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인의 전사 Road to Brazil] 김영권 “패스·프리킥 내 최고의 무기”

입력 2014-05-29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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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 스포츠동아DB

김영권. 스포츠동아DB

13. 중앙수비수 김영권

고3때 홍명보 감독 강연 듣고 ‘태극마크’ 꿈
AG 비매너·SNS 논란 딛고 대표팀 핵심으로
2012년 광저우 이적…리피 감독 신뢰 한몸에

축구대표팀 홍명보(45) 감독의 선수시절 포지션은 무엇이었을까? 경기 상황에 따라 간헐적으로 공격에 가담해서 ‘리베로’라고 불리기도 한 홍 감독의 정확한 포지션은 센터백, 즉 중앙 수비수였다. 비록 화려한 기량을 뽐내는 공격수는 아니었지만, 존재감만큼은 일급 스트라이커 이상이었다. 과거 축구대표팀은 홍 감독의 유무에 따라 수비의 무게감이 달라졌다. 홍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지금, 2014브라질월드컵에서 과거 그와 같이 한국의 수비 중심을 잡아줄 중앙수비수로 낙점 받은 선수는 바로 김영권(24·광저우 에버그란데)이다.


● 김영권의 꿈을 키운 홍명보 감독의 한마디

김영권은 전주공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7년을 잊지 못한다. 그의 스승인 전주공고 강원길(46) 감독은 당시 대표팀 코치로 있던 홍명보 감독을 특별 초청해 선수들을 상대로 강연을 부탁했다. 강 감독과 홍 감독은 고려대 87학번 동기로 절친한 사이다. 홍 감독은 전주공고 선수들에게 “너희 중 국가대표가 나올 수 있다. 항상 성실하게 훈련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감독의 강연은 축구 유망주로 꿈을 키워나가던 김영권에게는 터닝포인트였다. 수줍은 표정으로 홍 감독과 악수를 나누면서부터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확실한 목표를 세웠다. 김영권은 2년 뒤인 2009년 홍 감독이 이끌던 U-20(20세 이하) 대표팀에 승선했다. 이를 시작으로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2012년 런던올림픽 때도 잇달아 홍 감독의 부름을 받아 ‘홍명보의 아이들’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 시련 속에서도 성장은 ‘∼ing’

태극마크를 단 김영권은 경기 외적인 문제로 홍역을 앓았다. 광저우아시안게임 이란과의 3·4위전 경기 종료 직전 이란 공격수들의 비신사적이고 거친 플레이에 대항해 몸싸움을 하던 도중 화를 삭이지 못한 채 가운데 손가락을 드는 돌발행동을 저질렀다. 그의 행동을 옹호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던 것은 사실이다. 또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2012년에는 포지션에 대한 불만을 SNS에 털어놓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심적으로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축구에 대한 집중력만큼은 잃지 않았다. 브라질월드컵 출전을 목표로 기량을 갈고 닦았다. 2012년 여름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로 이적한 뒤에는 탁월한 기량과 재능을 인정받아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신뢰를 얻었다. 리피 감독은 2006독일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우승으로 이끈 명장이다. 중국에서 김영권의 별명은 ‘리피의 양아들’일 정도다.

브라질월드컵에서 김영권은 상대 공격수 봉쇄라는 중책을 맡은 동시에 과거 홍 감독처럼 세트피스 상황에선 공격에도 가담한다. ‘공 다루는 기술만큼은 타고났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정확한 패스 능력과 함께 직접 프리킥까지 구사할 수 있다. 김영권은 “패스와 프리킥은 내 무기 중 하나다.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골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의욕을 드러냈다.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은?

▲생년월일=1990년 2월 27일
▲키·몸무게=186cm·74kg
▲출신교=전주조촌초∼해성중∼전주공고∼전주대
▲프로 경력=FC도쿄(2010년), 오미야 아르디자(2011년 1월∼2012년 7월), 광저우 에버그란데(2012년 8월∼현재)
▲A매치 데뷔=2011년 6월 3일 세르비아전(평가전)
▲A매치 성적=19경기·1골
▲월드컵 경험=없음
▲주요 경력=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정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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