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디트로이트 킨슬러 “올해는 반드시 WS 우승”

입력 2014-09-30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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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킨슬러. 동아닷컴DB

[동아닷컴]

“이안 킨슬러(32·디트로이트)의 경우를 보면 전문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스카우트라 해도 좋은 선수를 뽑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이는 미국의 유명 야구 기자인 존 식클스가 남긴 말이다.

킨슬러는 지난 2003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17라운드에서 텍사스에 지명돼 프로에 진출했다. 그의 지명순위는 전체 496번이었고 킨슬러는 당시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적어도 나는 10라운드 내에 지명 받을 줄 알았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가 받은 계약금도 겨우 3만불(약 3000만원)이었다.

하지만 킨슬러는 이후 단 3년 만인 2006년 4월 빅리그에 데뷔했고 텍사스의 주전 2루수 자리를 꿰찼다. 당시 텍사스가 주전 2루수였던 알폰소 소리아노를 트레이드 할 수 있었던 것은 킨슬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빅리그에 데뷔한 킨슬러는 거침이 없었다. 킨슬러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5툴 플레이어’라는 평가에 걸맞게 ‘30(홈런)-30(도루)’를 두 차례나 달성했다.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킨슬러를 포함해 단 12명 만이 보유한 대기록이다.

킨슬러는 30-30 외에 20-20을 한 차례 더 달성한 것은 물론 사이클링히트, 한 경기 6타수 6안타의 기록을 생산하는 등 빅리그를 대표하는 2루수로 성장했다. 킨슬러는 이런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총 네 차례나 올스타에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킨슬러의 성공은 그가 지병을 이겨낸 것은 물론 자신의 가치를 몰라준 과거를 이겨냈기에 더 큰 빛을 발한다.

미국 애리조나 출신인 킨슬러는 교도소장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4살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킨슬러는 유년시절부터 천식을 앓았다. 한 밤중에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부친은 이런 아들을 더 강하게 조련하고 훈련시켰다.

이안 킨슬러. 동아닷컴DB

킨슬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2000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29라운드에서 애리조나의 지명을 받았지만 입단하지 않았다. 킨슬러는 대신 대학에 진학했다. 킨슬러는 2001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26라운드에서 또 다시 애리조나의 지명을 받았지만 “프로에 진출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단하지 않았다.

킨슬러는 대학 2학년 때 야구명문 애리조나주립대(ASU)의 부름을 받았다. 주전 유격수 자리를 보장받았다. 하지만 팀 동료인 더스틴 페드로이아(31. 보스턴)의 그늘에 가려 벤치를 지키는 일이 더 많았다. 하지만 킨슬러는 당시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 본 타 대학 코치의 권유로 섬머리그에 참가했고 그곳에서 타율 0.335 출루율 0.416 장타율 0.536을 기록하며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2년 가을 대학야구 월드시리즈에서는 무려 0.619의 타율을 기록했다.

올해로 빅리그 경력 9년 째인 킨슬러는 통산 타율 0.273 173홈런 187도루 631타점 1333안타를 기록 중이며 미국 현지 언론으로부터 “역대 메이저리그 신인지명 17라운드 출신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아닷컴은 지난 겨울 텍사스에서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 된 킨슬러를 국내 언론 최초로 최근 미국 현지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다음은 킨슬러와의 일문일답.

-빅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비결이 있다면?

“빅리그 선수는 항상 준비가 잘되어 있어야 한다. 경기에 나설 준비는 물론 경기 중에는 승리에 일조할 수 있도록 타격과 수비 그리고 주루까지 모두 말이다. 이처럼 빅리그 데뷔 후 항상 준비를 잘했고 매 경기 최선을 다했던 것을 비결로 꼽을 수 있다.”

-올 시즌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웃으며) 내 목표는 간단하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고 싶다.”

이안 킨슬러. 동아닷컴DB

-어렸을 때 야구를 시작했다. 당시에 롤모델과 가장 좋아했던 팀은?

