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난줄도 모르고 베팅했었지”

입력 2013-06-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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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화염 속에 사라진 신설동 경마장의 추억


北정찰기 뜨자 경마장사람들 혼비백산
인민군 병참기지 활용 후 폐허 잔해뿐
서울 재탈환 땐 유엔군 비행장으로…
경마 재개 염원, 결국 뚝섬서 새 출발


1950년 6월25일 일요일, 북한군은 새벽에 기습적으로 남침을 했다. 전방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그날,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요경마가 열렸다.

불안한 조짐이 나타난 것은 제 4경주가 시작될 무렵. 정체불명의 프로펠러 비행기 한 대가 경마장 상공에 나타나 전단지를 살포하고 사라졌다.

전단을 주워 읽은 사람들은 그 비행기가 북한의 정찰기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이후 확성기를 단 군용 지프가 나타나 장병들의 즉시 귀대를 명령하고 시민들이 동요하지 말라고 방송을 했다. 경마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전쟁이 터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을 점령한 북한 인민군은 신설동 경마장을 탱크와 차량 등 군장비를 보관하는 병참기지로 활용했다. 이 때문에 신설동 경마장은 유엔군의 집중 폭격 대상이 됐다. 경마장에 있던 경주마 200여 마리도 인민군이 징발해 갔다.

9월 15일 서울을 수복한 후 마사회 직원들이 찾았을 때 신설동 경마장은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폐허였다. 마사회는 10월 30일 이사회를 열고 경마를 재개하려 노력을 기울였으나 중공군의 가세로 전세가 다시 악화되어 무산됐다.

이후 신설동 경마장은 1951년 서울 재탈환 후 유엔군의 비행장으로 징발됐다. 서울 외에 부산, 대구, 군산 등 지방 경마장들도 대부분 전쟁동안 유엔군의 기지로 사용되었다.

새로운 경마장 건설이 절실했던 한국마사회는 1953년 초부터 뚝섬 경마장 건설을 추진해 그 해 7월 28일 착공에 들어갔다. 바로 휴전협정 다음 날이었다. 극심한 자금난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54년 5월 8일 뚝섬 서울경마장이 개장했다. 전쟁으로 중단된 경마가 3년 11개월 만에 재개되는 순간이었다.

25일은 한국전쟁 발발 63주년이었다. 만일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면 서울경마공원은 어떻게 될까? 1500마리 경주마들의 운명은?

전쟁이 터지면 ‘충무계획’에 따라 경마는 즉각 중단된다. 마사회 직원들은 비상소집, 전시 마필보호, 직장 민방위대 운영 등 일련의 조치에 들어간다. 경주마와 관련 장비들은 군수 물자로 징발된다.

마사회 비상계획팀 정찬권 팀장은 “마사회는 전쟁이 발발하면 시설을 보호해 종전 후 경마를 정상적으로 복원하기 위한 매뉴얼을 갖고 있다” 며 “전쟁은 경마산업을 붕괴시키고 말과 인간에게 큰 고통을 주기 때문에 평화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재학 기자 ajapt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ajap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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