 않는 작품도 많이 보신다. 최근에는 ‘어머니’란 연극을 혼자 보고 오셨다. 강부자 선생님이 나오는 작품으로 알고 가셨는데 엉뚱하게도 막심 고리키 원작의 ‘어머니’였단다. 그래도 재미있게 봤다고 하셨다.”
- 왜 연극 무대를 사랑하는가.
배: “작년에 강신일 선배가 출연한 ‘레드’라는 작품을 봤다. 끝나고 인사를 드리러 가는데, 무대 뒤에서 쿰쿰한 곰팡이내가 났다. 새삼 그 냄새가 그립게 느껴졌다. 이런 그리움이 끊임없이 무대에 서고 싶게 만드는 것 같다.”
조: “후각이 발달하셨군(웃음). 데뷔할 때부터 나 자신과 약속을 했다. 유명해지든 아니든 연극을 하겠다고. 2000년 한창 바쁠 때도 ‘에쿠우스’를 했다.”
- 배우들은 배역을 맡으면 ‘캐릭터 만들기’를 한다.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 사람은 왜 이런 행동을 할까, 과거의 상처 때문인가, 그렇다면 그 상처는 왜 생긴 걸까’하는 식이다. 대본에 없는 것도 질문을 한다. 이렇게 해서 한 인물을 이해하게 되면 인물이 지닌 외로움, 고통같은 것들이 가슴에 확 들어오게 된다.”
조: “나는 내 안에서 많이 찾는다. 그래도 부족한 것은 밖에서 찾아서 내 안에 넣는다.”
-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기질과 인기로 배우가 된다는 개념을 부숴버리고 싶다”라고 한 말이 화제가 됐는데.
배: “내 이야기다. 사실이다.”
조: “난 주접만 떨고, 종옥씨는 몇 마디 안 했는데 올바른 말을 했다고 기사가 많이 났다(웃음).”
배: “다들 말로만 ‘선배님 존경해요. 저도 연기 잘 하고 싶어요’하지만 정작 방법을 가르쳐주면 안 한다. 내 방식은 늦어도 30대 초에는 트레이닝을 하고 무대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 나이에 복식호흡, 발성 등을 무용하는 친구들이 쓰는 벨트를 두르고 욕 먹어가며 배웠다.”
- 두 사람이 생각하는 ‘배우’란 어떤 존재일까.
조: “아, 이런 질문이 제일 싫다. 굳이 답한다면 배우는 자유로워야 하는 사람이란 것이다. 자유롭게 커야 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직업 위에 살아야 한다.”
배: “동의한다. 배우는 영혼이 자유로워야 한다.”
조: “내가 ‘영혼까지’라고 말하려다 말았는데 ….”
배: “배우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하고 똑같이 생겼지만 똑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라는 말을 하고는 한다. 똑같이 생겼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배우는 그래야 한다.”
○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
프 랑스 작가 마리 카르디날의 소설 ‘샤를르와 룰라의 목요일’에서 모티브를 얻어 한국적 정서와 상황에 맞게 창작한 연극. 은퇴한 국제분쟁 전문기자 연옥과 역사학자 정민이 매주 목요일마다 주제를 정해놓고 토론을 벌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민 역은 조재현과 정웅인이, 연옥 역은 배종옥과 정재은이 번갈아 맡고 있다.
○프로필
조재현
1965년 서울생/경성대 연극영화과 졸/1989년 KBS 13기 공채 데뷔/성신여대 미디어영상연기과 교수/경기도 문화의전당 이사장
배종옥
1964년 서울생/중앙대 연극영화과 졸/1985년 KBS 특채 데뷔/중앙대 연극영화과 겸임교수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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