“롤모델은 아버지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아버지에게 야구를 배웠고 그에게 받은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천식을 앓고 있다. 지금은 잘 관리해서 괜찮지만 어렸을 때는 매일 아침 잠에서 깰 때마다 숨쉬기기가 힘들 만큼 괴로웠다. 한 밤중에 응급실을 찾는 일도 많았다. 아버지는 이런 나를 야구를 통해 더 강하게 키웠고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잘 인도해 주셨다. 나는 유년기를 애리조나 투산에서 보냈다. 애리조나에는 1998년까지 메이저리그 팀이 없었다. 그래서 시카고 컵스와 애틀랜타의 경기를 TV를 통해 자주 봤다. 특히 1990년대에 애틀랜타가 전성기를 구가할 때는 애틀랜타를 무척 좋아했다. 당시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팀이다.”

-야구를 시작한 뒤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나?

“과거 텍사스에서 뛸 때 처음 진출했던 플레이오프에서 승리를 거뒀을 때가 가장 기쁘고 행복했다. 아울러, 이것은 야구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아내와 결혼하고 두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무척 행복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투수를 꼽는다면?

“어려운 질문이다. 왜냐하면 야구는 상대성이 강한 경기여서 영원한 승자나 패자도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A라는 투수에게 오늘 성적이 안 좋았어도 다음 경기에서는 반대로 내가 더 성적이 좋을 수 있는 것이 야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명을 굳이 꼽아야 한다면 펠릭스 에르난데스(28· 시애틀)를 꼽고 싶다. 그는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항상 강했기 때문이다. 하하.”

-슬럼프에 빠졌을 때 이를 극복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면?

“슬럼프에 빠져도 종전에 하던 대로 계속 훈련하는 것 밖에 도리가 없다. 슬럼프도 야구의 일종이고 야구 자체가 슬럼프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어려운 종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구선수로 성공하고 롱런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시즌 중 연습이나 경기가 없는 날을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하다.

“(웃으며) 쉬는 날은 무조건 쉬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가 둘이나 있다 보니 그들과 놀아주는 일도 중요하다. 세 살 된 아들은 야구를 좋아해서 함께 놀아주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웃으며) 다섯 살 된 딸은 색칠하기나 공주놀이를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 난감할 때가 있다. 그리고 쉬는 날은 아내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도 한다.”

이안 킨슬러. 동아닷컴DB

-좋은 남편인 것 같다.

“(웃으며) 최고의 남편이라 할 순 없지만 최소한 노력은 하는 편이다. 하하.”

-당신도 별명이 있는지 궁금하다.

“특별한 건 없다. 단지 내 성을 빗대어 ‘킨스(Kins)’라고 부른다.”

-야구선수들은 징크스가 많다. 당신도 그런가?

“나는 경기 전 딸기잼과 땅콩잼을 바른 샌드위치를 거의 매일 챙겨 먹는다. 다른 선수들도 이와 유사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을 징크스나 미신이라 부르는 것보다는 일종의 루틴(행동양식)으로 생각한다. 일정한 시간에 야구장에 나와 정해진 시간에 연습이나 경기를 준비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만약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킨슬러는?

“(웃으며) 어려운 질문이다. (잠시 생각하더니) 정말 어렵다. 야구를 안 했다면 정말이지 지금쯤 내가 뭘 하고 있을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하하.”

-킨슬러에게 ‘야구’란 어떤 의미인가?

“나에게 야구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다양한 교훈과 가르침을 주는 삶의 지침서 같은 존재이다. 야구를 통한 경쟁 그리고 때론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게 참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야구를 통해 느끼는 행복이야 말로 내가 야구를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야구는 내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해준다.”

-끝으로 당신과 디트로이트 팬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팬들에게 정말 고맙고 감사한다. 고맙고 소중한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매 경기 최선을 다해 좋은 플레이를 펼치도록 하겠다. 고맙다.”

로스앤젤레스=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sang@Lee2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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