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듀오 배치기가 지난해에 이어 ‘4집 파트. 2’을 발표하고 타이틀곡 ‘눈물샤워’로 음원차트와 음악 방송의 1위를 휩쓸고 있다.
● ‘4집 파트. 2’로 데뷔 8년 만에 첫 1위…힙합 음악사 새옹지마!
“이번 앨범이 잘 안 되면 음악을 그만둘 뻔했죠.”
힙합 듀오 배치기(무웅, 탁)가 고집스럽게 지켜온 ‘뽕끼’ 덕에 벼랑 끝 음악 인생에서 살아 돌아왔다.
‘반갑습니다’, ‘마이동풍’, ‘No.3’ 등 밝고 경쾌한 힙합음악을 고집해 오던 배치기가 지난 1월 14일 발표한 미니앨범 ‘4집 파트. 2’를 통해 느린 템포의 ‘뽕끼’ 가득한 서글픈 힙합 발라드곡을 선보였다.
‘눈물샤워’는 힙합 프로듀서 랍티미스트와 배치기의 합작품으로 사랑 앞에 “처절하고 찌질한 남자”의 눈물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인 가수 에일리가 피처링에 참여 역시 배치기의 ‘뽕기’에 방점을 찍는데 한몫했다. 이 밖에도 어반자카파의 조현아, Mnet ‘보이스 오브 코리아’의 우혜미 등 실력파 보컬리스트들이 힘을 보탰다.
그들에겐 실험적이면서도 도전적인 곡인 ‘눈물샤워’를 통해 배치기는 그간의 마음고생을 말끔히 씻어냈다. 현실과 음악의 괴리감으로 홍역을 앓으며 격한 감정으로 만들었던 ‘눈물샤워’가 뜻밖의 성과를 낸 것.
타이틀곡 ‘눈물샤워’는 발매와 함께 각종 음원 차트를 올킬했다. 미국 빌보드 ‘K팝차트’에서 2주 연속 정상에 오르는가 하면 지난 31일 방송된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데뷔 8년 만에 처음으로 음악 방송 1위를 거머쥐었다.
이날 배치기의 1위 수상 소감 역시 화제가 됐다. 배치기는 “갈 곳 없는 배치기를 받아준 소속사 식구들에게 고맙다. 부모님께도 감사드리고 나중에 또 1위를 하게 되면 그때는 수상소감을 준비해 나오겠다”고 밝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듯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두 사람이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이 시청자와 음악 팬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2008년부터 4년간 한 장의 앨범도 내지 못하고 소속사에서도 나온 배치기는 지난해 YMC엔터테인먼트에 새 둥지를 틀고 4집 앨범을 발매했다. 소속사는 지난해 ‘두 마리’ 대신 ‘눈물샤워’을 타이틀곡으로 결정했지만, 멤버들의 주장으로 ‘두 마리’가 먼저 공개됐다. ‘눈물샤워’는 2년 전에 이미 만들어진 곡이었고 멤버들의 구미에 딱 들어맞는 곡은 아니었다. 그만큼 배치기에겐 ‘눈물샤워’는 익숙지 않은 곡이었다.
“지난해 ‘4집 파트.1’을 내고 냉혹한 현실에 부딪혔어요. ‘우리는 잊히고 있다’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20대의 마지막과 30대의 시작을 경험하며 우리의 앞날은 보이지 않더라고요. 20대를 갓 마친 30대의 격한 감정이 새 앨범에 담겨 있죠.” (모두)
배치기는 데뷔 초부터 ‘센 음악’보다는 공감이 가고 즐길 수 있는 힙합을 추구해 왔다. 그들의 노래에는 삶과 밀착되어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이 녹아 있다. 일부는 배치기의 음악을 “가볍다”라고 평했지만,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그들에겐 ‘흥겨운 멜로디와 공감되는 가사’라는 말이 최고의 칭찬이다.
힙합듀오 배치기.
‘눈물샤워’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배치기는 어려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춘 듯 한결 가벼운 마음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 성과 덕분에 앞으로의 음악생활이 더 험난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탁은 “‘눈물샤워’는 사랑을 이야기한 첫 번째 타이틀곡이다. 그동안의 우리 음악과는 또 다르다. 그래서 더 모르겠다”고 밝혔다. 무웅 역시 “이번 활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히트 공식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찾으려 할수록 미궁 속에 빠졌다”며 “우리의 노래는 경험과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경험과 고민을 통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치기의 음악은 그들의 롤모델인 다이나믹 듀오·타이거JK와 많이 닮아있다. 데뷔 초부터 “타이거JK 팬클럽 출신”이라고 밝혀 왔던 그들은 “다이나믹 듀오 형들은 힙합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제를 접목한 앨범을 낸 국내 최초의 가수라 생각한다(무웅)”며 “언젠가 누가 들어도 반할 수밖에 없는 곡을 만들어서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탁)”라고 밝혔다.
“창작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창작으로 푼다”는 배치기에게는 “전쟁 같은 앨범 준비기간”을 끝내고 무대에 서는 앨범 활동 기간이 가장 큰 행복이다. 그들은 “곡을 완성했을 때 얻는 기쁨과 무대에서 팬들과 호흡하는 기쁨에 살고 있다”고 했다.
배치기는 최근 많은 아이돌 그룹에게 배우는 것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아이돌의 연습량과 실력에 혀를 내둘렀다. 무웅은 “아이돌 그룹의 홍수시대라고 하지만 잘 되는 팀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면서 “우리가 선배로서 아이돌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주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국민 걸그룹 소녀시대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배치기는 “그들의 무대는 굉장히 화려한 블록버스터 영화 같았다”는 짧은 대답을 내놨다.
어느덧 서른 살. 그들도 우리네처럼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안고 살고 있다. 배치기 역시 결혼과 집 장만 등으로 한숨을 쉬고 걸그룹을 보고 ‘아빠 미소’를 짓는 보통의 30대 남자다.
“다행히 씀씀이가 헤프진 않지만 차를 살 만큼 큰 돈은 없어요. 저축하며 돈을 모으고 있죠. 1위를 해서 심적 부담이 줄긴 했지만 고민은 여전해요. 언젠가 가정을 꾸리면 지금처럼 목숨 걸며 음악만 바라보며 살 수 없겠죠? 하하. 그때는 좀 더 즐기며 음악하고 싶어요.”
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YMC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