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상호는 “배 위에서 유일하게 배멀미를 하지 않았다. 천상 뱃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그 중 빠질 수 없는 사람은 배우 김상호다. ‘해무’에서 선장의 명령을 묵묵히 따르는 행동파 갑판장 ‘호영’ 역을 맡은 김상호는 영화에 생생한 매력을 불어넣었다. 그는 푸근한 인상 뒤 가장 이상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는 인물로 선원들이 사망한 수많은 밀항자를 잔인하게 뒤처리를 하고 하나 둘씩 미쳐갈 때 유일하게 중심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갑판장은 실제 배 위에서 그런 사람입니다. 모두 다들 고유의 역할이 있죠. 갑판장은 선장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죠. 하지만 갑판장 역시 속은 무너져 내렸을 겁니다. 하지만 호영에겐 가정이 있죠. 선원들 중 유일하게 한 가정의 가장이니까 오로지 집으로 가는 게 목표였을 겁니다. 사고로 죽어버린 밀항자들을 바다 속으로 던져버리고 집에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죠. 그리곤 아마 두 번 다시 배는 타지 않으리라 다짐했을 겁니다. 얼마나 끔찍합니까?”
배우 김상호.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바다안개가 밀려오는 ‘전진호’ 안에서는 밀항자들이 처참하게 죽고 모두 바다로 버려진 뒤 홍매(한예리)가 살아있다는 소식에 욕망을 표출하는 인간들의 면모가 드러낸다. 누군가는 배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여성을 향한 욕정 때문에, 누군가는 돈을 더 많이 얻으려는 서로 다른 욕망이 출동한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도 캐릭터들은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욕망에 대해 집착한다.
그는 “그게 우리 영화의 주된 주제가 아닐까. 독특한 것이 뭐냐면 사건의 전개가 고의적으로 생긴 게 아니라는 거다. 굳이 꼽자면 낡은 배의 탓이다. 하하. 그런 순간이 다가오면 이 사람이 어떻게 변해갈지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를 보면 일상적인 순간부터 극한의 상황까지 흐름이 쭉 이어진다. 우리는 그 흐름을 어떻게 잘 따라갈 수 있을지 많이 이야기도 나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고민이 있었기에 우리는 최고의 앙상블이었다. 배우들에게 ‘해무’는 독특하고 완성도 높고 자랑하고픈 작품이다. 매번 작품이 소중하지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드물다. 물론 힘든 촬영이었지만 재미가 더 커서 행복했다”고 덧붙였다.
한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김상호는 “아, 그런데 박유천과 한예리의 베드신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더라”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철주가 사람을 죽인 죄책감에 시달려 미쳐버린 완호(문성근)를 잔인하게 죽이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본 동식이와 홍매가 현실에 견디지 못해 서로의 감정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누는 장면이었다.
“아이들은 머쓱해질 때 회피를 합니다. 순수한 감정 표현인거죠. 아마 그거와 비슷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지만 그런 상황에 막상 닥치면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서로의 숨결을 느끼고 싶어 하는 본능적인 거죠.”
배우 김상호.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대답을 이어 함께 했던 박유천에 대해 물었다. 김상호는 “이름을 외우는 아이돌 가수 중 하나였다. 유명한지는 알고 있었다”며 “믹키유천 모르는 사람도 있나?”며 너스레를 떨었다.
“애들이 나와서 ‘랄랄라’ 하는 영화는 아니잖아요. 이런 작품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마음가짐이 돼 있다는 겁니다. 내 몸 한번 불사르겠다는 것 아녜요? 그런 애들 열정은 못 막습니다. 게다가 올바르잖아요. 소위 배우들은 연기에 힘 빼는데 10년이 걸려요. 근데 (박)유천이는 첫 작품인데 힘을 툭툭 빼버리더라고요. 대단한 겁니다.”
인터뷰 내내 김상호는 말을 툭툭 던지는 듯 했지만 대화는 섬세했다. 그가 얼마나 작품을 세세하게 분석하고 연기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원래 빈틈을 보이는 것을 싫어한다. 연기할 때 찝찝하게 하는 것을 싫어해 계속 묻고 생각한다. 그렇게 틈을 켜켜이 채우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더 열심히 연구해야 하고 설득력과 전심을 다해 연기해야죠. 배우로서 철학이요? 그냥 제 연기를 보며 많은 분들이 즐거워했으면 좋겠습니다. 배우는 관객들을 위해 존재하니까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