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다이노스 전준호 코치(가운데)가 마낙길(왼쪽), 나성범과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아닷컴DB
야구에도 시대의 흐름이나 유행 등을 반영한 ‘트렌드(trend)’가 있다.
지난 수 년간 한국프로야구에는 일명 ‘발 야구’로 불리는 뛰는 야구 트렌드가 형성됐다. 타자가 출루해 상대팀 배터리를 흔드는 것은 물론 안타가 나왔을 때 한 베이스 더 진루하는 ‘발 야구’는 경기의 흐름과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김경문(56) NC 감독은 두산 사령탑 시절부터 유독 ‘발 야구’를 선호했다. 당시 두산은 김경문 감독의 지휘 아래 발 빠르고 주루센스 좋은 이종욱, 오재원, 정수빈 등이 두각을 나타내며 ‘두산 육상부’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김경문 감독은 NC로 옮긴 후에도 발 야구를 추구했다. 그 결과 지난해 1군 무대에 첫 진입한 신생팀 NC는 팀 타율(0.244)과 안타(1045) 모두 9위로 최하위였지만 부족했던 공격력을 팀 도루 142개(3위)로 보충해 KIA와 한화를 제치고 정규시즌 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팀 도루 성공률은 무려 0.750을 기록해 전체 1위에 올랐다.
이뿐만이 아니다. NC는 지난해 총 50개의 도루를 성공시킨 도루왕 김종호(30)를 배출했고 그의 동료 이상호(25)는 비록 25도루에 그쳤지만 성공률만큼은 당당히 1위였을 만큼 NC의 발 야구는 큰 성과를 거뒀다.
물론 이 모든 기록은 선수 스스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발 야구를 장려한 김경문 감독과 이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지도한 숨은 조력자가 있다. 바로 전준호(45) NC 주루코치이다.
전 코치는 지난 2일 동아닷컴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종호와 이상호 등 NC 선수들 스스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며 겸손해했다. 하지만 '명장 밑에 명졸 없다'는 말처럼 전준호 코치의 과거 기록을 살펴보면 향후 NC의 발 야구는 거침없이 계속 될 전망이다.
전준호 NC 코치. 동아닷컴DB
1991년 롯데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전 코치는 이후 현대와 넥센을 거쳐 지난 2009년 은퇴할 때까지 무려 19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는 현역시절 한국시리즈 총 5회 우승을 비롯 역대 최다도루(550개) 기록은 물론 최다 3루타(100개)와 최다안타 2위(2018개) 등 숱한 기록을 남겼다.
특히 전 코치가 보유한 최다도루와 3루타 기록은 당분간 쉽게 깨지지 않을 전망이다. 현역선수 중 이대형(31)과 김주찬(33·이상 KIA)이 전 코치의 기록에 가장 근접해 있다. 하지만 이대형의 도루(379개)와 김주찬의 3루타(43개) 역시 전 코치의 기록을 갱신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한국프로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전 코치는 지난 2011년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의 초청을 받아 1년간 미국에서 코치연수를 했다. 전에도 한국프로야구선수 중 메이저리그 코치연수를 받은 이는 있었지만 메이저리그 구단의 초청으로 모든 경비일체를 지원받은 건 전 코치가 최초이자 유일하다.
전 코치는 동아닷컴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은퇴 후 메이저리그 야구를 경험하며 부족했던 2%를 채울 수 있었던 것도 좋았지만 더 값진 것은 메이저리그 관계자들과의 소중한 인연”이라며 “아직도 샌디에이고는 물론 빅리그 관계자들과 꾸준히 연락하며 한미야구의 다른 기술이나 지식 등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닷컴은 '대도' 전준호 코치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2014년 갑오년 시즌에 대한 계획과 각오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전준호 NC 코치와의 일문일답.
-오랜 만이다. 최근 근황부터 전해달라.
“지난해 정규시즌이 끝난 뒤 마무리 훈련을 한 후 12월 약 한 달간은 가족과 함께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냈다. 새해가 밝았으니 조만간 집이 있는 서울을 떠나 다시 창원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선수들의 자율훈련을 돕고 1월 중순쯤 스프링캠프를 위해 미국 애리조나로 출국할 예정이다.”
