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이재원은 2년 전 어느 날 넥센의 홈런왕 박병호에게 “기회만 주어지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 너도 자리를 잘 잡을 테니, 준비만 잘 하고 있으면 된다”는 조언을 들었다. 2년이 지난 올 시즌, 이재원은 홈런이 아닌 타율로 박병호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포수는 배우는 단계 “욕먹을 각오”
“2년 전 박병호 선배의 조언 큰 힘”
SK 이재원(26·사진)은 2년 전 어느 날, 경기 전 말을 걸어온 넥센 홈런왕 박병호(28)와의 만남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풀타임 첫 시즌을 보내며 홈런왕의 서막을 열기 시작한 박병호는 상무에서 제대한 뒤, 아직 1군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이재원을 향해 “기회만 주어져서 심리적 안정을 얻으면 너도 나처럼 자리를 잡을 것이라 믿는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준비 잘해라”고 말했다. 얼핏 평범한 말 같지만 충고를 들려준 사람이 박병호라 이재원의 가슴에 와 닿았다. 그로부터 2년 후, 이재원은 ‘박병호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박병호의 전공이 홈런이라면 이재원의 전공은 타율이다. 언젠가는 터질 것이라는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며 박병호의 잠재력이 폭발한 바로 그 나이에 정확히 이재원도 출발선에 섰다. 이재원은 “병호 선배와 비교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말했다.
● “타격왕 못해도 끝까지 간다”
이재원은 21일까지 타율 0.374로 전체 1위다. 주변에서 이재원의 4할 타율 도전에 웅성거릴 때, 정작 당사자는 타율을 따로 챙겨보지도 않았다. 언제 4할에서 3할대로 내려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4할에 있으면 매일 안타를 2개씩 쳐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꼈는데 너무 싫었다. 3할대 타율로도 당연히 타격왕을 차지할 줄 알았는데 역시 한국에 잘 치는 타자들이 많더라”고 웃었다.
이재원은 이미 규정타석을 채웠다. 산술적으로 이제 1타석도 안나가도 0.374의 타율이 인정된다. 그러나 마지막 경기, 마지막 타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다. “만약에 마지막 1타석에서 타격왕이 갈려서 상을 못 받더라도 나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타격왕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풀타임 시즌을 뛰어봐야 향후 체력에 한계가 왔을 때 대처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 “포수로서 300경기 뛸 때까진 욕먹을 각오”
풀시즌을 뛰며 배운 것이 하나 있는데 ‘잘 쉬는 것도 실력’이라는 깨달음이다. 단 언제 쉬어야 되고, 언제 훈련해야 될지를 아직 잘 모른다. SK 김경기 타격코치에게 요즘 많이 물어보는 것은 타격기술보다 장기레이스 대처법이다. 다만 아무리 힘들어도 신경 쓰는 것이 있는데 득점권 타율(0.370)이다. 주자 있을 때 타율이 0.409로 없을 때(0.335)보다 훨씬 높다. 이제 개인성적 못지않게 팀 성적이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신경 쓰고 있다.
타자 이재원은 정상을 향해 내딛고 있지만 포수 이재원은 이제 디딤돌을 쌓고 있다. “포수로서 욕 많이 먹고 있는데 포수가 만들어지는 시간인 300경기 뛸 때까지는 비판을 들을 각오가 돼 있다”고 밝혔다. 바깥에서는 최고의 풀 시즌을 보내고 있다지만 정작 이재원이 느끼기에 최고 시즌은 아직 오지 않았다.
대전|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matsri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