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울산 현대의 파죽지세는 김호곤 감독의 리더십 덕분이다. 10월30일 서울전에서 승리하며 손을 들어 팬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김종원 기자|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퍼거슨과 견주기는 좀 그렇지만 이기는 경기에 관한 한 국내 최고는 울산 현대 김호곤(62) 감독이 아닐까 싶다. 국내 감독 중 유일한 60대다. K리그 클래식 14개 구단 감독 중 40대는 8명, 50대 4명이고, 김 감독과 경남 페트코비치(68) 감독이 환갑을 넘었다. 경험만큼이나 노련미가 묻어난다.
울산은 올 시즌 공수가 가장 안정된 팀으로 평가 받는다. 견고한 수비에 다양한 공격옵션으로 파죽지세다. 가장 먼저 20승 고지를 밟았고, 내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도 확보했다. 유력한 우승 후보다.
사실 올 시즌 개막 전만 하더라도 울산에 대한 평가는 후하지 않았다. 지난 해 AFC 챔스리그 우승 당시 멤버들이 대거 빠지면서 전력이 약화됐다. 하지만 그 공백을 김 감독의 원숙해진 리더십으로 채웠다. 특히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이기는 경기를 펼쳐 상대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서울 최용수 감독은 “울산의 가장 큰 힘은 이기는 법을 아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주위에서는 김 감독이 올 들어 많이 변했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변한 건 없다. 김 감독이 추구하는 스타일에 선수들이 완전히 녹아들면서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풍부한 지도자 경험으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그는 심리전에 강하다. 선수를 통솔할 수 있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밀고 당기는 건 그의 장기다. 상대팀 감독과의 수 싸움에서는 언제나 우위다. 자기 팀 장점의 극대화는 물론이고 상대 약점을 물고 늘어져야 이긴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시즌 레이스의 전략도 빛난다. 중반까지는 선두로 치고 나가기보다는 추격권에서 기회를 엿봤다. 집중 견제를 받는 1위 보다는 한발 뒤에서 힘을 비축한 뒤 뒤집겠다는 전략이었다. 이런 노련함이 울산의 힘이었다.
부드러움도 장점이다. 선수들과 스킨십이 자유롭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몸에 배었다. 여기엔 칭찬과 배려, 소통이 녹아 있다. 칭찬에 인색하지 않다. 가벼운 농담 속에도 사기를 북돋우는 기운이 있다. 선수의 잘못도 의도된 게 아니면 눈감아준다. 그라운드 밖에선 인생 상담도 자주한다. 그의 조언은 어린 선수들에겐 동기부여가 된다. 국내 최장신(196cm) 공격수 김신욱이 올해 부쩍 성장한 것도 김 감독의 도움이 컸다. 이처럼 그는 아들뻘과도 소통이 자연스럽다. 김 감독은 “지난해 큰 일(AFC 챔스리그 우승)을 치르면서 선수들과 믿음이 생겼다. 올해 부쩍 선수들과 가까워진 이유다”고 했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생기니 성적도 올랐다는 것이다.
지도자 생활 동안 아직 K리그 정규리그 우승이 없는 김 감독. 부드러운 미소 속에 감춰진 창끝은 우승을 겨냥하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정상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스포츠 2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