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첫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자매 골퍼가 된 박희영(왼쪽)과 박주영이 2015년 새해를 맞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스포츠동아 독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1월 29일 시작하는 LPGA 투어 2015시즌 개막전 코츠챔피언십부터 함께 필드를 누빌 박희영과 박주영은 새해 소망으로 ‘자매 동반 우승’을 다짐했다. 사진제공|THE GOLF
● 박희영
2008년 LPGA진출…한미 프로통산 6승
골프 반대하던 언니서 둘도 없는 멘토로
동생과 함께 LPGA투어 나도 무척 든든
● 박주영
박세리 ‘맨발샷’에 감동 골프 입문
프로 7년만에 LPGA Q스쿨 통과
지금까지 그랬듯이 ‘스텝바이스텝’
“한국인 첫 자매 우승도 기대하세요.”
박희영(28·하나금융그룹), 박주영(25·호반건설) 자매에게는 2015년이 특별하다. 둘은 한국 최초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자매 골퍼라는 타이틀을 달고 새해부터 필드를 누빈다. 을미년 새해를 맞아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박희영-주영 자매를 만났다.
● 엘리트 출신VS연습생 신화
언니 박희영은 엘리트 출신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그녀는 국가대표를 거쳤고, 2008년 일찌감치 LPGA 투어 진출에 성공했다. 프로에서 거둔 우승만 6회(한국 4승·미국 2승)다. 그에 반해 동생 박주영은 성장이 더뎠다. 그녀의 이름 앞에는 ‘박희영의 동생’이란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골프를 시작한 것도 중학교 2학년 때다. 늦게 입문한 까닭에 실력도 빨리 늘지 않았고, 프로가 돼서도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 못했다. 프로생활 7년째지만 아직 우승 경험이 없다.
동생 박주영이 골프채를 잡게 된 것은 언니 덕분이다. 박주영은 초등학교 때 가족 몰래 육상선수를 했다. 그러다가 언니가 출전한 대회를 보러갔다가 마음이 바뀌었다. 박주영은 “솔직히 그때는 골프라는 운동이 만만해 보였다. ‘공을 구멍에 넣기만 하면 되는 게 뭐가 어려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진짜 내 마음을 움직인 건 골프선수들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발목라인’이었다. 박세리 언니가 맨발로 샷을 할 때 보여준 그런 모습 말이다. 그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털어놓았다.
언니는 동생을 말렸다. 박희영은 “힘든 걸 아니까 동생까지 골프를 하는 게 싫었다. 연습도 힘들었지만, 너무 많은 걸 포기해야 하기에 동생에게는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본인이 하고 싶어 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처음에 반대하던 언니는 지금 동생에게 꼭 필요한 멘토가 됐다. 누구보다 동생을 아끼며 이끌고 있다. 그리고 골프라는 연결고리가 생기면서 우애도, 정도 더욱 깊어졌다.
● 박주영의 홀로서기
박주영은 12월 8일 끝난 LPGA 투어 Q스쿨에서 공동 11위에 올라 2015년 출전권을 따냈다. 비로소 자신만의 골프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박주영에게 언니 박희영은 든든함 그 자체였다. 자신보다 한발 앞서 있는 언니를 뒤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현실을 깨닫게 됐다. 국내투어를 뛰면서 좀처럼 성적이 나지 않자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박주영은 “6∼7년 정도 투어를 뛰다보니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언니만 믿고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생 처음으로 진로를 걱정하기 시작했고, 고민하게 됐다. 솔직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선뜻 미국무대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THE GOLF
LPGA Q스쿨 통과는 박주영의 홀로서기를 의미한다. 골프를 시작한지 어느덧 10년이 됐고, 그와 동시에 새로운 무대 진출이라는 2번째 골프인생을 앞두고 있다. 박주영은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지금까지 그랬듯 인생이 스텝바이스텝이었어요. 우승해서 스타가 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천천히 가지’라고 실망한 적도 있었죠.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한 계단씩 성장한 게 더 잘된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욕심내지 않고 한계단씩 천천히 올라가고 싶어요.”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박주영의 LPGA Q스쿨 도전에는 작은 에피소드도 숨어있다. LPGA 투어의 마지막 Q스쿨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박주영의 도전을 앞당기게 했다.
