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임창용. 스포츠동아DB
● 구대성 밀어내고 역대 최고령 국가대표 투수
역대 국가대표 투수들의 나이를 살펴보면, 임창용 이전 최고령 투수는 구대성이었다. 1969년생인 구대성은 만 37세 되던 해인 2006년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에서 한화 복귀를 결심하면서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번에 임창용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으면서 구대성은 역대 최고령 국가대표 투수 타이틀을 물려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가게 됐다.
이어 만 36세에 국가대표로 활약한 투수는 3명 있었다. 1966년생 송진우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참가했고, 1971년생 류택현이 2007년 타이중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때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7년 타이중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는 2008베이징올림픽 지역예선 대회였다. 그리고 1977년생인 서재응이 2013년 36세의 나이에 제3회 WBC에 나섰다.
야수까지 포함해 역대 최고령 국가대표 선수는 진갑용으로 기록돼 있다. 1974년인 진갑용은 2013년 만 39세에 WBC 대표팀에 발탁됐다. 야수 역대 2위는 1972년생으로 만 38세에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박경완이었다. 박경완은 그 전년도인 2009년 제2회 WBC 때 37세의 나이에 태극마크를 단 바 있다. 스스로 역대 최고령 국가대표 기록을 경신했는데, 진갑용이 지난해 이를 추월하게 된 것이다. 이승엽(1976년생)은 2013년 37세에 WBC에서 뛰었고, 이종범(1970년생)은 2006년 36세에 WBC에서 활약했다.
● 부담과 책임감 사이
임창용은 원래 말수가 적은 편이다. 이번 국가대표 선발에 대해서는 특별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부담이 많았다. 그는 올 시즌 초반 최고의 마무리솜씨를 자랑하며 삼성의 선두질주를 뒷받침했지만 시즌 중반부터 블론세이브를 하는 날이 많아졌다. 시즌 29세이브를 수확하며 봉중근 손승락(넥센·이상 30세이브)과 함께 세이브 부문 3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지만 5점대 시즌 방어율(5.71)과 최다 블론세이브(9)는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수치일 수밖에 없다.
불혹은 앞둔 나이. 두 차례나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하면서 재기에 나선 그가 이 정도 활약을 하는 것만 해도 사실 ‘인간승리 드라마’라 칭송할 만하지만, 세상은 그런 잣대로만 그를 바라보지 않는다. 어차피 나이가 필요 없는 냉정한 승부의 세계. 프로는 강한 자만이 대접받는다. 실패하면 돌아오는 건 비난과 손가락질. 그도 이런 점을 잘 알기에 핑계와 변명을 하지 않는다. 무조건 잘 던지는 수밖에 없다.
그로선 내심 아시안게임 브레이크 기간에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잔여경기와 포스트시즌을 대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한국야구는 ‘서른여덟 살의 파이터’ 임창용을 다시 링 위에 오르도록 강요했다.
그는 대표팀에 발탁된 뒤 “이 나이에도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영광이지만, 솔직히 이제 나보다는 후배들에게 국가대표의 기회가 돌아갔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어쩌겠나. 국가대표는 내가 나가고 싶다고 나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안 나가고 싶다고 해서 안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마음을 다잡았다.
대표팀 맏형이라는 자리, 역대 최고령 투수라는 자리는 영예롭기보다는 그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 자칫 아우들이 만들어놓은 경기를 자신이 망치기라도 한다면…. 프로야구는 만회할 기회라도 주어지지만 사실상 단판승부나 다름없는 국제대회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순간에 역적이 된다.
그래서인지 그는 대표팀 훈련 첫날인 16일 잠실구장에서 12명의 투수 중 가장 먼저, 유일하게 불펜피칭을 소화했다. 당시 ‘아무도 공을 안 던지는데 왜 벌써 혼자 불펜피칭을 했는가’라고 묻자 그는 “남들 안 던져도 난 던져야지”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이왕 대표팀에 합류했으니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돼야하기 때문이다. 나이 많다고 뒤로 나 앉는 게 아니라 가장 먼저 몸을 풀고 대회를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얼마나 부담감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고는 18일 LG와의 평가전에서도 9회에 등판해 1이닝을 탈삼진 2개 포함 삼자범퇴로 완벽하게 막아냈다. 경기 후 류중일 감독은 “창용이는 구속도 150km가 나오고 괜찮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 2014 인천아시안게임은 또다른 도전
그가 아니고서는 사실 그의 속마음을 짐작하기 어렵다.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 전체에서 2번째로 나이가 많은 봉중근이 그나마 “창용이 형이 내색은 하지 않지만 부담이 많으신 것 같다”고 귀띔하면서 선배의 마음을 헤아렸다.
드림팀이 처음 발족된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때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돼 아시안게임 사상 첫 금메달을 경험한 임창용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에 이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3년 삿포로아시아선수권대회 겸 2004아테네올림픽 예선과 2009년 WBC까지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 18경기에 등판해 1승1패2세이브, 방어율 3.04(26.1이닝 9실점)를 기록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때 22세의 나이에 ‘원조 드림팀’ 멤버로 선발됐던 임창용은 이제 38세의 나이에 역대 최고령 투수가 돼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유종의 미를 그리는 것은 사치다. 임창용에게 2014인천아시안게임은 부담감과 책임감 사이에서 싸워나가야 할 또 다른 전쟁이자 도전의 무대일 뿐이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