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넥센은 ‘통 큰’ 연봉협상을 통해 주목을 받았다. 넥센의 연봉협상은 선수들의 사기를 높이려는 이장석 대표의 생각이 만들어낸 한 편의 작품과 같았다. 스포츠동아DB
간판급 선수와 먼저 계약…잡음 최소화
FA보단 ‘제식구 챙기기’로 박탈감 해소
이토록 기승전결이 뚜렷한 드라마가 또 있을까. 올 겨울 큰 화제를 만들어 낸 넥센의 연봉 협상 얘기다. 넥센이 거액의 제작비를 투입해 흥행 대박을 이끌어낸 한 편의 ‘블록버스터’다.
시작은 유격수 강정호였다. 넥센은 4일 가장 먼저 강정호의 2014시즌 연봉 계약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연봉 3억원에서 1억2000만원 오른 4억2000만원. 프리에이전트(FA) 계약에 성공한 타 구단 선배 유격수들까지 제쳤다. 다음 타자는 올해 처음으로 전 경기에 출장하며 주전 3루수로 자리를 굳힌 김민성이었다. 올해 연봉 8500만원에서 9500만원 오른 1억8000만원에 계약을 발표했다. 그 다음은 올 시즌 구원왕에 오른 소방수 손승락 차례. 손승락은 9일 2억6000만원에서 1억7000만원 오른 4억3000만원에 사인했다. 그리고 마침내 넥센은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린 10일, 2년 연속 정규시즌 최우수선수에 오른 박병호의 연봉을 발표했다. 2억2000만원에서 2억8000만원 오른 5억원. 강정호가 포문을 열고 김민성과 손승락으로 기대감을 고조시킨 뒤 박병호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한 편의 짜여진 시나리오 같다.
이들의 소감 첫 머리는 한결 같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구단에서 더 많이 제시해서 망설임 없이 도장을 찍었다”는 것이다. 어차피 구단과 선수는 서로 상대가 얼마를 부를지 가늠해본 뒤 단단히 정신을 무장한 채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그러니 기대를 뛰어 넘는 금액을 듣게 되면 저절로 무장 해제될 수밖에 없다.
넥센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박병호와 가장 먼저 계약했지만, 이번에는 늘 구단의 간판이었던 강정호의 기를 살려 주는 의미에서 올 겨울 1호로 재계약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올해 넥센을 가장 빛낸 선수인 박병호의 연봉 계약 역시 ‘최고의 하루’가 완성될 수 있도록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리는 날 마무리했다. 제작비를 파격적으로 투자한 만큼, 스토리까지 탄탄하게 구성한 것이다.
넥센 이장석 대표는 올 시즌 막바지에 “우리 팀의 연봉 협상은 다른 구단과 반대다. 좋은 성적을 낸 간판급 선수들과 먼저 계약한다. 그래야 이후 다른 선수들과의 연봉협상에서 나오는 잡음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원칙을 밝힌 바 있다. 선수들의 기대조차 뛰어 넘는 특급 대우에도 분명한 숨은 뜻이 있다. “야구를 잘하기만 하면, 누구나 이 정도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목표 의식을 선수들에게 심어주겠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거물급 선수들을 데려 오느라 정작 ‘제 식구’들을 소홀히 한다는 내부 박탈감도 없앨 수 있다. FA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앞으로는 내부 자원 육성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자립형 야구기업인 히어로즈가 또 하나의 생존법을 찾은 셈이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goodgo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