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김승규 “인생에 기억될 90분을 뛰었다”

입력 2014-07-02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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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 대한민국 GK 새 희망 김승규 단독인터뷰

벨기에전, 최악의 상황에서 찾아온 기회
감독님·코치님은 긴 시간 기를 불어넣어줬고
난 골대를 만지며 나만의 의식을 준비했다.
물 먹은 잔디를 보고 펀칭을 많이 해야겠다 판단
후회가 남지 않게 온몸을 던졌다. 패배에 눈물 흘렸지만
“네가 오늘 가장 잘했다” 정성룡 선배의 한마디에
세상을 다 가진듯 했다.

“인생의 90분이었다. 내 모든 걸 바쳤고, 후회 없이 뛰려고 했다.”

골키퍼 김승규(24·울산 현대)의 활약은 눈부셨다. 축구국가대표팀 ‘홍명보호’의 일원으로 처음 밟은 월드컵 무대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냈다. 벨기에와의 2014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에 출전한 그는 추가시간을 포함한 94분 동안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축구에 브라질월드컵은 상처투성이의 대회로 남았다. 그러나 아픔 속에서 작은 희망도 찾았다. 김승규가 대표적이다.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뛰었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상대의 대포알 슛을 막고 또 막았다. 그가 아니었다면 한국축구는 더욱 처절한 순간을 맞았을 수도 있다. 1일 스포츠동아와의 짧은 전화통화에서도 김승규의 목소리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 열정을 쏟아낸 승부

6월 27일(한국시간) 브라질의 아레나 데 상파울루. 벨기에전 킥오프를 앞두고 동료들과 함께 우리 진영 중앙에서 둥글게 모여 파이팅을 외친 뒤 김승규는 제 자리로 이동해 자신이 지켜야 할 골대를 쓰다듬었다. 2010광저우아시안게임이 끝나고 수술한 손목에 테이핑을 잔뜩 감는 것 외에도 소속팀에서부터 항상 해온 그만의 경기 전 의식이었다. 이어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꼭 감고는 기도를 했다. “팀을 위해 확실히 그라운드를 뒹굴고 싶었다. 그간 우리가 흘린 땀방울이 헛되이 끝나지 않도록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렇게 김승규의 ‘인생경기’가 시작됐다. 점차 높아지던 심박수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처음 볼을 터치하면서부터. 사력을 다했지만 최종 스코어는 0-1이었다. 7차례 슈퍼세이브를 보여줬음에도 딱 한 번을 버티지 못했다. 후반 33분 얀 페르통언(토트넘)에게 결승골을 내줬다. 홍명보호도 초라하게 월드컵과 작별했다.

“짧은 축구인생이지만 그동안 쌓아온 내 모든 걸 바쳤다. 한 점의 후회도 남기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이제 며칠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페르통언에게 실점한 장면이 계속 떠오른다. 그 때 볼을 옆으로 흘렸다면 상황도 바뀌었을 텐데….”


● “최악의 순간을 최선의 결과로 바꿔놓고 싶었지만…”

김승규는 경기 당일에야 출전 통보를 받았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정말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하진 못했다. 운명과 자존심이 걸린 벨기에전을 앞두고 대표팀 김봉수 골키퍼 코치가 지나가는 말로 “준비 잘하고 있으라”는 언질을 줬지만, 그 때만 해도 ‘과연 내게 기회가 올까’라는 생각으로 반신반의했다.

경기 당일 오전 팀 미팅이 끝나자마자 출전 엔트리를 선수단에 전달한 홍명보 감독이 그를 불렀다. 그저 “평소처럼만 하면 된다”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유난히 대화가 길어졌다. 그 순간 벨기에전에서 ‘어떤 자세를 잡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지시는 없었다. 그 대신 월드컵 데뷔를 앞둔 제자의 자신감을 불어넣는 데 홍 감독은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김 코치도 많은 이야기를 건넸다. 자그마한 스텝 동작 등 기본기부터 혹독하게 가르친 스승에게 실망을 안기고 싶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수문장으로 떠오른 벨기에의 티보 쿠르투아(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대결한다는 사실도 그를 자극했다.

공교롭게도 김승규의 노트북과 태블릿 PC에는 쿠르투아의 경기 동영상 편집본이 가득 들어있었다. 자신보다 두 살 어린 선수였지만 충분히 롤 모델로 삼을 만했다. 당연히 상대의 버릇을 세세히 알고 있었다. 결코 지고 싶지 않았다. 경기 결과로는 패했지만, 준비 과정과 노력에선 결코 쿠르투아에 뒤지지 않았다.

김승규는 제 몫을 충분히 했다. 패배가 확정된 순간, 그 의 눈에선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다. 끝까지 주전경쟁을 펼쳐온 선배 정성룡(29·수원 삼성)이 다가와 “네가 오늘 가장 잘했다. 고맙다”는 따뜻한 말을 건넸을 때 세상의 전부를 가진 듯 했다. “대회를 치르면서 골키퍼가 바뀐다는건 정말 팀이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을 때다. 벤치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믿고 맡겨 주셨다. 최악의 순간을 최선의 결과로 바꿔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 철저한 대비에서 비롯된 선방

벤치에서 언제 올지 모를 출전 기회를 막연히 기다리지 만은 않았다. 벤치 멤버도 의외로 할 일이 많다. 경기 상황과 장면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지켜보고, 복기해야 한다. 김승규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했다. 그라운드 분석이었다. 브라질월드컵 경기장의 그라운드는 유난히 미끄럽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대개 경기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가 물을 뿌리는 것은 킥오프 1시간 반 전에서 2시간 전이지만 브라질은 그렇지 않았다. 30분 전까지도 물이 콸콸 쏟아졌다.

이는 좀더 공격적인 플레이를 유도하기 위한 대회 조직위원회의 결정이었다. 러시아와의 1차전이 벌어졌던 고온다습한 쿠이아바에서도, 늦가을의 싸늘함이 느껴진 알제리와의 2차전 장소 포르투 알레그리에서도 똑같았다. 유난히 미끄러운 잔디, 물기를 잔뜩 머금은 볼 때문에 골키퍼들의 실책이 많다는 점을 간파한 김승규는 벨기에전에 앞서 일찌감치 ‘볼을 무리하게 잡기보다는 펀칭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러시아 골키퍼도 우리와 경기할 때 볼 을 잡으려다 뒤로 흘려 실점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똑같이 범하고 싶지 않았다. 어지간한 장면에선 모두 볼을 주먹으로 치는 쪽을 택했다. 주먹이 안 닿으면 손가락으로라도 쳐내려고 했다.”

철저한 준비와 정확한 판단이 ‘인상적인 월드컵 데뷔전’을 도운 것이다. 6번째 A매치 출격, 첫 월드컵 출전은 그렇게 젊은 김승규에게 큰 자산으로 남았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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