몇 개월 전이다. 박희영이 부친 박형섭 씨에게 말했다. “아빠, 올해가 LPGA Q스쿨 마지막이 될지 모른대요. 주영이를 Q스쿨에 출전시켜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당초 박주영의 LPGA 진출 계획은 2∼3년 뒤였다. 국내에서 좀더 실력을 갈고 닦은 뒤 진출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큰 딸의 말에 아버지는 막내딸의 Q스쿨 출전을 허락했다.
박주영은 “비록 잘못된 정보 때문에 도전하게 됐지만, 그 덕분에 새해부터 LPGA 투어에서 뛸 수 있게 됐으니 잘된 일이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하기도 했다” 며 좋아했다.
● 성격만큼 골프 스타일도 달라
외모와 달리 둘의 성격은 정반대다. 박희영과 박주영은 “우린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딱 잘라 말했다. 동생에 대해 언니 박희영은 “너무 세다”고 한마디로 결론 내렸다. 그녀는 “동생이지만 너무 강하다. 자기주장이 매우 강한 편이다. 또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게 옳은 일이든 아니든 반드시 하고 마는 성격이다. 밥을 먹을 시간이 되면 밥을 먹어야 하고, 연습할 시간엔 연습을 해야 된다. 그런 성격이 나와는 많이 다르지만 부러울 때도 있다”고 밝혔다.
언니는 반대다. 박주영은 “언니랑 나는 완전히 다르다. 나는 하루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애가 타는 성격인데, 언니는 ‘내일 하면 되지’, 그러는 스타일이다. 상황에 따라 대처를 잘하고 항상 여유 있게 행동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언니 같다”고 말했다.
성격만큼 골프 스타일도 다르다. 박희영은 언제나 철저 하다. 잘 준비해서 실수 없이 경기를 끝내는 편이다. 반면 박주영의 골프는 거칠고 투박하다. 경기가 잘 풀릴 때는 흠 잡을 게 없어 보이지만, 한번 실수를 하면 쉽게 무너진다. 박희영은 이제 막 새 출발을 하려는 동생에게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프로라면 자기 준비는 본인이 해야 돼요.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정신없이 경기에 나가면 경기 자체를 망칠 수 있거든요. 사소한 일이라도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어요. 지금까지는 부모님이 그런 역할을 해주셨지만, 이제부터는 동생 스스로 해야 하죠. 언니인 동시에 선배로서 동생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겠죠.”
● 새해 소원은 자매의 동반 우승
자매의 새해 목표는 동반 우승이다.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 박희영과 박주영은 “우리 새해엔 꼭 같이 우승하자”며 손을 잡았다.
그러나 새해부터는 언니와 동생을 넘어 경쟁자이기도 하다. 같은 무대에서 뛰게 됐으니 경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만약 우승을 놓고 자매가 경쟁해야 한다면 어떨까. 박주영은 대뜸 “언니가 봐주지 않을까? 안 그래?”라며 응석을 부렸다. 언니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박주영은 벌써 새해 준비를 마쳤다. 얼마 전 혼자 강원도에 가서 해돋이를 보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2015년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도 만들었다. 아직 새해 계획을 세우지 못한 언니는 그런 동생이 기특한지 어깨를 다독였다.
둘은 12월 말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그곳은 박희영이 살고 있는 집이다. 지금까지는 늘혼자였지만 이제는 동생이 함께 한다. 박희영은 “나 역시 동생과 함께 하게 돼 무척 든든하다”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박희영은…
1987년 5월 24일생
2004년 KLPGA 투어 입회
2004년 KLPGA 하이트컵 여자오픈 우승
2005년 PAVV 인비테이셔널 우승
2006년 휘닉스파크 클래식, 레이크힐스 클래식 우승
2008년 LPGA 투어 진출
2011년 LPGA CME그룹 타이틀 홀더스 우승
2013년 LPGA 매뉴라이프 클래식 우승
▲박주영은…
1990년 4월 16일생
2008년 KLPGA 투어 입회
2009년 KLPGA 상금랭킹 60위
2013년 KLPGA 상금랭킹 19위
LPGA 하나외환 챔피언십 공동 13위
2014년 KLPGA 상금랭킹 39위
KLPGA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 3위
LPGA Q스쿨 공동 11위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na1872