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엿보기] 친화력 좋은 폴리, 동료들에게 MVP 상금 쐈다

입력 2014-12-17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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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폴리-흥국생명 루크-IBK기업은행 데스티니와 딸(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모두 동료들의 덕” 먼저 요청해 회식 마련
루크, 구단 양해얻고 자비 트레이너 불러
IBK, 데스티니 딸 돌잔치 열어 감동 선물


혼자서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인선수는 V리그의 장미다. 화려하지만 가시도 있다. 이들의 수준 높은 플레이에 팬들은 즐거워하고 활약여부에 따라 팀 성적도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토종 선수들과 섞이지 않을 경우 팀을 괴롭히는 아픈 가시가 된다. 그래서 “외국인선수는 실력보다는 인성과 화합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현대건설, 흥국생명, IBK기업은행 등 여자부 상위권 3개 팀은 특색 있는 외국인선수 덕분에 행복하다. 잘나가는 팀은 다 이유가 있다.


● 동료들 위해 언제나 지갑 먼저 여는 현대건설 폴리

현대건설의 폴리는 11일 동료들에게 한 턱을 냈다. 그날 훈련이 없었던 현대건설은 평택에서 벌어진 GS칼텍스-IBK기업은행 경기를 단체로 관전한 뒤 패밀리레스토랑으로 이동해 회식을 했다. 폴리의 요청에 의한 자리였다. 이번 시즌 1,2라운드 최우수선수(MVP)에 뽑혀 200만원의 상금을 받았고 트리플크라운(한 경기에서 백어택 서브에이스 블로킹을 3개 이상 기록하는 것)도 세 번이나 달성해 주머니가 두둑했던 폴리가 “모두 동료들의 덕”이라며 한 턱을 내겠다고 해서 마련된 자리였다.

평소에도 자주 지갑을 열어 동료들에게 커피도 사고 선물도 하는 폴리는 아제르바이잔에서 ‘밀리언 걸’이라는 애칭이 생겼다. 한국 팬들이 터키 리그에서 뛰는 김연경의 소식을 매일 듣고 기뻐하듯이 폴리의 활약상은 실시간으로 아제르바이잔 배구팬에게 뉴스로 전해지고 있다. 라운드MVP 상금은 물론 트리플크라운 달성 때마다 100만원을 받았다는 소식이 계속 알려지면서 ‘밀리언 걸’로 불리기 시작했다.

동료들과 별다른 대화나 스킨십이 없었던 지난 시즌의 외국인선수 바샤에 비한다면 폴리는 수다쟁이라고 할 만큼 말도 많고 친화력도 좋다. 식성도 까다롭지 않다. 여러 음식을 고루 잘 먹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스시와 바다가재. 현대건설 국영준 사무국장은 “폴리를 위해 바다가재 회식도 여러 번했다. 지금처럼만 잘 해준다면 매일 바다가재를 못 사주겠냐”고 했다. 현대건설은 이런 폴리를 놓치기 싫어서 다음시즌에 실시하는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을 반대한다.


● 자비 들여 개인 트레이너 불렀던 흥국생명 루크

흥국생명의 루크는 최근까지 개인 트레이너를 따로 고용해 몸을 가다듬었다. V리그에 참가한 이후 친구와 단 둘이 지내던 루크는 11월 말 통역과 긴밀하게 상의했다. “오랫동안 내 몸을 돌봐준 개인 트레이너를 한국으로 초청하고 싶은데 팀이나 트레이너에 폐가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1∼2라운드에서 많은 공격가담을 했던 루크는 이상 신호가 오자 아제르바이잔 라비타 바쿠시절부터 몸을 돌봐준 개인 트레이너에게 SOS를 친 것이다.

호주국가대표 트레이너 출신으로 루크가 허리부상으로 고생했을 때 큰 도움을 줬다. 루크는 “트레이너가 한국에 있는 동안 비용은 내가 부담하겠다. 가족용으로 제공되는 티켓을 쓰겠다. (지금 팀에 있는)트레이너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랫동안 내 몸을 지켜본 개인 트레이너가 훈련 프로그램을 주고 몸도 살펴주면 더 좋을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구단의 의견을 물어봤다. 팀의 화합을 먼저 생각했고 자비를 들여서라도 몸을 챙기겠다는 기특한 생각에 구단은 즉시 OK사인을 줬다. 열흘간 국내 체류 기간동안의 비용도 부담했다.

루크는 다른 외국인선수와 달리 쉬는 날에도 친구와 조용히 숙소에서 지내는 스타일이다. 한국에 온 뒤로 단 한 번 서울 이태원에 가봤을 뿐 쉬는 날이면 친구와 요리하고 쉬는 것이 취미다. 동료들도 편하게 챙겨주고 책임감도 강해 모든 이들이 좋아한다. 식성도 좋다. 김치는 물론이고 외국인에게는 먹기 힘든 파김치까지 건강 샐러드라면서 잘 먹는다. 흥국생명에게는 그야말로 넝쿨째 굴러들어온 복덩어리다.


● 까칠한 데스티니 위해 먼저 마음 여는 IBK기업은행

엄마가 돼서 V리그에 컴백한 IBK기업은행의 데스티니는 12일 한국에서 첫 딸의 돌을 맞았다. 전날 GS칼텍스와의 원정에서 풀세트 접전을 치렀는데 데스티니는 무려 45점을 쓸어 담으며 팀에 승리를 안겼다. 딸 키타니의 첫돌을 맞아 미국에서 달려온 남편이 평택 이충문화체육센터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뒤로는 코트에서 날아다녔다.

세계 정상권 선수답게 자신을 어필하는 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난 데스티니는 최근 몸 상태가 좋아져 예전의 기량이 나오자 더욱 플레이가 화려해졌다. 흰색 헤어밴드를 착용해 눈에 띄게 했고 멋진 공격을 성공시키면 중계방송 부스에 있는 GS시절 동료 이숙자 KBSN 해설위원에게 윙크를 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

데스티니는 GS시절부터 기량은 좋지만 성격이 까칠했다. IBK에 온 뒤로도 여전했지만 어머니가 된 뒤로는 조금 유순해졌다는 평가다. 이정철 감독이 데스티니의 성격을 많이 누그러뜨렸다. “여기서 잘해서 다시 큰 무대로 가고 싶다면 좋은 평판을 얻어야 한다”며 충고한 것이 효과를 보고 있다. 구단도 다양한 마음 씀씀이로 데스티니의 마음을 열었다.

12일 데스티니와 딸을 위해 돌잔치를 열어줬고 많은 선물을 안겼다. 김도진 단장은 키타니를 위해 귀여운 한복을, 선수들은 아기 옷과 인형을 선물했다. 이정철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아기용 가방과 신발을, 사무국은 미니 유니폼을 안겼다. 이날 행사의 사회자는 외국인 돌잔치에 긴장했지만 한국식으로 진행했다. 데스티니는 처음 경험하는 한국의 정과 이벤트에 감격해 눈물을 펑펑 흘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마음도 달라진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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