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KIA 신승현 변화구같은 인생, 불같은 직구는 울분

입력 2013-05-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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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를 통해 SK에서 KIA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신승현. 이번 트레이드는 그에게 야구인생의 3막을 여는 계기였다. 15일 광주 SK전에 등판한 신승현이 이를 앙다문 채 볼을 던지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2005년 150km뿌리며 12승 잘나가던 선발
2007년 부터 수술…군복무…수술 독한 시련
KIA 이적후 4경기서 6이닝 9K·방어율 제로
7년의 기다림 “쌓였던 것 마운드서 토해내죠”


“여보세요?” 6일 아침. SK 구단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벨이 울리는 순간부터 묘한 예감이 들었다. 워낙 기회가 오지 않아, 팀을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막상 트레이드 소식을 듣자, 서운하고 씁쓸한 감정이 스쳤다. 신승현(32·KIA)은 2000년 SK의 창단 멤버다. 13년간 도원·문학구장에서 청춘을 불살랐다. 전주고 출신이지만, 인천은 제2의 고향이었다. 그런 그가 광주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당초 송은범(KIA)에게 초점이 맞춰진 트레이드라고 했지만, 신승현의 활약은 눈부시다. 올 시즌 SK에선 1군 성적이 없었지만, 유니폼을 갈아입은 이후 4경기 6이닝 동안 9탈삼진을 잡았다. 방어율은 제로(0). 16일 광주 SK전을 앞둔 신승현을 만났다. 그는 “얼마 전까지도 2군에 있던 선수였는데, 이런 관심이 낯설다”며 미소를 지었다.


○야구인생 1막=120km대 투수에서 150km대 투수로!

신승현은 2005년 12승(9패)을 거둔 수준급 선발이었다. 완봉도 두 차례 있었다. 전주고 시절, 그는 최고 구속이 120km대에 불과한 언더핸드였다. 커브 구속은 80∼90km 정도. 전주를 연고로 한 쌍방울의 경기를 보며 꿈을 키웠지만, 현실의 벽은 높아보였다. 당시 쌍방울 마운드를 이끌던 조규제(KIA 코치), 김원형(SK 코치)의 투구는 그에게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프로는 저런 분들이 던지는 곳인데…. 저는 못 갈 줄 알았죠.” 운 좋게 SK 유니폼을 입었는데, 신기하게도 타자들은 신승현의 공을 제대로 치지 못했다. 이유는 너무 느려서. 타자들의 중심이 앞으로 쏠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 정도 구속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힘쓰는 법을 체득하면서 팔의 높이가 점점 올라갔다. 마침내 150km의 직구를 던지는 사이드암이 탄생했다. 생애 최고의 활약을 펼친 2005년에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2006년에도 8승(6패)을 거두며 제 몫을 했다. 인천에서 열어젖힌 프로 인생의 1막은 화려했다.


○야구인생 2막=‘잊혀지는 것은 두렵지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팔꿈치에 통증이 왔다. 검진 결과 인대가 문제였다. 결국 2007년 여름 토미존서저리(팔꿈치 인대접합수술)를 받고 지루한 재활을 시작했다. 2008∼2009년 공익근무로 또 2년의 세월을 보냈다. 점점 그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가는 존재가 됐다. “프로는 항상 새로운 선수들이 나타나요. 잘하는 선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맞는 것은 당연하죠. 서운하다기 보다는 내 자신이 한심했어요. 왜 이러고 있나….” 설상가상 공익근무를 마친 뒤에는 팔꿈치 뼛조각제거수술까지 받았다. 암흑기는 더 길어졌다. “엄정욱, 김광현(이상 SK), 송은범 등 친한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가면, 저는 식당 직원인줄 알아요. 가끔씩 알아봐주는 팬들이 있으면, ‘아직도 나를 기억하는구나’ 싶어서 더 힘을 냈죠.” 2011년 꿈에 그리던 1군 마운드에 복귀했다. “올 시즌에도 안 되면 은퇴한다”고 배수의 진을 친 결과였다. 그러나 지난 두 시즌간은 1·2군을 오락가락하는 처지였다.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몸도, 공도 괜찮은데 언제 나를 불러주나…. 1군에서 잘 던져야지, 여기서 잘하면 뭐하나…. 점점 의욕이 떨어지는 시점이었어요. 나이도 서른을 훌쩍 넘었는데….”


○야구인생 3막=‘나는 울분을 던진다!’

신승현은 ‘남성성’이 강한 선수다. 젊은 시절에는 ‘욱’하는 성격 때문에 경기를 그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7년간의 기다림은 그의 마음속에서 객기를 빼고, 자신감만 남겼다. 유니폼을 바꿔 입고 처음으로 마운드에 오르던 날도 이렇게 다짐했다. “위압감 있게 던지자.” 그의 투구 지론은 “두려워하면 실투가 많아진다. 하지만 용감하면 실투를 던져도 상대가 놓친다”는 것이다. 그 배짱으로 140km대 중반의 직구와 허를 찌르는 커브를 적절히 섞었다. 상대 타자들은 움찔움찔 삼진을 당했다. 14일부터 광주에서 열린 친정팀과의 첫 번째 3연전에서도 활약은 이어졌다. 14일에는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3266일 만에 홀드를 챙겼고, 15일에는 1.2이닝 동안 무려 5개의 삼진을 잡았다. 이제 그는 어엿한 필승계투조의 일원이다. “아직도 제가 이렇게 리드한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가도 되나 싶어요. 믿음을 주시니까 감사할 뿐입니다. 지난 7년 동안 많이 못 던졌잖아요. 팀이 지고 있든, 이기고 있든, 어떤 상황에서도 다 막아내고 싶어요.” 신승현의 위상은 단 열흘 만에 급격히 달라졌다. KIA 선동열 감독도 그를 공개적으로 칭찬한다. 신승현은 “그간 안에 쌓였던 것들을 토해내듯 던져서, 성적이 잘 나온 것 같다”며 웃었다. 그의 불같은 직구에는 7년간의 울분이, 굽이굽이 커브에는 7년간의 곡절이 담겨있는 듯했다.

광주|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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