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
‘대한민국 축구 전설’ 차범근(62) 전 감독이 20여년 전 소속팀 동료들과 함께 한 ‘인증샷’을 공개했다.
차 전 감독은 지난 27일, 자신의 SNS에 최근 다녀온 ‘프랑크푸르트 레전드 베스트 11(11 Sulen of Eintracht Frankfurt)’ 행사와 관련된 여러 장의 사진들을 올렸다. 차 전 감독이 이번에 공개한 사진 중에는 유르겐 그라보브스키(69), 칼 하인츠 쾨르벨(59), 안토비 예보아 등 옛 동료들과 함께 한 사진들도 있다. 그중에는 현 독일대표팀 감독 요아힘 뢰브(53)의 젊은 시절 사진도 있다.
현지에서 만난 팬이 보내줬다는 당시 사진은 흔치 않은 자료다. 차 전 감독 “프랑크푸르트에서 맞은 분데스리가 두 번째 시즌 팀 사진”이라며 “내 왼쪽의 로니 보셔스가 당시 독일 대표선수였고, 오른쪽은 분데스리가 최다출전 기록을 가지고 있는 쾨르벨, 아래줄 맨 오른쪽에 얌전히 두손 모으고 있는 선수가 지금 독일대표팀 감독인 요아힘 뢰브”라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차 전 감독은 특히 그라보브스키와의 사진을 공개하며 당시 그를 대할 때마다 떨리던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차 전 감독은 “그라보브스키. 나에겐 엄청난 선수였다. 그러나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동반자들이 되어서 만났다”라며 운을 뗐다.
이어 “1979년 처음 프랑크푸르트팀에 갔을 때, 74년 뮌헨 월드컵 우승멤버이자 프랑크푸르트의 터주대감이었다. 쉽게 곁을 주지 않고, 말 붙이기도 힘든 존재였다. 모두들 벤츠를 타고 좋아할 때, 재규어를 끌고 우아하게 나타나는 선수였다. 매일 연습장으로 출근하던 백여명의 골수팬들은 그가 나타나면 ‘그라비, 그라비’ 하면서 수근댔다. 내게 ‘헤이, 차붐!’하는 것과는 다른 무게감이었다. 우리는 세면도구가 든 가방 하나 끼고 주차장으로 내달릴 때, 그는거울 앞에서 머리를 말리고 스프레이를 뿌리면서 훈련을 마무리하곤 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차 전 감독은 이어 “34년이 훌쩍 넘어서 다시 만났다. 아내 헬가는 70이 되었으니 걸음걸이에서부터 노인티가 역력했다. 그라비는 아래 사진처럼 살이 많이 쪘다. 그런데 마음이 왠지 찡했다. 아내는 헬가에게 당시 우리를 초대해주어서 참 고마웠었노라고 다시 한 번 얘기하고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간 것이 실감났다”라고 고백했다.
차 전 감독은 “사진의 몸집 좋은 친구가 내가 UEFA컵 우승할 때 5살이었다며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사진들을 들고 싸인을 받겠다고 찾아왔다. 그라비에게 부탁을 했는지, 그라비가 밖에서 기다리는 그 친구들에게 나를 데리고 갔다. 아마도 35년 전 그의 아버지는 그라비의 얼굴조차도 마주치기 어려웠을 텐데, 칠순의 노스타는 참 친절해졌다. 난 거만하고 도도하던 삼십대의 그라비가 갑자기 그리워졌다. 그의 친절함이 보기 좋아야하는데, 나는 왠지 마음 한구석이 자꾸 중심을 잃고 내려앉으려고 해서 힘들었다. 그의 건강을 진심으로 빌었다”라며 시간이 많이 흐른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토로했다.
이제 세상에 없는 동료를 가슴아프게 되새기기도 했다. 차 전 감독은 쾨르벨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벽’이라 불리던 브루노 페차이(사망)의 현수막 앞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차 전 감독은 “맘이 짠하다. 긴 다리로 미끄러지면서 상대방의 공을 감아내면서 바로 일어나는 태클은 예술이었다. 오스트리아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으니 그가 살아있다면 국가대표감독도 능히 했을 것이다. 아까운 친구가 너무 빨리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모두 자기 사진 앞에서 기자들에 둘러싸여 포즈를 취하면 후레쉬를 터트리는데 페차이가 없다. 아내가 나랑 쾨르벨을 불러 페차이 앞에 세웠다”라며 일찍 요절한 동료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드러냈다.
쾨르벨은 베른트 휄첸바인(68)의 현수막 사진에서도 ‘찬조출연’한다. 차 전 감독은 “74년 월드컵 주전 공격수인데 이 친구가 네덜란드와의 결승에서 문 앞에서 자알 넘어지는 바람에 페널티킥을 얻어 독일이 우승한 것”이라고 소개하면서 “이 사진을 놓고도 저녁 만찬장에서 자랑이 늘어졌다. 시선은 멀리 공은 발 앞에! 이 사진이 축구의 모델이라며 요즘 공보고 드리블하는 너희들 같은 애들은 잘 봐두라며 잘난 척을 저녁 내내 했다. 늙으면 자랑이 심해진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사진을 올리고 자랑하는 것도 다 늙어서. 하하하”라며 자긍심과 즐거움을 드러냈다.
차 전 감독은 예보아 및 그의 딸과 함께 찍은 사진도 공개했다. 차 전 감독은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두 번이나 한 선수”라고 예보아를 소개한 뒤 “그래도 uefa컵 우승도 독일선수권 우승은 내가 했다. 하하. 신경전 은근히 심각하다”라며 옛 동료를 만난 유쾌함을 표했다.
차 전 감독은 최근 독일 프랑크푸르트 팬들이 선정한 역대 이 팀의 ‘레전드 베스트 11’에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1979년부터 4시즌 동안 프랑크푸르트에서 활동하면서 122경기 46골을 터뜨렸다. 이 시기 프랑크푸르트는 차 전 감독과 함께 1979-1980 유럽축구연맹(UEFA)컵 우승, 1980-1981시즌 DFB 포칼컵 우승을 이끌었다.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출처|차범근 전 감독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