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언니’ 박세리의 아름다운 도전

입력 2014-04-08 06:4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박세리. 사진제공|데니스골프

■ 美 LPGA 나바스코 4위…제2 전성기 예고

3년 넘게 기다린 우승
잡힐 것 같던 커리어그랜드슬램
행운은 그녀를 외면했지만
원조 골프여왕은 건재했다
다음은 세상에 박세리 알린 US오픈
그녀의 6월이 기다려진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시즌에 상관없이 4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는 기록)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새 희망을 봤고, 아름다운 도전은 계속된다. ‘원조 골프여왕’ 박세리(37·KDB금융)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박세리는 7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미라지의 미션힐스 골프장(파72)에서 열린 미 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 대회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총상금 200만 달러) 최종 4라운드에서 2타를 잃어 합계 6언더파 282타로 공동 4위에 올랐다. 우승까지 넘봤던 박세리에게는 아쉬운 성적. 그러나 “좋은 경험이었다”는 그의 말처럼 앞으로의 시즌이 더욱 기대된다. 우승은 19세 골프천재 렉시 톰슨(미국·14언더파 274타)에게 돌아갔다.


● “최선 다한 경기, 아쉽지만 좋은 경험”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박세리였기에 더욱 그렇다. 박세리가 우승할 경우 한국인 첫 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과 함께 미 LPGA 역대 7번째 그랜드 슬램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은 박세리가 골프인생의 마지막 목표로 내세운 대기록이다. 박세리는 1998년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 2001년 브리티시여자오픈, 2002년과 2006년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메이저 5승을 올렸지만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는 정상에 서지 못했다. 3라운드까지 공동 3위를 달려 가능성은 충분했다. 공동 선두와는 2타 차 밖에 되지 않아 역전도 노려볼 만 했다. 그러나 마지막 날 행운의 여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가장 아쉬운 건 박세리 자신이다. 2010년 5월 벨 마이크로 클래식 우승 이후 3년 넘게 침묵하고 있었기에 더욱 간절했다. 박세리는 경기 후 “사실 우승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며 “그러나 이런 일은 수시로 일어났던 일이다. 경기를 즐길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17년 차 베테랑답게 침착했고 더 멀리 내다봤다. “팬들도 (우승을) 많이 기다렸는데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


● 다시 보여준 원조 골프여왕의 힘

박세리는 골프팬들의 기억에서 조금씩 사라져갔다. 1인자의 자리를 후배들에게 내준 지는 오래며, 주변에서는 ‘은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다. 16년 동안 메이저 5승 포함 통산 25승, 한국인 첫 골프 명예의 전당 가입 등 숱한 기록을 남긴 골프여왕이었지만 2010년 이후엔 상금랭킹 20위 안으로 들어온 적이 없을 정도로 힘이 빠졌다. 이번 대회는 ‘원조 골프여왕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경기였다. 부활을 알리는 또 다른 시작이었고,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는 출발점이 됐다. 박세리는 “(우승 경쟁을 하는)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다. 경기를 하면서 마음이 편했고, 경기 내내 즐길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기대보다)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최선을 다한 경기이기에 아쉬움 보다는 좋은 경험이 됐다”며 스스로 위안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남은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자신감도 넘쳤다. “올 들어 분위기가 좋다. 특히 올해는 심적으로 가장 편안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더욱 (우승이) 기대된다. 제2의 전성기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 6월 US여자오픈서 우승 재도전

박세리에게 최고의 스승은 아버지다.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면에서도 아버지의 조언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박세리에게 올해 작은 변화가 생겼다. 변화의 시작은 아버지다. 4년 만에 경기를 관전하러 미국에 간 부친 박준철 씨는 딸의 경기를 지켜본 뒤 “나이에 맞는 스윙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아는 아버지의 말이었기에 박세리는 변화를 시도했다. 스윙을 더 간결하게 바꿨고, 강한 파워보다는 정확한 임팩트 위주로 손을 봤다. 그 결과 거리는 줄었지만 정교함이 좋아졌다. 4라운드를 제외하고 앞선 3라운드까지 박세리의 그린 적중률은 평균 78%로 뛰어났다. 퍼팅은 예전에 사용했던 역그립(왼손이 오른손 아래로 내려가는 모양)으로 바꿨다. 이 역시 퍼팅이 안정되는 긍정적인 효과로 연결됐다. 이번 대회 평균 퍼팅 수는 29개에 불과했다. 변화 후 성적도 좋아졌다. 지난달 기아클래식에 이어 2대회 연속 ‘톱10’에 진입했다. 지난해에는 ‘톱10’이 세 차례에 불과했다.

상승세를 탄 박세리의 다음 목표는 6월 US여자오픈이다. 16년 전(1998년) 박세리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던 그 대회다. 박세리는 “아버지께서 오랜만에 경기를 관전하러 오셨다. 경기를 편안하게 즐기는 힘이 됐다”면서 “이번 대회에서 우승은 놓쳤지만 6월 US여자오픈에서 다시 한번 우승을 노려보겠다”고 말했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na1872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