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토픽] 박은선 성희롱 감독들 ‘엄중 경고’ 끝?

입력 2014-07-22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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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와 여자축구연맹이 일부 WK리그 감독들이 제기한 ‘박은선 성 정체성’ 의혹에 대해 솜방망이 징계를 내리면서 또 다른 파문이 일고 있다. 5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출전을 앞두고 파주NFC에서 훈련하고 있는 박은선. 스포츠동아DB

대한축구협회와 여자축구연맹이 일부 WK리그 감독들이 제기한 ‘박은선 성 정체성’ 의혹에 대해 솜방망이 징계를 내리면서 또 다른 파문이 일고 있다. 5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출전을 앞두고 파주NFC에서 훈련하고 있는 박은선. 스포츠동아DB

■ 책임지지 않는 축구협회

정체성 논란…WK리그 감독 2명 사퇴·4명 유지
국가인권위 나서 여자연맹·축구협회에 징계 권고
협회 ‘솜방망이’ 조치에 인권위, 2차 대응 나설 듯


요즘 국제축구계에선 긍정의 바람이 일고 있다. ‘리스펙트 캠페인(Respect Campaign)’이다. 영국 심판 7000여명이 경기 도중 받은 모욕과 욕설, 협박으로 인해 업무를 그만두면서 시작된 이 캠페인은 선수·지도자·심판·팬 등 축구 구성원들이 서로 존중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 등에 의해 전 세계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대한축구협회도 올 4월 ‘리스펙트 캠페인’ 선포식을 열어 동참을 약속했다. 당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국내 축구인들이 팬들에게 당당하고 모범이 되도록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정 회장의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여전히 존중 받지 못하고 있는 이가 있다. 여자축구선수 박은선(28·서울시청)이다.

박은선은 러시아 여자프리미어리그(1부리그) FC로시얀카(Rossiyanka) 이적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한국여자축구에서 유례없는, 시즌 도중 해외 진출을 시도한 배경을 놓고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많은 이들이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시청을 제외한 WK리그 감독들은 지난해 11월 한국여자축구연맹에 박은선의 성정체성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리그 보이콧을 무기 삼아 공문까지 보내며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자 2명의 감독은 물러났지만, 4명은 아직 감독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자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섰다. 올 2월 감독들의 행동을 성희롱으로 판단했고, 여자연맹과 축구협회에 징계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여자연맹과 축구협회 모두 눈치만 볼 뿐, 선뜻 나서지 못했다. 인권위는 6월 말까지 ‘징계 보고’를 통보했지만, 이마저 지키지 않다가 이달 초에야 결론을 내 인권위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내용이 충격적이다. ‘엄중경고’가 전부다. 여자연맹 징계위원회가 내린 엄중경고 조치를 축구협회 징계위가 받아들여 지난주 인권위에 전달했다.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성희롱 인정’ 여부다. 여자연맹은 “감독들의 행위를 성희롱으로 볼 수 없지만 선수에 대한 ‘병원 진단 제출’ 요구는 문제의 소지가 있어 엄중경고한다”고 했고, 축구협회는 “성희롱으로 인정하나, 사건 당사자들이 깊이 뉘우치고 있어 징계는 여자연맹의 뜻을 따른다”고 했다.

어찌됐든 결론은 똑같다. 사실상 징계는 유야무야됐다. 결국 인권위란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의 조사 결과는 아무 쓸모없는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많은 축구인들은 “이렇게 ‘자기식구 감싸기’식 결론을 내릴 것이면 왜 이리 길게 시간을 끌었느냐”며 고개를 젓는다. 정 회장은 당초 회장단 회의 등을 통해 이 사안에 대한 중징계 의지를 내비쳤는데도 말이다.

아직 변수는 남아있다. 인권위의 2차 대응이 나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축구계의 경징계에 대해 박은선 가족이 법적 대응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청 여자축구단을 위탁 운영하는 서울시체육회 관계자도 “오늘(21일) 이 문제를 보고 받아 아직 어떤 대응을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면서도 “인권위와 논의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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