-지난해 NC가 신생팀답지 않은 기대 이상의 성적(7위)을 거뒀다.
“그랬다. 김경문 감독님의 지휘 아래 코칭스태프와 선수 모두가 하나가 된 결과여서 너무 기뻤고 보람도 컸다.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도 좋은 성적을 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홈 팬들의 열렬한 성원도 큰 도움이 됐다. 신생팀이지만 NC 홈 팬들의 열정은 정말 뜨거웠다.”
전준호 NC 코치. 동아닷컴DB
-NC는 또 지난해 도루왕 김종호도 배출했다. 전 코치의 영향이 컸을 것 같다.
“과찬이다. 지도자는 이론과 경험을 토대로 선수들에게 효과적인 방법과 방향 등을 제시할 순 있지만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실전에서 활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선수들의 능력이다. 김종호와 이상호 등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올려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2014년은 갑오년 말띠 해이다. NC는 올해도 말처럼 거침없이 뛸 계획인가?
“도루 등 모든 작전의 권한은 감독님에게 있다. 나는 주루코치로서 도루작전이 나왔을 때 선수들이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는 역할이다. 작년에 우리 팀은 총 142개의 도루를 성공시켜 전체 3위에 올랐다. 감독님이 뛰는 야구를 선호하는 만큼 올해도 김종호를 비롯 많은 선수들이 출루하면 한 베이스 더 진루하는 야구를 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 특히 올해는 발 빠른 이종욱(34)이 우리 팀에 합류해 지난해 보다 더 기동력 있는 야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대형신인으로 불렸던 나성범(25)은 생각보다 도루(12개)가 저조했다.
“절대 그렇지 않다. (나)성범이는 시즌 내 우리 팀의 중심타자인 3번을 맡았다. 프로야구 풀타임을 뛴 경험도 없는 신인이 개막전부터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시즌 초 부상을 당해 104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정황상 중압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첫 해 12개의 도루는 절대 나쁜 기록이 아니다. 워낙 열심히 하는 선수이고 체격조건 등도 좋아서 올 해는 분명 최소 20도루 이상은 달성할 것으로 본다.”
-NC가 지난해 7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올 시즌 성적을 예상한다면?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그것을 예상하거나 맞출 수 있다면 직업을 바꿔도 될 것 같다. 하하. 잘 알겠지만 야구에는 워낙 변수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작년보다 잘해도 다른 팀이 더 잘하면 상대적으로 우리가 부진해 보일 수 밖에 없다. 다만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건 지난해 보다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좋은 성적도 따라 올 것이다.”
전준호 NC 코치. 동아닷컴DB
-지난 해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의 유격수이자 재작년 내셔널리그 도루왕이었던 에버스 카브레라(27)를 인터뷰했다. 당시 그 선수가 전 코치를 언급해 깜짝 놀랐다. 둘이 잘 아는 사이인가?
“카브레라는 내가 2011년 샌디에이고에서 코치연수를 할 때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트리플 A 선수였는데 특히 도루에 관심이 많아서 자주 대화를 한 기억이 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그와 개인적으로 연락하진 않지만 샌디에이고 코치나 구단 관계자들을 통해 카브레라가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하는 등 빅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잘 한다고 들었다.”
-카브레라도 그렇고 NC의 김종호 선수도 도루부문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전 코치의 지도력이 남다른 것 같다.
“과찬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100프로 그들이 열심히 그리고 잘했기 때문이다.”
-사견이지만 전 코치가 보유한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다도루(550개)와 3루타(100개) 기록만큼은 당분간 쉽게 깨지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이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발 빠르고 주루센스 좋은 선수들이 많은 만큼 조만간 신기록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도 능력 있는 후배들이 하루 빨리 내 기록을 갱신해 줬으면 좋겠다.”
-끝으로 전준호 코치와 NC 팬들을 위해 한 마디 해달라.
“새해가 밝았으니 먼저, 팬 여러분 모두 올 한해 건강하고 하는 일 모두 잘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신생팀 NC가 지난해 7위의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팬 여러분들의 전폭적인 관심과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올해도 팬들의 성원에 보답할 수 있도록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 NC가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갑오년 새해도 팬 여러분들이 야구장에 많이 오셔서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고맙다.”
로스앤젤레스=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sang@Lee22.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